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D1)-주일예배(2542, 눅18,31-34),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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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의 속뜻

 

 

31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눅18:31-34)

 

 

율법과 예언서에는 주님에 대해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주님이 지옥을 정복하심으로 해서 의롭게 되셨고, 천국을 질서 아래 두셨으며, 당신의 인성을 영화롭게 만드셨고, 또한 그렇게 해서 인간이 거듭나고 구원받는 것을 의미한다. (천국의 비밀 10239:4, 이순철 역) Therefore when the Lord suffered John to baptize him, he said: Thus it becometh us to fulfil all the righteousness of God (Matt. 3:15). “To fulfill all the righteousness of God” denotes to subdue the hells by his own power, and reduce them and the heavens into order, and at the same time glorify his human; which things were done by means of temptations admitted into himself, thus by means of continual combats with the hells, even to the last on the cross. (That this is the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fulfilled, see n. 9486, 9715, 9809, 10019, 10152.) The like things are also signified by “all things being fulfilled which were written concerning the Lord in the law and the prophets” (Luke 18:31; 22:37; 24:44); and by the Lord’s coming “to fulfill all things of the law” (Matt. 5:17, 18).

 

※ 위 내용은 출30: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And Aaron and his sons shall wash from it their hands and their feet)에 관한 속뜻 주석 중 일부입니다.

 

 

※ 아래 본문 중 ‘개인적으로는’은 이 설교의 원 저자이신 이순철 목사님 본인을 가리킵니다.

 

새 교회에 입문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성경의 내적 의미, 곧 속뜻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큰 감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그렇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교회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제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의 기록들이 실제와 다르다면서 성경의 완벽함을 의심합니다. 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어야 하느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믿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하게 말씀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름대로는 모두 독실한 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그렇게 튼튼하지가 않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말씀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데, 그냥 맹목적으로, 아, 표현이 좀 그런가요? 말씀의 내적 의미, 즉 그 속뜻을 모른 채 그냥 겉 글자만 믿기 때문이지 싶은데요, 그것은 잘 모르는 어떤 존재, 즉 그 존재의 겉만 믿는 것과 같으며,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이라 볼 수 없지 않을까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새 교회에서는 성경은 문자, 즉 겉 글자로 된 외적 의미, 그러니까 겉뜻과, 그 속의 내적 의미, 즉 속뜻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문자적 의미로만 말씀을 이해하면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예를 들면, 앞에서 어떤 분이 말씀에 기록된 내용들이 실제와 많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말씀의 문자적 의미는 내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며, 그러므로 그 자체로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적 의미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말씀의 내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적 의미를 통해 볼 때, 성경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요? 첫째는, 인류가 생긴 이래로 존재 했던 교회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내적 의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교회는 아담과 그 후손들로 표상되는 태고교회입니다. 태고교회 다음에는 노아와 그의 후손들로 표상되는 고대교회가 있었고, 그 후에는 야곱의 자손들로 표상되는 유대교회가 있었습니다. 유대교회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해서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유대교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이 현 기독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인류를 위한 마지막 교회인 새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 교회를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21:2, 10)이라고 합니다. 내적 의미를 통해 성경에 기록된 두 번째 내용은 주님에 관한 것입니다. 창세기와 예언서, 그리고 복음서의 기록들은 주님이 오실 것에 대한 예언과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는지 그 과정들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세 번째 내용은 인간의 영적 거듭남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창조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내적 의미로 볼 때, 그것은 자연계의 창조가 아니라 인간이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이와 같이 주님에 대해, 그리고 하늘의 천국과 지상의 교회에 대해, 또한 신앙인들의 거듭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 곧 그 속뜻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고, 그때 비로소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에게 참된 진리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주님이 입으신 인간은 선 그 자체이신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진리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처음부터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진리로 오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인간(human) 안에는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받은 유전적인 속성들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완전히 벗으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것들을 벗는 일은 불완전한 몸을 통해 지옥의 시험을 불러들여 그것을 완전히 이기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의 마지막 시험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을 때, 비로소 주님은 신성한 인간(Divine Human)이 되셨으며, 동시에 완전하고 신성한 진리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이 마지막 시험인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먼저 본문 3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1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말씀에서 ‘열둘’(’12)이라는 수는 믿음 또는 믿음에 관한 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열둘’(12)이라는 숫자에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말씀에는 주님의 제자들을 ‘열두 제자’로 표현을 했고, 이스라엘을 또한 ‘열두 지파’로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열두 제자는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뜻하며, 또한 그들의 다양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믿음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베드로나 요한과 같은 믿음이 있는가 하면, 도마와 같은 믿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을 함께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주님이 마지막 시험을 당하실 고난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성전을 뜻하고, 또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하나님이 계신 곳인 속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고 하시는 것은 주님에게는 십자가의 시험을 통해 당신의 인성과 신성이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고요, 제자들에게는 시험을 통해 겉 사람과 속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영적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말씀에서는 표현하기를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관련해서 ‘천국의 비밀’ 10239번 글의 4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과 예언서에는 주님에 대해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데, 그 의미는 주님이 지옥을 정복하심으로 해서 의롭게 되셨고, 천국을 질서 아래 두셨으며, 당신의 인성을 영화롭게 만드셨고, 또한 그렇게 해서 인간이 거듭나고 구원받는 것을 의미한다.

