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1)

 

AC.149

말씀에서도 인간의 proprium 뼈들(bones) 의미되며, 실제로는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 의미됩니다. 이사야에서는, In the Word also, mans own is signified bybones,and indeed an own vivified by the Lord, as in Isaiah: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같을 것이라 (58:11) Jehovah shall satisfy thy soul in droughts, and make thy bones alert,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Isa. 58:11)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66:14) Then shall ye see, and your heart shall rejoice, and your bones shall sprout as the blade. (Isa. 66:14)

 

시편에서는, In David: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35:10) All my bones shall say, Jehovah, who is like unto thee? (Ps. 35:10)

 

라고 합니다. 이것은 에스겔에서 더욱 분명한데, 거기서는 뼈들이 살을 얻고 안에 영이 들어가는 것에 관하여 말합니다. This is still more evident from Ezekiel, where he speaks of bones receiving flesh, and having spirit put into them: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4 내게 이르시되 너는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여호와께서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내가 여호와인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37:1, 4-6) The hand of Jehovah set me in the midst of the valley, and it was full of bones; and he said to me, prophesy upon these bones, and say unto them, O ye dry bones, hear the word of Jehovah; thus saith the Lord Jehovih to these bones, Behold, I bring breath [spiritus] into you, and ye shall live, and I will lay sinews upon you, and will make flesh come upon you, and cover you with skin, and I will put breath in you, and ye shall live,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Ezek. 37:1, 46)

 

[2] 인간의 proprium 천국에서 전적으로 뼈로만 이루어진 듯하고 생명이 없으며 매우 추한 어떤 것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자체로 죽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으면 살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proprium 자체로는 단지 죽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그것이 어떤 , 참으로 모든 것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주님의 생명으로부터 오며, 만일 이것이 거두어진다면 그는 돌처럼 죽어 쓰러질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생명의 기관일 뿐이며, 기관의 성질에 따라 생명의 애정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의 , 주님의 proprium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proprium으로 인간을 구속하셨고, proprium으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주님의 proprium 생명이며, 그분의 proprium으로부터 자체로는 죽어 있는 인간의 proprium 살아 있게 됩니다. 주님의 proprium 누가복음에 있는 주님의 말씀으로도 의미됩니다. The own of man, when viewed from heaven, appears like a something that is wholly bony, inanimate, and very ugly, consequently as being in itself dead, but when vivified by the Lord it looks like flesh. For mans own is a mere dead thing, although to him it appears as something, indeed as everything. Whatever lives in him is from the Lords life, and if this were withdrawn he would fall down as dead as a stone; for man is only an organ of life, and such as is the organ, such is the lifes affection.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The Lords own is life, and from his own, mans own, which in itself is dead, is made alive. The Lords own is also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Luke: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알라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39) A spirit hath not flesh and bones as ye see me have. (Luke 24:39)

 

또한 유월절 어린 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고 것으로도 이를 의미했습니다. (12:46) It was also meant by not a bone of the paschal lamb being broken (Exod. 12:46).

 

집에서 먹되 고기를 조금도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12:46)

 

해설

AC.149AC.147-148에서 설명한 뼈와 살의 의미를 말씀의 여러 구절로 확증하면서, 인간의 proprium과 주님의 생명의 관계를 한층 깊이 밝힙니다. AC.147에서는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지만 인간에게 소중한 proprium을 의미하고, 갈빗대 대신의 살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AC.148에서는 뼈가 생명력이 극히 적은 것들을, 살이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AC.149는 이러한 의미가 창2의 갈빗대 한 구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의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희의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시편의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라는 표현에서 뼈는 단순한 육체의 골격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인간의 proprium, 특히 주님에 의해 생명을 얻은 proprium이 의미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뼈가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해서 언제나 죽어 있는 악한 proprium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생명을 주심으로 살아 있게 된 proprium도 말씀에서 뼈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는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납니다. AC.149에서 이 본문을 인용하는 이유는 바로 AC.147-148의 설명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자체로는 생명이 거의 없는 뼈와, 생명이 들어와 살을 얻고 살아나는 상태의 대비가 인간의 proprium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2]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의미를 더욱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proprium을 천국에서 보면 전적으로 뼈로만 이루어진 듯하고 생명이 없으며 매우 추하게 나타나고, 그 자체로는 죽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으면 살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뼈와 살의 차이는 단순히 인간의 자연적인 신체 조직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 자체로 있는 인간의 proprium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proprium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인간 자신에게는 이와 정반대로 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proprium이 그 자체로는 죽어 있는데도 인간에게는 그것이 어떤 ’, 더 나아가 모든 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말하고, 내가 행동한다고 느끼며, 그 생명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다고 여깁니다. AC.147에서는 바로 이 상태를 깊은 에 비유했습니다. 이제 AC.149는 왜 그것이 잠과 같은지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인간 안에서 실제로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주님의 생명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인간은 단지 생명의 기관일 뿐이며, 기관의 성질에 따라 생명의 애정도 그러하다는 문장은 이 번호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기관이라는 말은 인간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무생물이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인간은 생명의 근원이 아니며 생명을 자기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생명이 인간 안에서 나타나는 애정의 성질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상태를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proprium과 주님의 proprium 사이에 결정적인 구별을 둡니다. ‘오직 주님만이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의 , 주님의 proprium 가지고 계십니다.인간의 proprium은 그 자체로 생명이 아니지만, 주님의 proprium은 생명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자신의 것으로 인간을 구속하셨고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proprium으로부터 그 자체로 죽어 있는 인간의 proprium이 살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인간의 proprium이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이 마침내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을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살아 있는 proprium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서 눅24:39의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가 인용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의 살과 뼈를 주님의 proprium과 연결합니다. 주님의 경우에는 인간처럼 그 자체로 죽어 있는 proprium이 아니라 생명 자체인 신적 proprium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출12:46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고 한 말씀까지 같은 맥락에서 제시됩니다. 현재 번호에서는 이 두 본문의 모든 세부 상응을 풀지 않고, 주님의 proprium이라는 중심 의미를 확인하는 데 사용합니다.

