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7)

 

AC.130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이 그의 동산(garden)이며,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그의 에덴(Eden)입니다. 그의 동쪽(east) 서쪽, 자기 자신입니다. 그의 유브라데강(river Euphrates) 정죄받은 그의 모든 기억지식이며, 앗수르(Assyria) 있는 그의 둘째 (second river) 거짓들을 낳는 어리석은 추론입니다. 구스(Ethiopia) 있는 그의 셋째 (third river) 거기서 나온 악과 거짓의 원리들이며, 이것들이 그의 신앙에 관한 앎들입니다. 그의 넷째 (fourth river) 거기서 나온 지혜인데, 말씀에서는 이것을 마술(magic)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기억지식을 의미하는 애굽(Egypt) 지식이 마술적인 것이 뒤에는 이러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있듯이,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에 관하여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 has for hisgarden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re hisEden”; hiseastis the west, or himself; hisriver Euphratesis 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 hissecond river,where isAssyriais 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 histhird river,where isEthiopiais 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 hisfourth riveris the wisdom thence derived, which in the Word is calledmagic.And thereforeEgyptwhich signifies 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 signifies such a man, because, as may be seen from the Word, 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 Of such it is written in Ezekiel: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강은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강은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29:3, 9) Thus hath said the Lord Jehovih,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o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And the land of Egypt shall be for a solitude, and a waste, and they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because he hath said, The river is mine, and I have made it. (Ezek. 29:3, 9)

 

이러한 사람들은 같은 선지서에서 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trees of Eden in hell)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서도 바로, 애굽 사람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Such men are also calledtrees of Eden in hell,in the same prophet, where also Pharaoh, or the Egyptian, is treated of in these words: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31:16, 18) When I shall have made him descend in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to whom art thou thus made like in glory and in greatness among the trees of Eden? yet shalt thou be made to descend with the trees of Eden into the lower earth,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be slain by the sword. This is Pharaoh and all his crew, (Ezek. 31:16, 18)

 

여기서 에덴의 나무들(trees of Eden) 말씀으로부터 얻은 기억지식과 앎들을 의미하며, 그들은 추론을 통하여 그것들을 이와 같이 모독합니다. where thetrees of Edendenote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 which they thus profane by reasonings.

 

해설

AC.130은 지금까지 설명한 에덴동산과 네 강의 질서를 정반대의 상태에 적용합니다. AC.98 이후 동산은 지성, 에덴은 사랑, 동쪽은 주님을 의미했고, 네 강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가 지혜와 지성, 이성과 기억에 속한 앎들에까지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서는 이 모든 질서가 뒤집힙니다. 같은 동산과 에덴과 강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지배하는 근원이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동산은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이며, 그의 에덴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에덴이 사랑을 의미했으므로 여기에서도 사랑이라는 기본 관계는 남아 있지만, 그 사랑의 성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중심에 놓입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동쪽은 서쪽, 곧 자기 자신입니다. AC.101에서 동쪽이 주님을 의미한다고 했으므로, 여기서 서쪽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방위의 상응을 새로 제시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야 할 내적 방향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뒤집혔음을 보여 줍니다.

 

이 질서의 전도는 네 강에서도 이어집니다. 유브라데는 앞에서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들이 지성과 지혜의 최하위 또는 경계를 이루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죄받은 그의 모든 기억지식이 됩니다. 이것은 기억지식 자체가 정죄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의 AC.129에서 학문을 배우는 것은 결코 금지되지 않으며 삶에 유용하고 즐거운 것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기억지식이라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질서 아래에 있을 때에는 생명을 받지만,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혜로워지려는 사람에게서는 거짓된 원리를 확증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정죄받는 것은 기억지식이라는 능력이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전도된 질서입니다.

 

