AC.71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말씀의 본문에 들어 있는 것들 사이에 삽입한다면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신적 자비로 각 장의 처음과 끝에 그것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덧붙이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본문을 해설하는 가운데 부수적으로 소개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But as these matters would be scattered and disconnected if inserted among those contained in the text of the Word, it is permitted, of the Lord’s Divine mercy, to append them in some order, at the beginning and end of each chapter; besides those which are introduced incidentally.

 

해설

AC.71은 AC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 책의 구성 자체를 이해하게 해 주는 중요한 안내입니다. AC.67에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에 속한 매우 많은 것이 다른 삶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듣고 본 것을 밝히겠다고 했고, AC.70부터는 사람이 어떻게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말씀 본문의 속뜻을 해설하는 가운데 계속 삽입하면 내용이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다른 삶에 관한 내용들을 각 장의 처음과 끝에 어떤 순서에 따라 덧붙이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C에서 각 장의 앞뒤에 길게 나타나는 영계와 사후의 삶에 관한 기록은 본문 해설과 무관하게 덧붙인 여담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말씀의 본문에 대한 연속적인 해설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AC.67에서 밝힌 대로 말씀의 속뜻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른 삶의 본성을 독자가 계속 알아 갈 수 있도록 따로 배열한 것입니다. 다만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내용들이 본문 해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본문을 해설하는 가운데 부수적으로 소개되는 내용들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 허락되었습니다’라는 표현도 눈에 띕니다. AC.67부터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을 알게 된 것과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게 된 것, 자신이 듣고 본 것을 밝히는 것을 계속 ‘허락’의 언어로 말해 왔습니다. 이제 AC.71에서는 그것들을 각 장의 처음과 끝에 어떤 순서로 덧붙이는 것까지 같은 언어로 말합니다. 그러나 이 번호는 그 허락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메인 해설에서는 스베덴보리가 이 기록과 배열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획으로만 제시하지 않고 주님의 신적 자비 아래 허락된 일로 이해했다는 사실까지만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AC.71을 알고 나면 이후 AC의 구성이 훨씬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성경 본문의 속뜻을 따라가는 해설과 다른 삶에 관한 기록이 서로 경쟁하는 두 주제가 아니라, 말씀의 해설은 그 연속성을 지키고 다른 삶에 관한 내용도 흩어지지 않도록 각각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따라서 장의 처음이나 끝에서 영계에 관한 긴 기록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본문과 무관한 삽입물로 건너뛸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속뜻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아 의도적으로 함께 제시한 내용으로 읽어야 합니다. (AC.71 해설)

 

심화

1. ‘허락되었습니다’ - 스베덴보리는 어떻게 허락을 받았는가?

 

AC.71 심화 1, ‘허락되었습니다’ - 스베덴보리는 어떻게 허락을 받았는가?

AC.71 심화1. ‘허락되었습니다’ - 스베덴보리는 어떻게 허락을 받았는가? AC.71에서 스베덴보리는 다른 삶에 관한 내용들을 각 장의 처음과 끝에 어떤 순서에 따라 덧붙이는 것이 ‘허락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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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앞,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는가’

AC.72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말하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ell how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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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0, 창2 앞, ‘죽음은 삶의 연속이다’

AC.70여러 해 동안 제가 듣고 본 것을 밝히는 것이 허락되었으므로, 여기서는 먼저 사람이 소생될 때 어떠한지, 곧 어떻게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지를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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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심화

