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1)

 

AC.148

인간의 proprium, 그에게 소중한 proprium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라고 하는 까닭은,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가슴은 심장과 폐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체어리티를 의미했고, 뼈는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에 비천한 것들을 의미했으며,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들의 근거는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이며,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The reason why what is mans own (and indeed an own which is dear to him) is called arib,which is a bone of the chest, is that among the most ancient people the chest signified charity, because it contains both the heart and the lungs; and bones signified the viler things, because they possess a minimum of vitality; while flesh denoted such as had vitality. The ground of these significations is one of the deepest arcana known to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해설

AC.148AC.147에서 인간의 proprium갈빗대(rib)라고 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AC.147에서는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으면서도 인간에게 소중한 proprium을 의미하고, 갈빗대 대신의 살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48은 왜 이러한 의미가 갈빗대와 살에 담길 수 있는지를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신체의 상응을 통해 설명합니다.

 

먼저 가슴은 체어리티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이유는 가슴 안에 심장과 폐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번호에서는 심장과 폐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함께 체어리티와 연결되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심장은 사랑이고 폐는 신앙이라는 식으로 뒤의 설명을 미리 가져와 체계를 완성하기보다, 우선 가슴은 심장과 폐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체어리티를 의미한다AC.148의 직접적인 설명을 그대로 붙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뼈는 비천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뼈에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AC.147에서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한 배경입니다. 여기서 비천하다는 말을 곧바로 악하다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제시하는 근거는 뼈가 악한 신체 부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의 초점은 도덕적인 악의 판정이라기보다 생명력의 정도에 있습니다.

 

반대로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AC.147갈빗대 대신의 이라는 표현에는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과 생명력이 있는 proprium 사이의 차이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AC.148 역시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까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갈빗대와 살의 차이가 단순히 신체 조직의 차이가 아니라, 속뜻에서는 생명력이 거의 없는 것과 생명력이 있는 것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신체의 특징을 관찰하여 우리가 새로운 상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가슴에는 심장과 폐가 있으니 이런 뜻일 것이다’, ‘뼈는 단단하니 이런 성질을 뜻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자유롭게 상징을 추론하도록 초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의미들의 근거가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현재 본문에서 밝혀진 가슴과 뼈와 살의 의미는 받아들이되, 그 이상의 세부 관계는 스베덴보리가 뒤에서 직접 설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인들의 상응 이해와도 연결됩니다. AC.143에서는 고대인들이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었고 영계에서 애정들이 동물로 표상되기 때문에 짐승을 통해 애정을 말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AC.144에서는 이름이 본질과 성질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그 성질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48에서는 인간 신체의 가슴과 뼈와 살에도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깊은 의미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인 대상과 영적인 실재의 관계가 동물이나 이름에만 한정되지 않고 인간의 몸에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바로 여기서 멈춥니다. 그 근거가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라고 밝힌 뒤 주님의 신적 자비로 뒤에서설명하겠다고 합니다. 이 유보 자체가 현재 독자에게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갈빗대가 왜 proprium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얻었습니다. 가슴은 체어리티를 의미하고, 갈빗대는 그 가슴의 뼈이며, 뼈는 생명력이 극히 적은 것을 의미하고,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이상의 깊은 근거는 아직 독자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AC.148AC.147의 갈빗대와 살의 대비에 상응적 근거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해석의 경계를 분명히 정해 주는 번호입니다. 인간에게 소중하지만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이 왜 갈빗대로 표현되는지 이제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상응의 가장 깊은 질서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스베덴보리가 밝혀 준 만큼 정확히 이해하고, 그가 뒤에서 다시 이 아르카나를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 번호를 읽는 가장 적절한 태도입니다. (AC.148)

 

 

 

AC.149, 창2:21, ‘죽어 있는 인간의 proprium과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proprium’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말씀에서도 인간의 proprium은 ‘뼈들’(bones)로 의미되며, 실제로는 주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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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7, 창2:21, ‘갈빗대와 깊은 잠 - 자기에게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AC.147-15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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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1)