둘째 강에 관한 설명도 같은 원리를 보여 줍니다. 앞의 AC.118-119에서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앗수르가 있는 둘째 강이 거짓들을 낳는 어리석은 추론이 됩니다. 이성 자체가 악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출발점으로 삼은 이성이 거짓을 만들어 내는 추론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AC.129에서 사람이 아무리 거짓된 원리를 받아들여도 그의 지식과 추론이 그 원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한 설명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이성은 자신이 무엇을 섬기느냐에 따라 진리를 밝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을 확증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강과 넷째 강에서는 전도가 더욱 깊어집니다. 구스와 연결된 셋째 강은 악과 거짓에서 나온 원리들이며, 그것들이 그 사람의 신앙에 관한 앎들이 됩니다. 앞에서 구스는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이미 잘못된 원리에서 나온 것들이 신앙에 관한 앎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겨난 넷째 강의 지혜는 말씀에서 마술이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혜로워지려는 질서가 끝까지 진행되면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지만, 그 지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정반대의 것이 됩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에스겔의 바로와 애굽을 인용합니다. 특히 겔29장에서 바로가 나의 강은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하는 말은 AC.130 전체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문제의 핵심은 강 자체가 아니라 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AC.122-124에서 천적 인간은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바로는 정반대로 강을 자기 것이라고 하며 자기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인용은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혜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상태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겔31장의 에덴의 나무들도 같은 이유로 인용됩니다. AC.130은 이것을 말씀으로부터 얻은 기억지식과 앎들이라고 직접 풀이합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그 자료의 출처가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앎이 반드시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으로부터 얻은 것조차 자기 자신을 출발점으로 하는 추론에 종속시키면 그것을 모독할 수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성경지식의 양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떤 사랑과 어떤 원리 아래에서 사용하는가에 있습니다.

 

AC.130은 결국 앞에서 설명한 상응들이 고정된 일대일 암호가 아님을 다시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동산·에덴··앗수르·애굽 같은 표현들은 앞에서 긍정적인 질서 안에서도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전도된 질서 안에서 반대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렇다고 그 의미가 임의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지식은 여전히 기억지식과 관련되고, 이성은 여전히 이성과 관련되며, 사랑은 여전히 사랑과 관련됩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질서 안에 있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근원으로 삼는 질서 안에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AC.130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어서는 된다고 한 AC.129를 에덴과 네 강 전체에 적용하여 보여 주는 하나의 반대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130)

 

 

 

AC.131, 창2:18-25 개요,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 (AC.131-137)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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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9, 창2:17,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한다 - 이성과 학문은 신앙을 확증하는 쓰임 안에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29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받아들인 원리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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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경작하며 지키게를 다룬 AC.122-124 본문들을 보며, 특히 영적 인간의 경우에 대한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저도 언젠간 주님의 허락으로 본격적인 교회 소개를 하며 사람들을 초청하게 될 텐데, 그때 이런 표현들, 그러니까 저희 교회는 가급적 선한 삶을 살고프신 분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같은 문구를 사용하면 많이 이상할까요? 이런저런 교리적 배경으로 싸우고 다투느라 교회가 어수선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렇습니다만...

 

 

목사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표현 자체가 ‘이상하다’기보다, 그대로 사용하시면 오히려 ‘문을 먼저 좁혀 버리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AC.122-124가 말하는 ‘경작하며 지키게’의 핵심은, 이미 선한 사람만 모으라는 뜻이 아니라 ‘들어온 사람 안에 있는 것을 경작하고, 외부로부터 오는 것을 지켜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특히 거기서 말하는 ‘영적 인간’은 처음부터 선과 진리의 조화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통해 서서히 선으로 인도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점은 오히려 불완전하고 혼재된 상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한 삶을 살고 싶은 분들만’이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가장 필요한 사람들, 곧 아직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갈망은 있는 사람들조차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거나 스스로를 배제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거듭남이 일어나는 장소’이며, 바로 그 의미에서 ‘경작’은 씨앗을 심고 돌보는 일이요, ‘지킴’은 잘못된 원리나 왜곡된 애착이 그 과정을 망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초대 문구는 ‘결과 상태’를 전제하기보다 ‘과정에의 참여’를 여는 쪽이 더 본질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알고 싶고, 그 사랑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인간이 걷는 길, 곧 진리를 통해 선으로 인도되는 질서와도 정확히 맞닿습니다.

 

그래서 표현을 조금만 바꾸면 훨씬 자연스럽고, 동시에 AC의 정신에도 더 부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선한 삶을 살고 싶은 분들’이라는 단정적 표현 대신 ‘삶을 더 선하게 살아가고 싶으신 분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대신 ‘하나님을 더 알고 사랑하는 길을 함께 찾고 싶으신 분들’처럼 ‘이미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 ‘그 길을 향해 가는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문은 열려 있으면서도 방향은 분명해집니다. 교회 안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초대 문구에서 걸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들어온 이후의 가르침과 공동체의 분위기, 곧 말씀과 삶의 일관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염려, 곧 ‘교리로 싸우는 어수선함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은 매우 타당합니다. 다만 그것은 ‘누가 들어오느냐’보다 ‘들어온 사람을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AC.122-124의 빛에서 보면, 참된 ‘지킴’은 외부인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질서’를 세워 외부에서 들어오는 혼란이 스스로 힘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문턱을 높여 조용해지는 곳’이 아니라, ‘진리와 체어리티의 질서가 분명하여 자연히 고요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목사님께서 계획하시는 초대는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방향만 조금 다듬으시면 매우 건강한 형태가 됩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교회는 이미 완성된 사람을 찾는 곳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 아래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곳입니다.’ 이 한 줄 안에 ‘경작’과 ‘지킴’, 그리고 ‘영적 인간의 길’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SC.81,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때’

