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13, AC.190-193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속뜻 개요

 

190.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의 세 번째 상태를 다루는데요, 이 상태는 자신의 본성을 사랑할 정도로 원하던(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상태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191. 자기 사랑, 즉 자신의 본성을 향한 사랑(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들의 감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아무것도 안 믿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본문에서는 감각적인 건(the sensuous part)(the serpent)으로, 자기 사랑, 즉 자신의 본성을 향한 사랑은 여자(the woman), 그리고 이성적, 합리적인 건(the rational)남자(the man)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and the rational by the “man.”

 

 

192. 이런 배경 가운데 ’, 곧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 주님 신앙에 관한 것들(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이 과연 그런지를 알아보게 하였는데, 이것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것(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으로, 사람의 이성이 동의한 것은 그도 먹은지라(the man that he did eat)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1-6)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verses 1–6)

 

 

193.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지각했는데요, 그들의 눈이 밝아져(eyes being opened)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hearing the voice of Jehovah)(7-8)라는 표현을 보면, 그들에게 아직 퍼셉션이 남아 있음(which remnant of perception),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고(7), 부끄러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을(8-9)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시인하고 고백하는(10-13) 모습들을 볼 때, 아직 자연적 선(natural goodness)도 남아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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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D1)-주일예배(2515, 눅14,7-14),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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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D1)-주일예배.축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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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J4ABNVwJLA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눅14:7-14)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 또 그런 이유로 선을 행하는 것은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로를 일에 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하고 또한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된 기독교 440)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어떤 집에 초대를 받으셨는데 초대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7절로 9절의 말씀입니다.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혼인 잔치의 속뜻은 선과 결합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속뜻, 곧 영적인 의미로 남녀의 혼인은 선과 진리의 결합, 또는 신앙과 신앙에 따른 삶의 결합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속에서 혼인 잔치가 열리는 곳은 어디일까요? 첫 번째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그것에 따라 인애(仁愛), 이웃 사랑인 체어리티(charity)를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직장입니다. 새 교회에서는 직장에서 맡은 일을 공정하고 정직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체어리티의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거나 병든 사람을 보살피는 것, 교회와 자선단체에 큰돈을 기부하는 것도 체어리티입니다. 그러나 새 교회 교리에 의하면 그것은 체어리티의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이웃을 열심히 구제하면서도 직업과 관련된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체어리티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우리는 매일 같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께서는 항상 진리에 따라 체어리티의 삶을 살도록 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혼인 잔치 집에서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를테면 어디서나 자기가 중심이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궂은일, 힘든 일, 표 안 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편한 일, 돋보이는 일만 하려는 사람입니다. 일 자체에는 뜻이 없고, 오직 대우만 바라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늘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분수를 모르고, 콧대만 높은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며, 그러다 보면 중요한 일에서 제외되고 계속 사소한 일만 합니다. 집주인에 의해 끝자리로 보내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말씀에는 청한 사람에 의해 결국 끝자리로 보내졌다고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자기 스스로 기회를 계속 놓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로 다음 10절,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일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선으로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신 이유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디 앉았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에 앉아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나 직장에서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면 됩니다. 궂은일이나 단순한 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것이 끝자리에 앉아 체어리티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담임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에 지하실 식당에 습기가 많아 의자에 온통 곰팡이가 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우 한 분이 평일에 교회에 오셔서 집사람과 함께 그것을 닦았던 일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곰팡이 입자들이 많이 날아다녔을 것입니다. 또 곰팡이 제거액 때문에 약품 냄새도 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의자들을 모두 닦고 깨끗이 말렸습니다. 나중에 제습기를 비치해서 곰팡이가 모두 사라졌지만, 그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저도 비슷한 일이 하나 생각나 나눕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당시 제게 맡겨진 여러 사역 중 하나가 미디어여서 그날도, 그날은 평일이었는데, 오전에 이쪽 주일학교 교육관 건물, 마침 3층에 있던 때였습니다. 무심코 창밖을 보니 오전이었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호미를 하나 들고 오시더니 도로변 화단에 들어가 흙을 깊이 긁어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력도 좀 그렇고, 거리도 좀 되어 뉘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제법 긴 그 화단을 꾸역꾸역 다 마치 소 쟁기질하듯 그렇게 뒤엎으시고는 조용히 떠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교회 마당에 인적도 거의 없어 아마도 그걸 본 사람은 제가 유일하지 싶습니다. 봄이 시작되어 겨우내 얼어 단단해졌던 화단 흙을 그렇게 부드럽게 하신 건데, 저는 보는 내내 마음이 참 좋아 마침 들고 있던 캠코더로 그걸 조금 담아놓았습니다. 아마 하늘의 하나님도 지상을 두루 감찰하실 때, 마음이 그러시겠다 싶습니다. 지금도 그 교회 미디어실 자료를 찾아보면 아마 그 영상이 어디 있을 겁니다.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스스로 끝자리에 앉는 것은 어쩌면 그런 모습일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대가 없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낮은 자리에 앉아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어느 날 오셔서 벗이여 올라와 앉으라고 하십니다. 그때 그는 모든 사람 앞에 영광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은 사람을 때가 되면 높이 들어 쓰십니다. 그래서 본문에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12절과 13절에서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이웃을 초대해 점심이나 저녁을 베풀 때는 벗이나 형제,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초대하지 말고, 차라리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 맹인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베푸는 것은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벗이나 형제,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은 누굴까요?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내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이 곧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4절)