 

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은 주님이 세상에 오실 것과 지옥을 정복하시고, 그 능력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지금 올라가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에 대해 32절과 33절에서는,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말씀에서는 주님에 대해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주님을 사람의 아들이라 할 때는 주님의 인간 안에 있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는 주님의 인간 안에 있는 선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당하실 때 주님은 왜 당신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실까요? 그 이유는 지옥의 영들은 선은 공격하지 못하고, 오직 진리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주님은 인자가 욕을 당하고, 채찍질과 침 뱉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욕을 먹고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가 말씀의 진리를 왜곡하고 더럽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을 당하시는 주님은 말씀이시며,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이 삼 일 만에 일어나신 것은 시험을 통해 주님의 인성이 신성과 하나가 되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완전하고 신성한 진리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3)은 완전한 성취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일을 한 번에 이루시지 않습니다. 한 번 하시고, 두 번 하시고, 마지막 세 번째 이루십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세 번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때는 3시에 못 박히시고, 6시까지 견디시며, 마지막으로 9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교회가 무너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번 참으시고, 두 번 참으시며,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 믿음과 사랑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때 비로소 교회의 문을 닫으십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모습을 마가복음 12장에서는 포도원을 세로 얻은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을 때리고, 두 번째 보낸 종을 또 때리며,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26장에는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주님을 세 번 부인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당시 유대교회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당신의 고난에 대해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에는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의 의미를 감추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왜 말씀의 의미를 감추셨을까요? 첫째는, 진리를 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진리를 주면, 그것을 더럽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더럽히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십자가의 마지막 시험을 이기시기 전 주님은 아직 완전한 진리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관련해, 요한복음 14장 25절 이하에서는,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십니다. 주님이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보혜사 성령은 말씀의 내적 의미를 통해 밝혀주시는 신성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언제 그것을 보내주실까요? 그것에 대해 ‘참된 기독교’ 791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에서 마지막 심판을 끝내신 후, 세상에서 그를 따르던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 모두를 온 영계로 보내 다니엘서 7장 13절과 14절의 예언, 즉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고 한 예언에 따라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신다는 것과 그의 나라가 세세토록 있을 것이라는 복음을 가르치게 하셨다. (이순철 역)

 

Note: After this work was finished the Lord called together his twelve disciples who followed him in the world; and the next day he sent them all forth throughout the whole spiritual world to preach the gospel that the Lord God Jesus Christ reigns, whose kingdom shall be for ages and ages, according to the prediction in Daniel (7:13, 14), and in Revelation (11:15).

 

Also that blessed are those that come to the marriage supper of the lamb (Rev. 19:9).

 

This took place on the nineteenth day of June, 1770. This is what is meant by these words of the Lord:

 

He shall send his angels and they shall gather together his elect, from the end of the heavens to the end thereof (Matt. 24:31).