1.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AC.5에서 처음 스베덴보리를 접하는 독자에게 가장 놀라운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자신이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도 그들과 말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는 영계의 존재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에게 영들과 천사들과의 실제적인 교통이 지속적으로 허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수년 동안’과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라는 표현입니다. AC 제1권이 출판된 것은 1749년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그의 생애 말년에 과거를 회고하면서 쓴 것이 아니라,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처음 세상에 내놓는 바로 그 시점에 이미 수년 동안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어 왔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후 그의 신학 저술 전체에 방대한 영계 경험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AC.5는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기록의 매우 이른 시기에 놓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꿈이나 한두 차례의 환시를 경험했다는 주장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영들을 ‘보았다’고만 하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자신도 그들과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 계속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스베덴보리 자신은 자신의 영계 경험을 순간적인 종교적 황홀경이나 특별한 꿈 몇 차례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자연계에서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영적 세계의 존재들과 의식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상태가 자신에게 허락되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그렇다면 이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글의 역할은 아닙니다. 반대로 현대인의 경험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환각이나 상상이라고 판정하는 것 역시 AC.5를 읽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리는 셈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스베덴보리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읽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영적 세계를 상상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허락으로 영들과 천사들과 실제로 교통했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가 이후 제시하는 방대한 기록과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면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삶에는 AC 출판 이전부터 중요한 내적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1740년대 전반 그는 오랫동안 해 온 자연과학과 철학적 탐구에서 점차 인간의 내면과 영적인 문제로 관심을 옮겨 가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의 개인 기록 가운데 잘 알려진 것이 흔히 ‘꿈 일기’라고 불리는 기록입니다. 그 안에는 꿈과 내적 갈등, 자기 성찰과 종교적 경험 등이 나타납니다. 이런 자료들은 훗날 그의 신학 저술이 갑자기 아무런 배경 없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상당한 내적 전환의 시기가 있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 준비 기간의 꿈과 AC.5에서 말하는 지속적인 영계 교통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꿈을 꾸고 강렬한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과,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영들과 천사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AC.5의 주장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영적 전환에는 여러 단계와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보되, 후대에 전해진 유명한 일화 하나를 모든 것의 정확한 시작점으로 단정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스베덴보리의 소명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1745년의 경험도 이런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의 생애를 전하는 여러 자료에서는 1745년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다루며, 주님으로부터 말씀의 영적 의미를 밝히는 사명과 관련된 경험이 있었다는 전승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장소와 구체적인 장면, 무엇을 보았고 어떤 말을 들었는지를 하나의 확정된 역사적 장면처럼 재구성할 때에는 자료의 성격을 구별해야 합니다. AC.5 자체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해 주는 것은 훨씬 단순합니다. 이 책을 출판할 당시 스베덴보리는 이미 ‘수년 동안’ 주님의 신적 자비로 영들과 천사들과 지속적으로 교통하는 일이 허락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그 경험을 어떤 목적으로 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AC.5는 자신의 특별함을 소개하기 위한 자서전이 아닙니다. 바로 앞의 AC.1-4에서 그는 말씀 안에 속뜻이 있으며, 창세기 첫 장들이 내적 의미에서 인간의 거듭남과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AC.5는 ‘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따라서 영들과 천사들과의 교통에 관한 증언은 그가 앞으로 말할 영적인 것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독자에게 밝히는 문맥 속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라는 표현은 ‘중단됨 없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세계를 볼 수 있게 된 일을 자기 지성의 성취나 특별한 영적 능력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것은 ‘허락된’ 일이었습니다. AC.5의 문법 자체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자신이 영계를 열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경험의 중심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스베덴보리’보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허락하신 주님’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특별한 허락이 필요했을까요? AC.5 자체에서 스베덴보리가 곧이어 열거하는 내용을 보면 그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영들, 죽음 이후 인간의 상태, 지옥, 천국, 그리고 특히 온 천국에서 인정되는 신앙의 교리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즉 영계와의 교통은 단순히 ‘저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과 천국과 지옥의 질서, 그리고 신앙에 속한 것들을 알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 가지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영들과 천사들과 대화했다고 해서 그의 신학 전체를 ‘천사들에게 배운 내용’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5의 첫 문장에서 그는 이것을 알 수 있는 근원을 ‘주님으로부터’라고 명시합니다. 이후 그의 저술에서도 주님과 말씀의 권위는 영이나 천사의 말보다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영들과 이야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진리의 최종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특별한 영계의 경험이 허락된 것 역시 주님께서 말씀과 영적인 질서를 밝히시는 더 큰 목적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영계 기록을 앞으로 읽는 데 매우 중요한 원칙이 됩니다. 그가 어떤 영을 만나 그 영이 무엇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영의 말이 곧 신적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상태에 있으며, 선한 영도 있고 악한 영도 있으며,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다릅니다. 스베덴보리가 AC.5에서 곧바로 ‘여러 종류의 영들’을 언급하는 것도 이러한 영계의 다양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심화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중단됨 없이’라는 말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영적 이상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경험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신앙인이 영들을 보고 천사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주님을 믿으며 악을 죄로 여겨 피하고 선을 행하는 데 영계의 시각적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특별한 영적 현상을 신앙의 목표로 삼으면 현상 자체에 마음을 빼앗길 위험도 있습니다. AC의 중심은 영을 보는 능력을 얻는 데 있지 않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알고 그분의 질서 안에서 거듭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스베덴보리를 읽을 때에도 중요합니다. 그의 영계 경험이 놀랍기 때문에 그것만 좇아 읽으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가 거대한 사후세계 체험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계 경험이 낯설다는 이유로 그것을 모두 제거하고 성경 해설만 취하려 하면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소명과 저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놓치게 됩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그 경험이 그의 말씀 해설과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가르침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AC.5의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이한 현상의 지속 기간 자체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앞으로 말하려는 영계의 일들을 추측하거나 상상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적 자비로 자신에게 보고 듣고 대화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허락되었으며 그 가운데 가르침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우선 그 증언을 그가 말한 그대로 정확히 이해한 뒤, 이후 수천 개의 AC 글을 따라가며 그 증언이 실제로 어떤 내용으로 펼쳐지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심화에서 만나게 될 ‘여러 종류의 영들’이라는 표현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보았다고 하는 영계는 모든 영이 똑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단순한 세계가 아닙니다. 인간이 사후에 어떤 상태를 거치며, ‘영’, ‘천사’, ‘악한 영’ 등의 표현은 어떻게 구별되는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AC.5의 짧은 문장이 앞으로 펼쳐질 방대한 영계 기록의 문을 열고 있었다는 사실도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AC.5 심화 1)