 

AC.149를 지나면서 AC.140 이후 계속되어 온 중요한 문제가 상당히 선명해집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proprium이 있고, 그 때문에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실제 근원에 관한 참된 인식이 아닙니다. 인간의 proprium은 그 자체로는 죽어 있으며, 주님의 proprium만이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인간의 proprium을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으로 그것을 살아 있게 하십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흐름은 proprium 제거하여 인간을 없애는 이 아니라 자체로 죽어 있는 proprium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 있게 되는 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AC.149)

 

 

 

AC.150, 창2:21, ‘깊은 잠 -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다고 여기는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50인간이 자신의 proprium 안에 있을 때, 곧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다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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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8, 창2:21, ‘왜 proprium을 갈빗대라고 하는가 - 가슴과 뼈와 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8인간의 proprium, 곧 그에게 소중한 proprium을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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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1)

 

AC.148

인간의 proprium, 그에게 소중한 proprium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라고 하는 까닭은,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가슴은 심장과 폐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체어리티를 의미했고, 뼈는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에 비천한 것들을 의미했으며,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들의 근거는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이며,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The reason why what is mans own (and indeed an own which is dear to him) is called arib,which is a bone of the chest, is that among the most ancient people the chest signified charity, because it contains both the heart and the lungs; and bones signified the viler things, because they possess a minimum of vitality; while flesh denoted such as had vitality. The ground of these significations is one of the deepest arcana known to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해설

AC.148AC.147에서 인간의 proprium갈빗대(rib)라고 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AC.147에서는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으면서도 인간에게 소중한 proprium을 의미하고, 갈빗대 대신의 살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48은 왜 이러한 의미가 갈빗대와 살에 담길 수 있는지를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신체의 상응을 통해 설명합니다.

 

먼저 가슴은 체어리티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이유는 가슴 안에 심장과 폐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번호에서는 심장과 폐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함께 체어리티와 연결되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심장은 사랑이고 폐는 신앙이라는 식으로 뒤의 설명을 미리 가져와 체계를 완성하기보다, 우선 가슴은 심장과 폐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체어리티를 의미한다AC.148의 직접적인 설명을 그대로 붙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뼈는 비천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뼈에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AC.147에서 갈빗대가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을 의미한다고 한 배경입니다. 여기서 비천하다는 말을 곧바로 악하다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제시하는 근거는 뼈가 악한 신체 부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력이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의 초점은 도덕적인 악의 판정이라기보다 생명력의 정도에 있습니다.

 

반대로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AC.147갈빗대 대신의 이라는 표현에는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과 생명력이 있는 proprium 사이의 차이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AC.148 역시 그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까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갈빗대와 살의 차이가 단순히 신체 조직의 차이가 아니라, 속뜻에서는 생명력이 거의 없는 것과 생명력이 있는 것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신체의 특징을 관찰하여 우리가 새로운 상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가슴에는 심장과 폐가 있으니 이런 뜻일 것이다’, ‘뼈는 단단하니 이런 성질을 뜻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자유롭게 상징을 추론하도록 초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의미들의 근거가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현재 본문에서 밝혀진 가슴과 뼈와 살의 의미는 받아들이되, 그 이상의 세부 관계는 스베덴보리가 뒤에서 직접 설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인들의 상응 이해와도 연결됩니다. AC.143에서는 고대인들이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었고 영계에서 애정들이 동물로 표상되기 때문에 짐승을 통해 애정을 말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AC.144에서는 이름이 본질과 성질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그 성질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48에서는 인간 신체의 가슴과 뼈와 살에도 태고교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깊은 의미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인 대상과 영적인 실재의 관계가 동물이나 이름에만 한정되지 않고 인간의 몸에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바로 여기서 멈춥니다. 그 근거가 가장 깊은 아르카나 가운데 하나라고 밝힌 뒤 주님의 신적 자비로 뒤에서설명하겠다고 합니다. 이 유보 자체가 현재 독자에게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갈빗대가 왜 proprium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얻었습니다. 가슴은 체어리티를 의미하고, 갈빗대는 그 가슴의 뼈이며, 뼈는 생명력이 극히 적은 것을 의미하고, 살은 생명력이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이상의 깊은 근거는 아직 독자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AC.148AC.147의 갈빗대와 살의 대비에 상응적 근거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해석의 경계를 분명히 정해 주는 번호입니다. 인간에게 소중하지만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이 왜 갈빗대로 표현되는지 이제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상응의 가장 깊은 질서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스베덴보리가 밝혀 준 만큼 정확히 이해하고, 그가 뒤에서 다시 이 아르카나를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 번호를 읽는 가장 적절한 태도입니다. (AC.148)