 

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신적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에게서 나오는 보혜사 성령, 즉 신성한 내적 진리가 천국을 통해 지상에까지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참된 기독교 791번 글은 그 일이 일어난 때를 지상의 시간으로 1770년 6월 19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선지자들이 당신에 대해 기록한 모든 것을 이루자고 하십니다. 주님은 왜 예루살렘에 제자들과 함께 올라가려고 하실까요? 주님은 바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한편으로는 고난을 당하시고, 한편으로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을 욕되게 하거나 채찍질을 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주님께 함부로 했을까를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에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시고,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끝까지 싸워 이기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새 교회의 모든 성도와, 그리고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분과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6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42:6-7)

 

아멘

 

2022-02-13(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2024-05-05(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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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esh, )은 사람이 육-중심(body-centered)이 된 것을 상징하는데요, 이것은 말씀에서 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거기 보면, 두 가지, 곧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는 육-중심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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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esh, )은 사람이 육-중심(body-centered)이 된 것을 상징하는데요, 이것은 말씀에서 ‘’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거기 보면, 두 가지, 곧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는 육-중심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요엘서에서, 모든 사람을 넌지시 나타내기 위해 쓰였습니다. That “flesh” signifies that man had become corporeal, appears from the signification of “flesh” in the Word, where it is used to signify both every man in general, and also, specifically, the corporeal man. It is used to signify every man, in Joel: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2:28) I will pour out my spirit up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Joel 2:28)

 

만민(flesh)은 사람들을, ‘’은 주님에게서 나와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선과 진리, 곧 인플럭스를 나타냅니다. 다윗의 글입니다. where “flesh” signifies man, and “spirit” the influx of truth and good from the Lord. In David: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시65:2) Thou that hearest prayers, unto thee shall all flesh come, (Ps. 65:2)

 

여기 ‘육체’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where “flesh” denotes every man. In Jeremiah: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렘17:5) Cursed is the man that trusteth in man, and maketh flesh his arm, (Jer. 17:5)

 

육신’은 사람을, ‘’은 파워를 상징합니다. 에스겔입니다. where “flesh” signifies man, and “arm” power. In Ezekiel:

 

4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겔21:4-5) That all flesh may know. (Ezek. 21:4–5)

 

스가랴입니다. In Zechariah: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슥2:13) Be silent, all flesh, before Jehovah, (Zech. 2:13)

 

여기 ‘육체’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where “flesh” denotes every man.

 

[2] 육(flesh)은 특별히 육-중심적인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이 이사야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it signifies specifically the corporeal man, is evident from Isaiah: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31:3) The Egyptian is man and not God, and his horses are flesh and not spirit, (Isa. 31:3)

 

그들의 지식은 육-중심 수준임을 상징합니다. 여기 및 말씀 어디에서나 ‘말들’은 합리적 수준, 이성적 수준을 나타냅니다. 계속해서 signifying that their memory-knowledge is corporeal; “horses” here and elsewhere in the Word denoting the rational. Again:

 

오른쪽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왼쪽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사9:20) He shall withdraw to the right hand, and shall be hungry; and he shall devour on the left hand, and they shall not be satisfied; they shall eat everyone the flesh of his own arm, (Isa. 9:20)

 

‘고기’는 사람의 고유한 것들, 곧 육-중심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같은 이사야입니다. signifying such things as are man’s own, which are all corporeal. In the same: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사10:18) He shall consume from the soul, and even the flesh, (Isa. 10:18)

 

여기 ‘몸’은 그를 온통 사로잡고 있는 육-중심의 모든 걸 상징합니다. 계속해서 where “flesh” signifies corporeal things. Again: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사40:5-6) The glory of Jehovah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the voice said, Cry; and he said, What shall I cry? All flesh is grass, (Isa. 40:5–6)

 

여기 ‘육체’는 모든 육-중심, 몸-오리엔티드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flesh” here signifies every man who is corporeal.

 

[3] 같은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사66:16) In fire will Jehovah dispute, and with his sword with all flesh, and the slain of Jehovah shall be multiplied, (Isa. 66:16)

 

‘불’은 왜곡된 욕망에 가해지는 형벌을, ‘칼’은 거짓에 가해지는 형벌을, 그리고 ‘혈육’(flesh)은 육-중심, 몸 관련 일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각각 상징합니다. 다윗의 글입니다. where “fire” signifies the punishment of yearnings; the “sword,” the punishment of falsities; and “flesh” the corporeal things of man. In David: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시78:39) God remembered that they were flesh, a breath that passeth away, and cometh not again, (Ps. 78:39)

 

이 말씀은 광야에서 살(flesh)과 고기(meat)를 탐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몸-중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육(flesh)에 대한 그들의 갈망은 그들은 그저 육-중심, 몸 수준 보상만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speaking of the people in the wilderness desiring flesh, because they were corporeal; their desiring flesh represented that they desired only things corporeal (Num. 11:32–34).

