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

 

AC.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됩니다. (24)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몸을 이룰지로다 (24)

 

해설

AC.135는 창2:24둘이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의 속뜻을 미리 요약합니다. AC.132-134에서는 사람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으로 기울었으며, 마침내 자신의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는 과정이 설명되었습니다. 이제 AC.135에서는 그 proprium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가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proprium이 주어졌다고 해서 인간이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의 AC.124에서는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지식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했고, AC.129에서는 출발점이 주님이면 생명이고 자기 자신이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진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안에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을 갖게 된다는 뜻일 수 없습니다. AC.135는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는 표현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적·영적 생명과 인간의 proprium이 그 근원에서 실제로 하나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랑하고 생각하고 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경험됩니다. 그러나 앞에서 계속 밝혀 온 생명의 근원은 주님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인간이 자기의 것으로 느끼는 삶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 점에서 AC.135허락된 proprium이라는 AC.132의 표현도 조금씩 이해하게 합니다. 만일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진다는 것이 단순히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면, 이어서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된다는 설명은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자기의 것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주어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거기에 결합됨으로써 인간에게는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는 상태가 형성됩니다. 다만 이 결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이 한 문장만으로 더 나아가 규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문에 창2:24둘이 몸을 이룰지로다도 이 문맥에서는 먼저 자연적인 부부의 결합을 넘어 인간의 proprium과 천적·영적 생명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씀으로 읽게 됩니다. 앞에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것이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지는 것을 묘사한다고 했으므로, 이제 이 되는 것은 그 proprium에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인 각 표현의 상응은 이어지는 번호에서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 전체 구조만 붙드는 것이 안전합니다.

 

AC.135는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을 엽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내가 생각한다’, ‘내가 원한다’, ‘내가 사랑한다’, ‘내가 행한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AC.135의 표현을 따르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기때문에 이러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이해할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나 자유와 책임의 관계까지 여기서 완성해서 설명하기보다는, 현재 본문이 직접 말하는 범위 안에서 그 가능성만 열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35proprium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한 문장을 제공합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지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은 여전히 주님으로부터 오며, 그것들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인간에게는 하나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창2:24를 해설하면서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된다는 말만이 아니라 하나처럼 보인다는 스베덴보리의 섬세한 구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AC.135)

 

 

 

AC.136, 창2:18-25 개요, ‘프로프리움 안에 주입된 이노센스’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 AC.136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이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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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4, 창2:18-25 개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다 -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짐’ (21-23절)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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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1-23)

 

AC.134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proprium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그에게 proprium 주어집니다. 이것은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21-23)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1-23)

 

해설

AC.134AC.131부터 시작된 짧은 개요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주님께서는 먼저 그들에게 자신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자, 이제 그들은 자신의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창2:21-23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는 장면이 바로 이 과정을 묘사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들어가도록 허용되고주어집니다라는 두 표현입니다. 인간이 단순히 주님에게서 벗어나 자기 힘으로 proprium을 만들어 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proprium을 원하지만, 그 상태로 들어가는 것조차 허용되며 proprium도 그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 본문을 읽을 때에는 인간의 proprium을 주님과 완전히 독립하여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왜 주님께서 이것을 허용하시며 어떤 의미에서 proprium주신다고 하는지는 이어지는 설명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AC.134는 창2:21-23여자를 해석하는 방향을 미리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 문맥에서 여자는 우선 자연적 성별로서의 여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proprium을 묘사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근거로 남성과 여성의 가치나 우열을 논하는 것은 지금 스베덴보리가 다루는 속뜻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갈빗대가 여자로 만들어지는 장면 전체가 태고교회 후손들에게 proprium이 주어지는 내적 과정을 나타낸다는 것이 AC.134의 요점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여자 proprium이라는 고정된 상응 공식을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AC.103에서 이미 보았듯이 어떤 표현의 의미는 그것이 놓인 주제와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AC.131부터 계속 다루고 있는 주제가 태고교회 후손들의 proprium이므로, 2:21-23의 여자가 그 proprium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왜 갈빗대이며, 왜 그것을 여자로 만드셨는지는 아직 AC.134가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proprium 주어졌다는 말을 곧바로 악이 주어졌다는 뜻으로 바꾸어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AC.132에서도 허락된 proprium이라고 했고, AC.134에서는 다시 proprium 주어진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성향이 이 과정의 배경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주님께서 그 상태를 어떻게 다루시고 어떤 proprium을 주시는지는 아직 설명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proprium의 성질에 대한 최종 판단은 다음 번호들을 읽은 뒤 내려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AC.132-134에는 하나의 분명한 순서가 있습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으로 기울어집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그에게 주님께서 부여하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자, 그가 자신의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시고 그에게 proprium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갈빗대와 여자의 이야기는 인간의 요구를 주님께서 단순히 거절하시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요구를 주님의 질서 안에서 다루시는 과정으로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AC.134는 아직 그 과정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창2:21-23이 무엇을 묘사하는지만 먼저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갈빗대가 proprium인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주시는 proprium 인간이 처음 원했던 proprium 같은 것인가같은 질문을 열어 둔 채 다음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 이 질문들이 이어지는 본문을 읽게 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AC.134)