 

또 누가복음 8장 21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형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한 마디로, 친구와 형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할 만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들의 말투나 행동, 그리고 물질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친구나 형제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 맹인들과 사귀는 것은 다릅니다. 속뜻으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 맹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진리와 선이 무엇인지 모르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며, 그럼에도 진리를 알기 원하는 진실하고 선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 그들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고, 그들이 원하는 진리를 가르쳐 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 저는 자들과 맹인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베푸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그동안 다른 교회에 다니는 분들과 새 교회 교리에 대해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친절하게 대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진리를 배우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편견을 버려야 하는데 그분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만났던 분들, 즉 진리를 모르면서도 안다고 논쟁을 걸어왔던 분들이 사실은 가난한 자요 몸이 불편한 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분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 위 사례는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 사례이지만, 제게도 남의 얘기가 아닌 듯하여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상대가 진리를 원해야 하고, 또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맹인과 저는 자에게 인애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할 때 복이 있다 하시고, 의인의 부활 시에 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이란 세상 살 때 이웃에게 체어리티의 선을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사후에 주님 앞에 나갈 때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습니다. 그 상은 어떤 것입니까? 진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영적 총명함, 그리고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와 총명함에서 나오는 천국의 기쁨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그 지혜에서 비롯한 기쁨이 어떤 것인지는 세상 살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 그 어떤 재물이나 명예 따위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는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스스로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때가 되면 주님께서 높이시고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이웃에게 선을 베풀 때는 보상을 바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의인의 부활 시에 받을 상이 크다고 하십니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근거 없는 자부심이나 교만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귀어도 힘 있는 사람, 아는 게 많은 사람, 부유한 사람하고만 사귀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누구나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도와줄 테니 그 모든 것을 이겨내라 하십니다. 교만함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 육신의 정욕과 복수심이 없어지려면 죽을 것 같은 영혼의 고통과 십자가 시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시험 가운데서 우리의 자아가 마치 죽은 자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를 의인의 부활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것에 대해 주님은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 21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5:21)

 

라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란 어떤 것입니까? 교만한 마음,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며, 온갖 정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처럼 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주님께서 함께하셔야만 합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를 택해 앉으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은혜가 서울 새 교회와 한결같은 교회의 모든 성도,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는 이웃들과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눅6:35)

 

아멘

 

 

원본

2021-02-21(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11-19(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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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 AC.182-189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182. 어떤 소생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천적 천사들은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영혼이 천적 천사들과 함께할 수 없는, 즉 천적 천사들하고는 맞지 않는 그런 캐릭터(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일 경우, 그 영혼은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는(is eager to)데요, 그럴 경우, 이번에는 영적 천사들이 옵니다. 영적 천사들은 와서 그가 빛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전까지는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그저 생각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When the celestial angels are with a resuscitated person, they do not leave him, for they love everyone; but when the soul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 he is eager to depart from them; and when this takes place the spiritual angels arrive, and give him the use of light, for previously he had seen nothing, but had only thought.  

 

※ 보통 천사들, 특히 천적 천사들하고 있으면 누구나 다 ‘와!!!’ 하고 좋아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천적 천사들은 삼층천 천사로 이해하셔도 되는데요, 이런 천사들조차 자기 곁에 있으면 굉장히 불편한 그런 사람들, 그런 영혼들이 있는 이유는, 그들의 지상에서의 삶이 기본적으로 악하고 거짓되었기 때문이지요.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선인이든 악인이든 사후 일단 중간 영계에서 눈을 뜨는데요, 중간 영계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특히 개신교인들은 죽었다가 눈 뜨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거나 지옥인 줄 아는데요, 그러나 그것은 모든 걸 너무 단순화한 것이고요, 일단은 아직 천국도, 지옥도 아닌, 임종 시 상태 그대로 중간 영계에서 눈을 뜹니다. 그 이유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100% 선하든지, 100% 악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중간 영계에서 이 100% 상태가 된 후,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며, 그 걸리는 기간은 개인마다 다 다릅니다.

 

※ 선인이든 악인이든 천사들은 이렇게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는 모든 영에게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요, 그 모습은 마치 지상 산부인과 신생아실 모습 같기도 합니다. 눈부터 뜨게 하는 것 역시 비슷하고요. 천사들은 무슨 일에 쓰임 받든 이렇게 사랑하고 섬기며, 돌보고 시중드는 일을 가장 즐거워합니다.