 

32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11: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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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해는 주님이시다. 그곳 빛은 신적 진리(the Divine truth)이며, 열은 신적 선(the Divine good that go forth from the Lord)이다. 이 두 가지는 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이 근원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것이 형성되고 나타난다.

 

14

천국에 있는 해

The Sun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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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는 이 세상 해가 보이지 않고, 그 해에 의해 생겨난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지만, 그러나 천국에도 해가 있고, 빛과 열,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외 무수히 많은 다른 것이 있다. 다만 근원이 다를 뿐이다. 천국에 있는 것은 영적이고, 세상에 있는 것은 자연적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해는 주님이시다. 그곳 빛은 신적 진리(the Divine truth)이며, 열은 신적 선(the Divine good that go forth from the Lord)이다. 이 두 가지는 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이 근원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것이 형성되고 나타난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천국의 해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천국에서 주님이 해처럼 보이시는 이유는, 마치 이 세상 해에 의해 모든 자연 존재가 생기듯이 주님이 모든 영적 존재의 근원이신 신적 사랑(Divine love, from which all spiritual things)이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해같이 빛나는 것이다. Although the sun of the world is not seen in heaven, nor anything from that sun, there is nevertheless a sun there, and light and heat, and all things that are in the world, with innumerable others, but not from a like origin; since the things in heaven are spiritual, and those in the world are natural. The sun of heaven is the Lord; the light there is the Divine truth and the heat the Divine good that go forth from the Lord as a sun. From this origin are all things that spring forth and are seen in the heavens. This light and heat and things existing therefrom in heaven will be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s; in this chapter we will speak only of the sun there. In heaven the Lord is seen as a sun, for the reason that he is Divine love, from which all spiritual things, and by means of the sun of the world all natural things, have their existence. That love is what shines as a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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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해나 그 해로 인해 생겨난 것은 전적으로 자연적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이 세상 해에서 시작되므로 해에 의해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자연적(natural)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천국을 포함한 영계는 자연계를 초월해(above nature) 존재하고, 자연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며, 상응에 의하지 않고는 두 세계 사이의 교류도 있을 수 없다.

 

14

천국에 있는 해

The Sun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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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해나 그 해로 인해 생겨난 것은 전적으로 자연적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이 세상 해에서 시작되므로 해에 의해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자연적(natural)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천국을 포함한 영계는 자연계를 초월해(above nature) 존재하고, 자연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며, 상응에 의하지 않고는 두 세계 사이의 교류도 있을 수 없다. 두 세계의 차이에 대해서는 단계를 설명할 때 (38번 글), 또 그 교류에 대해서는 앞의 두 장에서 상응을 설명할 때 이미 밝힌 바 있다. In heaven neither the sun of the world, nor anything from that sun, is seen, because it is wholly natural. For nature has its beginning from that sun, and whatever is produced by means of it is called natural. But the spiritual, to which heaven belongs, is above nature and wholly distinct from what is natural; and there is no communication between the two except by correspondences. W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m is may be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already said about degrees (n. 38), and what the communication is from what has been said in the two preceding chapters about correspondences.

 

 

HH.38, '5장, 세 천국이 있다'(HH.29-40)

※ 단계(degrees, gradus)라는 것이 어떻게 신적 질서와 관계되는가를 모르면, 세 천국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사람의 내면과 외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세 천국이 있다There Are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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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AC.60,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AC.60-63)

※ 앞의 상태들에 대해서는 단지 ‘좋았더라’(good)고만 하시는 반면, 이 상태를 가리켜서는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하시는 이유는, 지금은 신앙에 속한 것들과 사랑에 속한 것들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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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1,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AC.60-63)

※ 신앙의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적(靈的, spiritual)이라 하고, 주님 사랑, 이웃 사랑(love to the Lord and our neighbor)에 속한 모든 것을 천적(天的, celestial)이라 합니다. 31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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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AC.60-63)

※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하여 그 시기와 상태를 일반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섯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그의 창조의 날들(the days of his creation)이라 합니다.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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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AC.60-63)

※ 그를 위해 악과 거짓을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시는 한편, 주님은 이 전투를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서 확실하게 하십니다.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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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4, 창1 뒤, ‘천사들이 말씀을 읽는 방식’(AC.64-65)

※ 이것이 말씀의 속뜻, 즉 겉 글자의 뜻으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말씀의 생명 그 자체(its veriest life)입니다. 그런데 이 아르카나(arcana, 秘義, 말씀에 담긴, 주님이 숨겨놓으신 의미)는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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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5, 창1 뒤, ‘천사들이 말씀을 읽는 방식’(AC.64-65)