한 동네 사는 오랜 신앙 지인의, 미국에서 박사 학위 중인, 그러면서 지역 교회에서는 부사역자로, 그리고 함께 간, 역시 박사 학위 중인 아내와 미국 가서 얻은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던 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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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79, ‘AI라는 유능한 도우미를 주신 주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이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저라고 왜 AI로 이 작업을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분명히 AI가 정돈하여 주는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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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7)

 

AC.129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받아들인 원리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있습니다. 원리들이 아무리 거짓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모든 지식과 추론은 원리들을 지지하는데,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무수한 생각들이 그의 마음에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거짓된 안에서 더욱 확증됩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보고 이해하기 전에는 믿어서는 된다는 것을 원리로 삼는 사람은 결코 믿을 없습니다.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눈으로 없고 상상력으로 그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뒤따르며, 그는 이성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에서도 밝아집니다. 학문들을 배우는 것은 결코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의 삶에 유용하고 즐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해서 세상의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출발 원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어야 하며, 가능한 영적이고 천적인 진리들을 자연적인 진리들로 확증하되, 학문 세계에 익숙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어서는 됩니다. 전자는 생명이고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해설

AC.129는 사람이 왜 잘못된 출발점에 서면 이후의 지식과 추론까지 그 잘못을 강화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기가 먼저 받아들인 원리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합니다. 그 원리가 아무리 거짓되어도 사람의 지식과 추론은 그 원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마음에 떠오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은 자기의 거짓된 원리 안에서 더욱 굳어집니다.

 

이것은 AC.128에서 본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의 태도를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그는 내가 보고 이해할 있어야 믿겠다는 원리를 먼저 세웁니다. 그런데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자연적인 눈으로 볼 수 없고 상상력으로 완전히 그려 낼 수도 없으므로, 이 원리를 끝까지 고수하면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연적인 것뿐이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것은 보거나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아니라, ‘보이고 이해되어야만 참이다라는 원리를 신앙보다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곧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로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생각과 이해가 중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과 말씀을 출발점으로 삼을 때 모든 것이 뒤따르며’, 사람은 이성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에서도 밝아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이성과 지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올바른 빛을 받아 제 기능을 하게 되는 질서입니다.

 

AC.129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학문들을 배우는 것은 결코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AC.80 이후 계속 생길 수 있었던 오해를 스베덴보리 자신이 매우 직접적으로 차단하는 표현입니다. 학문은 삶에 유용하고 즐거우며, 신앙 안에 있는 사람도 세상의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감각과 기억지식으로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지 말라고 한 것을 지적 탐구나 학문 자체에 대한 거부로 읽는 것은 문맥과 맞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문과 이성이 어떤 위치에서 사용되는가입니다.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은 먼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뒤 가능한 한 영적이고 천적인 진리들을 자연적인 진리들로 확증합니다. 이때 자연적인 진리는 영적인 진리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 아니라 그것을 확인하고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심지어 학문 세계에 익숙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신앙과 학문은 서로 적대적인 영역이 아니라, 질서가 바로 서 있을 때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28AC.129는 서로 정확히 맞물립니다. AC.128에서는 이성·기억지식·감각·자연적인 것들을 사용하여 신앙의 진리를 확증할 수 있다고 했고, AC.129에서는 학문을 배우고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두 번호 모두 문제를 사용 여부가 아니라 출발점에 둡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출발점으로 삼아 신적인 것을 판단하려 하면 질서가 전도되지만, 주님과 말씀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성과 학문을 사용하면 그것들은 진리를 확증하고 밝히는 쓰임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모든 내용을 가장 짧게 압축합니다.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어서는 된다.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전자는 생명이고 후자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문제는 결국 지식을 많이 가지느냐 적게 가지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진리의 근원으로 삼느냐, 아니면 주님을 근원으로 삼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출발점으로 할 때 이성과 학문과 기억지식은 생명의 질서 안에서 살아나지만, 자기 자신을 출발점으로 할 때 같은 능력들도 거짓을 확증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AC.129)

 

 

 

AC.130, 창2:17,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질 때 에덴과 네 강의 질서가 뒤집힌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30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이 그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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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8,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다 - 감각과 기억지식을 출발점으로 삼는 신앙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AC.128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볼 수 있도록 감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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