 

 

 

AC.149, 창2:21, ‘죽어 있는 인간의 proprium과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proprium’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9말씀에서도 인간의 proprium은 ‘뼈들’(bones)로 의미되며, 실제로는 주님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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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7, 창2:21, ‘갈빗대와 깊은 잠 - 자기에게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AC.147-15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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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1)

 

AC.147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 생명력이 거의 없는 인간의 proprium 의미하며, 실제로는 그에게 소중한 proprium 의미합니다. 갈빗대 대신의 (flesh in the place of the rib) 생명력이 있는 proprium 의미합니다. 깊은 (deep sleep)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속한 것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에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들어가도록 허용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상태는 잠과 비슷한데, 안에 있는 동안 사람은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임을 알기 시작할 , 그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일깨워져 깨어 있게 됩니다. By arib,which is a bone of the chest, is meant mans own, in which there is but little vitality, and indeed an own which is dear to him; byflesh in the place of the ribis meant an own in which there is vitality; by adeep sleepis meant the state into which he was let so that he might seem to himself to have what is his own, which state resembles sleep, because while in it he knows not but that he lives, thinks, speaks, and acts, from himself. But when he begins to know that this is false, he is then roused as it were out of sleep, and becomes awake.

 

해설

AC.147은 이제 창2:21갈빗대깊은 을 직접 설명하면서, AC.132부터 계속 다루어 온 proprium의 문제가 어떻게 인간의 실제 경험 속에 자리 잡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인간이 proprium을 원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듯 보이는 proprium을 허락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그 상태를 갈빗대와 살, 그리고 깊은 잠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갈빗대(rib)는 인간의 proprium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생명력이 거의 없는proprium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소중한proprium입니다. 이 둘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느껴지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지만,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그것 자체에는 참된 생명이 거의 없습니다. 앞에서 계속 말해 온 것처럼 실제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애착을 가지는 바로 그것이, 그 자체로는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는 역설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어 갈빗대 대신의 (flesh in the place of the rib)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의미합니다. AC.147은 아직 갈빗대가 어떻게 살로 바뀌며 그 변화가 어떤 과정을 뜻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과 생명력이 있는 proprium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둡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proprium을 하나의 고정된 부정적 개념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앞의 AC.141에서 천적 인간과 천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proprium이 있다고 했던 것처럼, 이제 갈빗대와 살의 대비를 통해 proprium의 성질이 변화될 수 있다는 방향이 다시 나타납니다.

 

깊은 (deep sleep)의 의미는 더욱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사람이 자기에게 속한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들어가도록 허용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이 정말로 주님과 독립된 생명의 근원을 갖게 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그렇게 보이는상태가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140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보이는 proprium이라는 표현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상태를 잠에 비유하는 이유도 바로 이어서 설명됩니다. 사람은 그 상태 안에 있는 동안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여깁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과 사고와 말과 행동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AC.147은 이것을 사실 그대로의 인식이 아니라 잠과 같은 상태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동안에는 생명의 실제 근원을 아직 깨어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이것이 거짓임을 알기 시작할 그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일깨워져 깨어 있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자기에게서 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느끼는 경험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경험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인식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 설명은 AC.140-141에서 제시한 proprium의 구조를 한층 더 분명하게 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것처럼 보이는 proprium이 주어지고, 천적 인간과 천사에게도 proprium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proprium 안에는 주님의 것들이 있고 주님께서 그것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인간이 깨어난다는 것은 자기 삶의 경험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임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현재 AC.147이 직접 말하는 범위 안에서는 여기까지가 가장 안전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AC.147깊은 은 단순한 육체적 수면을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살아간다고 여기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갈빗대는 인간이 소중히 여기지만 생명력이 거의 없는 proprium, ‘갈빗대 대신의 은 생명력이 있는 proprium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자신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거짓임을 알기 시작할 때 그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깨어 있게 됩니다. 이제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이 proprium이 어떻게 여자로 지어지는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AC.147)

 

 

 

AC.148, 창2:21, ‘왜 proprium을 갈빗대라고 하는가 - 가슴과 뼈와 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48인간의 proprium, 곧 그에게 소중한 proprium을 가슴의 뼈인 ‘갈빗대’(rib)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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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6, 창2:19-20, ‘선과 진리를 알고도 proprium으로 기울다’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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