※ 제가 말씀(the Word)을 읽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천국 뜰 첫 번째 입구로 옮겨져 거기서 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65 제가 말씀(the Word)을 읽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천국 뜰 첫 번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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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6, 창1 뒤, ‘말씀의 네 가지 스타일’

※ 말씀(the Word)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스타일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스타일입니다. 66 말씀(the Word)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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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뽀르치운꼴라의 형제들 생활 (1211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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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디오

베르나르도

루피노

맛세오

지네프로

레오

안젤로

죠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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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에 의하면, 금은 태고인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천적 선을, 은은 그 다음 고대인들이 지녔던 영적 선을, 구리는 그 후예들의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은 가장 나중 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며, 선에서 떠난 진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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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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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국에서 알게 된 것은, 지구 최초의 사람들은 천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상응 자체로 생각했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자연적인 것은 상응에 따라 생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그들은 천사와 교류하고 대화했고, 따라서 그들을 통해 천국은 세상과 결합되었다. 이런 까닭에 그 시대를 황금(黃金) 시대(the Golden Age)라고 불렀으며, 수많은 고대 문인들이 ‘그때는 하늘에 사는 이들이 사람과 함께 지냈고, 친구처럼 서로 사귀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은 상응 자체를 가지고 생각하지 않고, 상응에 관한 지식에 의해 생각했다. 이 시대에도 천국과 세상이 결합은 되어 있었지만, 그리 직접적이지 못했다. 이 시기를 은(銀) 시대(the Silver Age)라고 한다. 그 후대 사람들은 상응 지식은 어느 정도 있었으나 그 지식에 의해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대 사람들은 영적 선 안에 있었지만, 이들은 자연적 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동(銅) 시대(the Copper Age)라고 부른다. 그 후 사람은 점차 외면적이 되어가다가 끝내 육체적(corporeal)이 되어 상응에 관한 지식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와 함께 천국에 대한 참된 개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위의 시대들을 금, 은, 동으로 이름한 것도 상응에 따른 것이다.주86 상응에 의하면, 금은 태고인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천적 선을, 은은 그 다음 고대인들이 지녔던 영적 선을, 구리는 그 후예들의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은 가장 나중 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며, 선에서 떠난 진리를 의미한다. I have been taught from heaven that the most ancient men on our earth, who were celestial men, thought from correspondences themselves, the natural things of the world before their eyes serving them as means of thinking in this way; and that they could be in fellowship with angels and talk with them because they so thought, and that thus through them heaven was conjoined to the world. For this reason that period was called the Golden Age, of which it is said by ancient writers that the inhabitants of heaven dwelt with men and associated with them as friends with friends. But after this there followed a period when men thought, not from correspondences themselves, but from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and there was then also a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 but less intimate. This period was called the Silver Age. After this there followed men who had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but did not think from that knowledge, because they were in natural good, and not, like those before them, in spiritual good. This period was called the Copper Age. After this man gradually became external, and finally corporeal, and then the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was wholly lost, and with it a knowledge of heaven and of the many things pertaining to heaven. It was from correspondence that these ages were named from gold, silver, and copper,86 and for the reason that from correspondence gold signifies celestial good in which were the most ancient people, silver spiritual good in which were the ancient people that followed, and copper natural good in which were the next posterity; while iron, from which the last age takes its name, signifies hard truth apart from good.

 

 