 

AC.147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 생명력이 거의 없는 인간의 proprium 의미하며, 실제로는 그에게 소중한 proprium 의미합니다. 갈빗대 대신의 (flesh in the place of the rib) 생명력이 있는 proprium 의미합니다. 깊은 (deep sleep)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속한 것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에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들어가도록 허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상태는 잠과 비슷한데, 안에 있는 동안 사람은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임을 알기 시작할 , 그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일깨워져 깨어 있게 됩니다. By arib,which is a bone of the chest, is meant mans own, in which there is but little vitality, and indeed an own which is dear to him; byflesh in the place of the ribis meant an own in which there is vitality; by adeep sleepis meant the state into which he was let so that he might seem to himself to have what is his own, which state resembles sleep, because while in it he knows not but that he lives, thinks, speaks, and acts, from himself. But when he begins to know that this is false, he is then roused as it were out of sleep, and becomes awake.

 

해설

AC.147은 이제 창2:21갈빗대깊은 을 직접 설명하면서, AC.132부터 계속 다루어 온 proprium의 문제가 어떻게 인간의 실제 경험 속에 자리 잡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인간이 proprium을 원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proprium을 허락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그 상태를 갈빗대와 살, 그리고 깊은 잠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갈빗대(rib)는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생명력이 거의 없는proprium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소중한proprium입니다. 이 둘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느껴지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지만,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그것 자체에는 참된 생명이 거의 없습니다. 앞에서 계속 말해 온 것처럼 실제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애착을 가지는 바로 그것이, 그 자체로는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는 역설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어 갈빗대 대신의 (flesh in the place of the rib)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의미합니다. AC.147은 아직 갈빗대가 어떻게 살로 바뀌며 그 변화가 어떤 과정을 뜻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과 생명력이 있는 proprium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둡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proprium을 하나의 고정된 부정적 개념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앞의 AC.141에서 천적 인간과 천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proprium이 있다고 했던 것처럼, 이제 갈빗대와 살의 대비를 통해 proprium의 성질이 변화될 수 있다는 방향이 다시 나타납니다.

 

깊은 (deep sleep)의 의미는 더욱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사람이 자기에게 속한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들어가도록 허용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이 정말로 주님과 독립된 생명의 근원을 갖게 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그렇게 보이는상태가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140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보이는 proprium이라는 표현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상태를 잠에 비유하는 이유도 바로 이어서 설명됩니다. 사람은 그 상태 안에 있는 동안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여깁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과 사고와 말과 행동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AC.147은 이것을 사실 그대로의 인식이 아니라 잠과 같은 상태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동안에는 생명의 실제 근원을 아직 깨어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이것이 거짓임을 알기 시작할 그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일깨워져 깨어 있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자기에게서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느끼는 경험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경험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인식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 설명은 AC.140-141에서 제시한 proprium의 구조를 한층 더 분명하게 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proprium이 주어지고, 천적 인간과 천사에게도 proprium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proprium 안에는 주님의 것들이 있고 주님께서 그것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인간이 깨어난다는 것은 자기 삶의 경험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임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현재 AC.147이 직접 말하는 범위 안에서는 여기까지가 가장 안전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AC.147깊은 은 단순한 육체적 수면을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아간다고 여기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갈빗대는 인간이 소중히 여기지만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 ‘갈빗대 대신의 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자신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거짓임을 알기 시작할 때 그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깨어 있게 됩니다. 이제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이 proprium이 어떻게 여자로 지어지는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AC.147)

 

 

 

AC.148, 창2:21, ‘왜 proprium을 갈빗대라고 하는가 - 가슴과 뼈와 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8인간의 proprium, 곧 그에게 소중한 proprium을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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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6, 창2:19-20, ‘선과 진리를 알고도 proprium으로 기울다’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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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9, 20)

 