 

 

 

AC.135, 창2:18-25 개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다’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절) AC.135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인간의 proprium에 결합되어, 그것들이 하나처럼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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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3, 창2:18-25 개요, ‘먼저 주님께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시다’ (19-20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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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19, 20)

 

AC.133

그리고 먼저 주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부여하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proprium으로 기울어집니다. (19-20)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생물을 부르는 것이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19, 20)

 

해설

AC.133은 창2:19-20의 동물들을 사람에게로 이끌어 이름을 짓게 하시는 장면이 앞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요약합니다. AC.132에서는 사람이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proprium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을 다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에게 곧바로 proprium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그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사람에게 있기는 하지만 그 근원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점입니다. 원문도 그것들이 주님에 의해 부여된 이라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AC.122-124에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지식도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한 설명과 그대로 이어집니다. 인간에게 선을 사랑하는 애정이 있고 진리를 아는 앎이 있지만, 그것들의 최초 근원은 주님입니다.

 

따라서 창2:19-20에서 사람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장면도 아직은 단순히 인간이 자연계의 동물들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방향이 제시됩니다. AC.133이 먼저 해석의 열쇠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번호들에서 각각의 표현이 어떻게 풀리는지는 기다려야 하지만, 적어도 이 장면이 사람에게 주님께서 부여하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는 과정과 관련된다는 것은 이미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사람은 여전히proprium으로 기울어집니다.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인간이 proprium을 원하는 까닭이 주님께서 주신 것이 부족해서라고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선의 애정과 진리의 앎을 알게 되었는데도, 그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에게 고유한 어떤 것을 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proprium의 문제는 단순히 무지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에게 속한 것으로 느끼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성향과 연결되어 있음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 점에서 AC.133AC.123과도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퍼셉션으로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태고교회의 후손들은 주님께서 주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proprium으로 기울어집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이 사라진 뒤 proprium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고유한 것을 원하는 방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앞으로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AC.133에서는 아직 proprium 자체를 악이라고 단정하거나, 반대로 인간의 독립성과 자유를 위한 좋은 것으로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현재 본문이 말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분명합니다. 인간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먼저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어집니다. 주님께서 이 기울어짐을 어떻게 다루시며 어떤 proprium을 허락하시는지는 이어지는 본문이 설명할 것입니다.

 

AC.133은 짧지만 창2:18-25의 진행 순서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번호입니다. 인간이 proprium을 원하자 곧바로 그것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께서 이미 주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인간이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어지는 상태에서 다음 단계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중심 질문은 인간에게 무엇이 부족했는가?보다 주님께 받은 모든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고유한 것을 원했는가?에 있습니다. (AC.133)

 

 

 

AC.134, 창2:18-25 개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다 -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짐’ (21-23절)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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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2, 창2:18-25 개요,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8절) AC.132사람은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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