86. 상응으로 금은 천적 선을 의미한다. Gold from correspondence signifies celestial good (n. 113, 1551, 1552, 5658, 6914, 6917, 9510, 9874, 9881). 은은 영적 선, 즉 그 근원이 천적인 진리를 의미한다. Silver signifies spiritual good, that is, 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n. 1551, 1552, 2954, 5658). 동은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 Copper signifies natural good (n. 425, 1551). 철은 순서상 가장 바깥쪽 진리를 의미한다. Iron signifies truth in the outmost of order (n. 425,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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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상응 지식이 있으면 그 마음속 생각은 천사들과 함께할(to be associated with)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속(영적) 사람은 천사와 연합할(to be conjoined with)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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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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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 지식과 그 용도에 대해 한 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앞에서 밝혔듯, 영계, 즉 천국은 상응에 의해 자연계와 결합한다. 그러므로 상응을 통해서 사람은 천국과 교류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다. 천국의 천사는 사람이 하듯 자연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은 상응 지식이 있으면 그 마음속 생각은 천사들과 함께할(to be associated with)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속(영적) 사람은 천사와 연합할(to be conjoined with) 수 있다. 천국과 사람이 결합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은 순전히 상응으로 기록되었다. 즉 성경 안의 모든 말씀은 전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나 상응인 것이다.주84 따라서 만약 사람이 상응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성경 말씀의 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문자적 의미로는 알 수 없었던 비의(秘義)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문자의 의미와 영적 의미가 있다. 문자의 의미는 세상에 속한 것으로, 영적 의미는 천국에 속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국과 세상의 결합이 상응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한 획에 이르기까지(down to the least jot) 세밀하게 상응으로 이루어진 성경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주85 Something shall now be said about the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and its use. It has been said above that the spiritual world, which is heaven, is conjoined with the natural world by means of correspondences; therefore by means of correspondences communication with heaven is granted to man. For the angels of heaven do not think from natural things, as man does; but when man has acquired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he is able, in respect to the thoughts of his mind, to be associated with the angels, and thus in respect to his spiritual or internal man to be conjoined with them. That there might be such a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 the Word was written wholly by correspondences, each thing and all things in it being correspondent.84 If man, therefore, had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he would understand 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 and from that it would be given him to know arcana of which he sees nothing in the sense of the letter. For there is a literal sense and there is a spiritual sense in the Word, the literal sense made up of such things as are in the world, and the spiritual sense of such things as are in heaven. And such a Word, in which everything down to the least jot is a correspondence, was given to men because 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world is effected by means of correspondences.85

 

 

84. 말씀은 순전히 상응으로만 기록되었다. The Word was written wholly by correspondences (n. 8615). 말씀으로 사람은 천국과 결합한다. By means of the Word man has conjunction with heaven (n. 2899, 6943, 9396, 9400, 9401, 10375, 10452).

 

 

85. 말씀의 속뜻과 관련, 작은 책자, ‘백마(White Horse)(계시록에 나오는)를 보라 Concerning 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 see the little work White Horse referred to in Rev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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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질서에 따르는 모든 것이 천국에 상응하듯, 신적 질서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지옥에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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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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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질서에 따르는 모든 것이 천국에 상응하듯, 신적 질서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지옥에 상응한다. 천국에 상응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관련하고, 지옥에 상응하는 것은 악과 거짓에 관련한다. As all things that are in accord with Divine order correspond to heaven, so all things contrary to Divine order correspond to hell. All things that correspond to heaven have relation to good and truth; but those that correspond to hell have relation to evil and fal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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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나라는 목적의 나라(a kingdom of ends)이고, 그 목적은 쓰임새(uses)다. 쓰임새의 나라(a kingdom of uses)이고, 그 쓰임새가 목적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서나 쓰임새가 물질의 옷을 입고 행동, 또는 결과로 나타나도록 만드신 것이다(uses may be everywhere clothed in such a way as to be presented in act, or i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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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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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세상이 상응에 의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몇 마디 언급하겠다. 주의 나라는 목적의 나라(a kingdom of ends)이고, 그 목적은 쓰임새(uses)다. 쓰임새의 나라(a kingdom of uses)이고, 그 쓰임새가 목적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서나 쓰임새가 물질의 옷을 입고 행동, 또는 결과로 나타나도록 만드신 것이다(uses may be everywhere clothed in such a way as to be presented in act, or in effect). 이것은 먼저 천국에, 그 다음엔 이 세상에, 단계적이고 연속적으로 내려와 자연계의 최종단계(the outmost things of nature)에 이른다. 따라서 쓰임새를 통해 자연계와 영계, 즉 세상과 천국이 상응하고 결합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쓰임새가 입고 있는 형상(the form in which uses are clothed)은 그것이 쓰임새의 형상인 정도만큼만(just to the extent that they are forms of uses) 상응이 되고, 결합의 수단이 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 중 질서에 맞는 것은 모두 쓰임새의 형태이고, 쓰이기 위해 그 용도대로 형성된 결과물(forms of uses, or effects formed from use for use)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계의 존재들이 상응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가 신적 질서에 따라(in accordance with Divine order)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도만큼만 그의 행위는 쓰임새의 형상이 되고, 또 그를 천국과 연결시켜 주는 상응물이 된다(are his acts uses in form, and correspondences).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to perform uses).주83 나아가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자연계를 영계에 연결하는 수단, 즉 결합의 매개체(the medium of conjunction)라는 사실이다.(위 57번 글 참조) 그러므로 사람이 영적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 결합의 매체가 되고, 반면 자연적이기만 하고, 영적이지 않은 사람은 결합의 매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을 통하지 않아도 따로 신성의 입류(a Divine influx)가 계속 세상으로 흘러들며, 이 입류는 사람의 물질적 측면 안으로는 유입되지만, 사람의 합리적 기능(man’s rational faculty) 안으로는 유입되지 않는다. How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world is effected by means of correspondences shall also be told in a few words. The Lord’s kingdom is a kingdom of ends, which are uses; or what is the same thing, a kingdom of uses which are ends. For this reason the universe has been so created and formed by the Divine that uses may be everywhere clothed in such a way as to be presented in act, or in effect, first in heaven and afterwards in the world, thus by degrees and successively, down to the outmost things of nature. Evidently, then, the correspondence of natural things with spiritual things, or of the world with heaven, is through uses, and uses are what conjoin; and the form in which uses are clothed are correspondences and are conjunctions just to the extent that they are forms of uses. In the nature of the world in its threefold kingdom, all things that exist in accordance with order are forms of uses, or effects formed from use for use, and this is why the things in nature are correspondences. But in the case of man, so far as he is in accordance with Divine order, that is, so far as he is in love to the Lord and in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re his acts uses in form, and correspondences, and through these he is conjoined to heaven. To love the Lord and the neighbor means in general to perform uses.83 Furthermore, it must be understood that man is the means by which the natural world and the spiritual world are conjoined, that is, man is the medium of conjunction, because in him there is a natural world and there is a spiritual world (see above, n. 57); consequently to the extent that man is spiritual he is the medium of conjunction; but to the extent that a man is natural, and not spiritual, he is not a medium of conjunction. Nevertheless, apart from this mediumship of man, a Divine influx into the world and into the things pertaining to man that are of the world goes on, but not into man’s rational faculty.