 

 

 

AC.5 심화 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 심화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읽으면 영계에 여러 종류의 영적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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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서문, ‘주님의 신적 자비로 열린 영계의 증언’

AC.5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말씀드릴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는 이제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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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말씀드릴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는 이제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또 저도 그들과 말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에게도 알려진 적이 없고, 사람의 생각 속에조차 들어온 적이 없는 사후세계의 놀라운 것들을 듣고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죽음 이후 영혼들의 상태에 관하여, 지옥 곧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의 비참한 상태에 관하여, 천국 곧 신앙 안에 있는 자들의 복된 상태에 관하여, 그리고 특히 온 천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신앙의 교리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이어지는 글들에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That this is really the case no one can possibly know except from the Lord. It may therefore be stated in advance that of the Lord’s Divine mercy it has been granted me now for some years to be constantly and uninterruptedly in company with spirits and angels, hearing them speak and in turn speaking with them. In this way it has been given me to hear and see wonderful things in the other life which have never before come to the knowledge of any man, nor into his idea. I have been instructed in regard to the different kinds of spirits; the state of souls after death; hell, or the lamentable state of the unfaithful; heaven, or the blessed state of the faithful; and especially in regard to the doctrine of faith which is acknowledged in the universal heaven; on which subjects, of the Lord’s Divine mercy, more will be said in the following pages.

 

해설

AC.5는 짧은 서문 AC.1-5의 마지막 글이면서, 앞의 네 글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AC.1-4에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에 속뜻이 있으며, 그 생명은 주님에게서 오고, 문자와 내적 의미의 관계가 인간의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관계와 같으며, 창세기 첫 장들이 속뜻에서 인간의 거듭남과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독자에게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AC.5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그의 첫 번째 대답입니다.

 