AC.146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부터 여기서 의미하는 것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라고 하며, 곧이어 이미 앞에서 다루었던 짐승들(beasts) 새들(birds) 언급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사람을 위하여 그를 돕는 배필을 찾지 못했다(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합니다. 이것은 그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에 관하여 그것들이 어떠한 성질을 지니는지 알도록 허락되었음에도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자신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것들이 아무리 분명하게 자신들에게 표상되고 보여진다 해도 그것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tated, the connection of what is signified may be seen. In verse 18 it is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and presentlybeastsandbirdsare spoken of, which nevertheless had been treated of before, and immediately it is repeated that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which denotes that although he was permitted to know his quality as to the affections of good, and knowledges of truth, still he inclined to his own; for those who are such as to desire what is their own, begin to despise the things of the Lord, however plainly they may be represented and shown to them.

 

해설

AC.146AC.138부터 이어져 온 창2:18-20의 설명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조금 이상해 보이는 순서가 있습니다. 2:18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시겠다고 하신 뒤, 곧바로 이미 창1에서 다루었던 짐승들과 새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것들에게 이름을 준 뒤에는 다시 사람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AC.146은 이 반복과 배열이 속뜻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인간 상태를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는 것은 AC.138-140에서 설명한 것처럼,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주님께만 인도받는 천적 상태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을 원하기 시작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혼자는 본래 결핍이나 고독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AC.139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님의 인도 아래 악으로부터 구별되어 있는 천적 인간의 상태가 혼자 거하는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후손들은 그 상태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로 다음에 짐승들과 새들이 등장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AC.142에서 그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짐승들은 천적 애정들, 곧 의지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고, 새들은 영적 애정들, 곧 이해에 속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그것들을 사람에게로 이끄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성질을 알게 하신 것이며, 사람이 이름을 준 것은 실제로 그 성질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AC.143-145는 다시 왜 동물이 애정을 의미하며 왜 이름을 주는 것이 그 성질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짐승들과 새들의 등장은 창2:18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삽입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입니다.

 

이제 AC.146에서 그 연결이 선명해집니다. 사람은 proprium으로 기울었지만, 그 즉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내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는 먼저 주님께서 주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이 어떠한지를 알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이것은 AC.133에서 이미 요약되어 있던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주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알고도 사람은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짐승들과 새들의 이름을 모두 준 뒤에도 사람을 위하여 그를 돕는 배필을 찾지 못했다고 다시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앞 번호들의 내용을 연결하는 설명이지만, AC.146의 마지막 문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기 자신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것들이 아무리 분명하게 자신들에게 표상되고 보여진다 해도 그것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단순히 인간이 선과 진리를 몰라서 proprium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고, 그것들이 무엇인지까지 분명하게 보면서도 자기 자신의 것을 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업신여기기 시작한다는 표현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주님의 모든 것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것을 원하는데서 시작하여 주님의 것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지금 묘사되는 것은 하나의 진행 과정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자기 삶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질서에서 벗어나 자기에게서 나온 것을 원하기 시작할 때, 이미 알고 있는 주님의 선과 진리조차 점차 낮게 평가하게 되는 방향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AC.140-141에서 설명한 proprium의 구별과 함께 읽을 때 더욱 중요합니다. AC.141에서는 천적 인간과 천사에게도 주님께서 proprium을 주시며, proprium 안에는 주님의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146의 문제는 단순히 proprium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을 원하면서 주님의 것들보다 그것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proprium이라는 용어를 무조건 악과 동일시하기보다, proprium 안에 무엇이 있으며 인간이 그것을 어떤 근원에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계속 구별해야 합니다.

 

AC.146은 결국 창2:18-20 전체가 왜 이 순서로 기록되어 있는지를 밝혀 줍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는 천적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돕는 배필에 대한 말씀이 짐승들과 새들의 장면을 사이에 두고 다시 반복됩니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는 이 인간에게 proprium이 어떻게 주어지는지가 갈빗대와 여자의 표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펼쳐지게 됩니다. (AC.146)

 

 

 

AC.147, 창2:21, ‘갈빗대와 깊은 잠 - 자기에게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AC.147-15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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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5, 창2:19-20, ‘말씀에서 이름은 본질과 성질을 의미하다’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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