 

 

83. 모든 선은 쓰임새로부터, 그리고 쓰임새를 따라 그 즐거움과 퀄러티를 가지는데, 그래서 이런 게 쓰임새이고, 이런 게 선이다. Every good has its delight as well as its quality from use and in accordance with use; therefore such as the use is, such is the good (n. 3049, 4984, 7038). 천사들의 생명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 즉 쓰임새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Angelic life consists in the goods of love and charity, that is, in performing uses (n. 454). 주님이, 그리고 그 결과 천사들이 사람에 관해 보는 것은 오직 그 목적, 곧 쓰임새다. The Lord, and consequently the angels, look only, in regard to man, to ends, which are uses (n. 1317, 1645, 5854). 주님의 나라는 쓰임새의 나라, 곧 목적의 나라이다. The Lord’s kingdom is a kingdom of uses, that is, of ends (n. 454, 696, 1103, 3645, 4054, 7038).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쓰임새를 수행하는 것이다. Serving the Lord is performing uses (n. 7038). 사람한테 있어 개별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일이란 쓰임새를 수행해 온 일이다. Each thing and all things in man have been formed for use (n. 3626, 4104, 5189, 9297); 또한 쓰임새로부터, 즉 쓰임새는 사람 안의 장기(臟器)들, 바로 쓰임새가 수행되는 장기들보다 우선하는데, 쓰임새란 주님의 흘러들어오심으로부터 천국을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also from use, that is, the use is prior to the organic forms in man through which the use is performed, because use is from the inflowing of the Lord through heaven (n. 4223, 4926). 더욱이 사람의 내면은, 이는 그의 마음으로 구성되는데, 그가 성숙해지면서 쓰임새로 말미암아, 그리고 쓰임새를 위해 형성된다. Moreover man’s interiors, which constitute his mind, when he grows to maturity are formed from use and for use (n. 1964, 6815, 9297). 결론적으로, 사람은 쓰임새와 함께하는 그런 존재이다. Consequently man is such as are the uses with him (n. 1568, 3570, 4054, 6571, 6935, 6938, 10284). 쓰임새란 쓰임새를 위한 목적이다. Uses are the ends for the sake of which (n. 3565, 4054, 4104, 6815). 쓰임새는 처음이자 나중, 곧 사람의 모든 것이다. Use is the first and the last, thus the all of man (n.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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