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
AC.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이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되어,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5절)
해설
AC.136은 창2:25의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의 속뜻을 미리 요약하면서, AC.132부터 이어져 온 proprium의 문제가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허락되고,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된 데 이어, 이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proprium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proprium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이노센스의 근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단순히 인간의 proprium 안에 이노센스가 있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 확인해 온 질서와 일치합니다. 지혜와 지성, 이성과 지식이 주님의 것이며,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도 주님께서 부여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proprium 안에 들어오는 이노센스 역시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다고 해서 생명과 선의 근원이 인간 자신에게 옮겨간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노센스가 proprium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든다는 점입니다. AC.134에서는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고, AC.135에서는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었습니다. 그런데 AC.136에서도 proprium 자체를 제거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흐름만 놓고 보면, 주님께서는 인간이 proprium으로 기울려는 성향을 단순히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허용하시면서도, 그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이노센스가 함께할 수 있도록 다루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이 문장은 proprium 그 자체를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어야 그것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AC.136까지 읽은 단계에서는 인간의 proprium을 독립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주님께서 단순히 제거하시는 대상으로만 볼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고 생명을 결합하시며 이노센스를 스며들게 하시는 과정 전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설명은 창2:25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를 읽는 방향도 미리 보여 줍니다. 아직 ‘벌거벗음’과 ‘부끄러워하지 않음’ 각각의 구체적인 속뜻은 뒤의 설명을 기다려야 하지만, AC.136에 따르면 이 구절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proprium 안에 있는 상태와 관계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벌거벗음은 곧바로 수치나 죄의 상태를 뜻한다고 미리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창3에서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상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이후 설명을 따라가며 확인해야 합니다.
AC.132부터 AC.136까지를 함께 보면 이제 하나의 흐름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주님께만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인간에게 자신이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셨지만, 인간은 여전히 proprium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proprium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허용되고 proprium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그 proprium에 결합되어 하나처럼 보이게 되었고, 이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그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인간의 proprium을 허용하시면서도 그것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주님의 질서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AC.136에서 아직 ‘이노센스란 정확히 무엇인가?’를 후대의 교리까지 끌어와 완성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독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더 단순하면서도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졌지만,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독립된 자기 생명의 근원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영적 생명이 결합되고, 다시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노센스가 스며듭니다. 바로 이 상태가 창2:25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한’ 상태를 이해하는 문을 열어 줍니다. (AC.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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