첫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에 관한 지식의 궁극적인 출처를 자기 자신에게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학문적 연구만으로 발견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앞으로 밝히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해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알게 된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AC.5는 단순한 영계 체험담의 서두라기보다, 앞으로 자신이 말할 것의 출처에 관한 선언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어지는 표현에서도 같은 태도가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얻었다고 말하기보다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말하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경험이 실제적이었다는 매우 강한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의 원인을 자기 능력이나 공로에 돌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주님의 신적 자비’라는 표현은 이 짧은 AC.5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여 사실상 글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라는 표현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어느 날 잠깐 환상을 보았거나 꿈속에서 영적인 광경을 경험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는 상당한 기간 동안 영들과 천사들과 교통하며 듣고 말하는 상태가 계속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후 AC에 등장하는 영계에 관한 수많은 기록을 이해할 때에도 스베덴보리 자신이 그것을 단편적인 환상이나 상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그러므로 그의 모든 주장은 참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과 ‘그가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AC.5는 독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강제로 증명하려는 단락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지를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 읽는 독자는 이 단계에서 그의 영계 경험을 즉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보다, 우선 ‘저자는 자신이 이런 경험을 주님으로부터 허락받았다고 주장하며 이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후의 내용을 따라가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자신이 보고 들었다고 하는 내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천국을 보았다’고만 하지 않습니다. ‘여러 종류의 영들’, ‘죽음 이후 영혼들의 상태’, ‘지옥’, ‘천국’, 그리고 ‘온 천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신앙의 교리’를 차례로 열거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AC 곳곳에 삽입될 영계 기록들의 주요 주제를 미리 보여 주는 작은 목차와도 같습니다. 실제로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속뜻을 해설하는 글 사이사이에 사후세계와 영들, 천국과 지옥, 인간의 영적 구조 등에 관한 기록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죽음 이후 영혼들의 상태’라는 표현도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 떼어 읽으면 인간이 지상에서는 단지 물질적인 존재였다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스베덴보리의 인간론을 따라가면 인간에게는 지상생활 중에도 영적인 내면이 있으며, 자연계에서는 물질적인 몸을 통하여 살아간다는 설명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은 인간의 생명이 끝나거나 전혀 다른 존재가 새로 생기는 사건이라기보다, 물질적인 몸을 벗고 영적 세계에서 자신의 생명을 계속 살아가는 전환입니다. 따라서 AC.5의 ‘souls after death’는 그 이후의 가르침 전체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옥을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의 비참한 상태’, 천국을 ‘신앙 안에 있는 자들의 복된 상태’라고 표현한 것도 이후 AC를 읽으면서 점차 깊어질 부분입니다. 여기서 ‘신앙’을 단순히 어떤 교리를 머리로 인정하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신앙과 체어리티, 진리와 선의 관계를 계속 설명하며, 사랑과 삶에서 분리된 신앙이 참된 신앙일 수 있는지를 매우 깊이 다룹니다. 따라서 이 짧은 서문의 ‘신앙 안에 있는 자’와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를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종교적 소속이나 교리 동의 여부로 미리 고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온 천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신앙의 교리’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제시할 신앙의 교리를 자기 개인의 신학 체계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이 ‘온 천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교리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매우 큰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문장을 과장해서 확대하기보다, 그가 이후 실제로 무엇을 ‘신앙의 교리’라고 설명하는지 AC를 따라가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AC.5에서는 그 내용을 아직 상세하게 제시하지 않고 앞으로 더 말하겠다고만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AC.5가 말씀의 속뜻에 관한 계시와 영계 경험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영들과 천사들과 교통했다고 해서 ‘천사들에게 창세기의 속뜻을 배워 적었다’고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5의 첫 문장은 지식의 궁극적인 출처를 ‘주님으로부터’라고 밝히고,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영들과 천사들과의 교통을 통하여 사후세계에 관한 여러 사실을 듣고 보았으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천사들이 스베덴보리에게 가르쳐 준 신학’으로 압축하는 것은 이 단락 자체보다 더 나아간 설명이 됩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를 읽는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그의 영계 경험을 흥미로운 초자연적 현상 자체로 소비하면 AC의 중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현대인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영계에 관한 모든 기록을 주변적인 장식으로 제거해 버려도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저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놓치게 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기록을 그가 제시하는 전체 질서 안에서 읽는 것입니다. 영계에 관한 지식 역시 결국 주님과 말씀, 천국과 교회, 인간의 거듭남과 영원한 삶을 이해하는 데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AC.5에서 가장 먼저 기억할 말은 ‘영들과 천사들’보다 오히려 ‘주님의 신적 자비’일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놀라운 경험을 말하면서도 그 경험의 출처와 허락을 주님께 돌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말하려는 사후세계의 여러 사실과 신앙의 교리 역시 자기 자신을 중심에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알려지고 허락된 것을 전하려는 것으로 제시합니다.

 

이렇게 보면 AC.1-5는 하나의 짧지만 잘 짜인 서문을 이룹니다. AC.1은 말씀 안에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AC.2는 그 말씀의 생명이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에게서 온다고 밝힙니다. AC.3은 문자와 속뜻의 관계를 몸과 영혼에 비유합니다. AC.4는 그 원리를 창세기에 적용하여 창세기 1장이 속뜻에서 인간의 거듭남과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AC.5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그 지식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자신에게 영적 세계와의 특별한 교통이 허락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이제 서문은 끝나고 AC.6부터 창세기 1장의 실제 해설이 시작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창조의 여섯 날을 인간의 거듭남의 여섯 연속적인 상태로 개관한 뒤, 창1:1부터 말씀의 표현 하나하나를 풀어 갑니다. 따라서 AC.5는 단순히 ‘스베덴보리가 영계를 보았다’는 놀라운 이야기로 서문을 끝내는 글이 아닙니다. 독자가 이제부터 읽게 될 방대한 해설이 어떤 주장 위에 서 있는지를 밝히고, 그 문턱에서 다시 한번 모든 것의 근원을 ‘주님의 신적 자비’에 두는 글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AC.5 해설)

 

심화

1.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AC.5 심화 1,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AC.5 심화1.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AC.5에서 처음 스베덴보리를 접하는 독자에게 가장 놀라운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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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 심화 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 심화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읽으면 영계에 여러 종류의 영적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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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 서문, ‘창세기는 거듭남과 태고교회를 말한다’

AC.4마음이 오직 문자적 의미에만 붙들려 있는 동안에는, 그 안에 이러한 것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첫 장들에서 문자적 의미로 발견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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