 

 

183. 저는 이 일, 곧 이 영적 천사들이 이 사람의 눈을 어떻게 뜨게 하는지 보았는데요, 그들은 마치 왼쪽 눈꺼풀을 코의 중격(中隔, 구조들을 분리하는 막이나 근육, septum) 쪽으로 마는(roll off the coat of the left eye toward the septum of the nose)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눈을 떠 빛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그 사람한테는 그게 진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외관(外觀, an appearance), 즉 그렇게 보일 뿐인 것입니다. I was shown how these angels work. They seemed to as it were roll off the coat of the left eye toward the septum of the nose, in order that the eye might be opened and the use of light be granted. To the man it appears as if this were really done, but it is only an appearance.

 

 

184. 이 얇은 막이 이렇게 마치 돌돌 말린 것처럼 보인 후에, 드디어 빛이 조금 보이는데요, 하지만 아직은 희미합니다. 마치 사람이 막 잠에서 깼을 때 눈꺼풀을 통해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이 소생 중인 사람은 이때 어떤 고요한 상태(a tranquil state) 가운데 있는데요, 이때까지도 여전히 천적 천사들의 가이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작은 별과 함께 일종의 하늘색 그림자가 나타나는데요, 그런데 저는 이것은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걸 알았습니다(perceived). After this little membrane has been thus in appearance rolled off, some light is visible, but dim, such as a man sees through his eyelids when he first awakes out of sleep; and he who is being resuscitated is in a tranquil state, being still guarded by the celestial angels. There then appears a kind of shadow of an azure color, with a little star, but I perceived that this takes place with variety.

 

 

185. 그 후 얼굴에서 무언가 부드럽게 벗겨지는 것 같으면서 퍼셉션이 그에게 전달되는데요, 이때 천사들은 그에게서 어떤 부드럽고 상냥한, 사랑에 속한 것들(such as is of a soft and tender nature, as of love)이 아닌, 다른 생각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특히 조심합니다. 천사들은 그에게 그가 이제 영이 되었음(he is a spirit)을 알려줍니다. Afterwards there seems to be something gently unrolled from the face, and perception is communicated to him, the angels being especially cautious to prevent any idea coming from him but such as is of a soft and tender nature, as of love; and it is now given him to know that he is a spirit.

 

 

186.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데요, 처음에는 행복하고 기쁘지요.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영생에 들어온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것이 나중에 아름다운 황금빛 기운을 띠게 되는, 밝고 환한 빛(a bright white light that becomes of a beautiful golden tinge)으로 표현되는데요, 영적, 천적인 그의 첫 번째 삶은 이렇게 멋지게(to wit) 상징됩니다(by which is signified his first life, to wit, that it is celestial as well as spiritual). He then commences his life. This at first is happy and glad, for he seems to himself to have come into eternal life, which is represented by a bright white light that becomes of a beautiful golden tinge, by which is signified his first life, to wit, that it is celestial as well as spiritual.

 

 

187. 다음으로 그를 선한 영들의 공동체(the society of good spirits)로 데려가는 것이 표현되는데요, 그것은 말 위에 앉아 있는, 그리고 지옥을 향하고 있는, 그러나 이 말은 한 걸음도 못 움직이는, 그런 어떤 젊은이로 표현됩니다. 그는 청년으로 표현되는데요, 그 이유는 그가 처음 영생에 들어갈 때, 그가 천사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에게는 이런 게 마치 자기가 젊음의 꽃(the flower of youth)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His being next taken into the society of good spirits is represented by a young man sitting on a horse and directing it toward hell, but the horse cannot move a step. He is represented as a youth because when he first enters upon eternal life he is among angels, and therefore appears to himself to be in the flower of youth.

 

 

188. 계속해서 그의 삶은 이번에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걸로 표현되는데요, 이는 그가 말을 그 자리에서 가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그는 먼저 참되고 선한 것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His subsequent life is represented by his dismounting from the horse and walking on foot, because he cannot make the horse move from the place; and it is insinuated to him that he must be instructed in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189. 그 후 완만하니 위로 경사진 길이 보였는데, 이는 참되고 선한 것에 관한 지식과 진정성 있는 인정(self-acknowledgment)을 가지고 천국을 향해 단계적으로 인도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진정성 있는 인정과 참되고 선한 것에 관한 지식 없이는 아무도 그곳으로 인도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 주제에 관한 내용은 이 장의 끝부분에서 계속됩니다. Afterwards pathways were seen sloping gently upward, which signify that by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nd by self-acknowledgment, he should be led by degrees toward heaven; for no one can be conducted thither without such self-acknowledgment, and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 continuation of this subject may be seen at the end of this chapter.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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