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18 심화

1.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고 노래는 영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스베덴보리는 AC.418에서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노래는 영적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으면 마음속의 감정은 모두 천적이고, 입 밖으로 나오는 노래는 모두 영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의 문맥은 모든 인간의 감정과 노래를 무조건 천적이거나 영적인 것으로 분류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기쁨이 마음의 즐거움을 낳고, 그 즐거움이 노래로 표현되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과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설명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가 먼저 말하는 것은 천국의 기쁨입니다. 천국의 모든 기쁨은 마음의 즐거움을 낳고, 그 즐거움은 노래로 표현됩니다. 이어서 현악기는 그 노래를 본뜨고 더욱 고양합니다. 여기에는 마음의 애정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악기의 소리로 이어지는 관계가 있습니다. 노래와 악기는 마음의 애정과 아무 관련 없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애정에서 비롯된 즐거움을 표현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노래와 현악기를 영적인 것들의 표상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이 관계에 있습니다.

 

이 설명은 앞서 야발과 유발을 구별한 내용과 이어집니다. 야발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를, 유발은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나타냅니다. 야발의 장막과 가축에 관한 기록 다음에 유발의 수금과 퉁소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기록을 통해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들과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노래가 영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음악이 종교적 감정을 일으킨다는 뜻보다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노래가 그 자체로 영적인 선을 지닌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노래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사랑이 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AC.418은 천국의 기쁨과 마음의 애정에서 비롯되는 노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번호의 설명을 모든 음악이나 모든 감정에 그대로 적용하여, 노래하는 행위 자체를 영적인 상태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노래라는 외적 표현이 아니라, 그 표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합창을 통해서도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천사들의 합창에는 천적인 합창과 영적인 합창이 있으며, 영적인 합창은 현악기의 소리에 비길 만한 특유의 음색으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이 경험담은 천국의 노래를 지상의 음악 이론으로 분석하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별이 천사들의 합창에서도 나타난다는 그의 증언입니다. 그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더 설명하겠다고 밝힙니다.

 

여기서 사랑과 신앙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 마음의 애정과 관련된다면, 신앙은 그 사랑과 무관하게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마음의 애정과 노래를 연결한 설명은 사랑과 신앙을 서로 떨어진 두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다만 이를 ‘사랑은 언제나 말이 없고 신앙은 언제나 소리로 표현된다’는 식의 고정된 공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번호에서 노래는 사랑의 애정과 영적인 표현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상입니다.

 

성도들이 이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예배를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찬송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풍성함은 귀한 것이지만, 스베덴보리의 설명에서 노래의 출발점은 마음의 애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했는가만이 아니라, 그 노래가 어떤 사랑과 기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살펴보게 됩니다. 이것은 음악적 능력이 뛰어나야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의 애정과 그 표현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고 노래는 영적’이라는 말은 사랑과 신앙을 분리하기 위한 설명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쁨이 마음의 즐거움을 낳고, 그 즐거움이 노래와 악기의 소리로 표현되는 관계를 통해 두 가지의 구별과 연결을 보여 주는 설명입니다. 유발의 수금과 퉁소는 이러한 관계 안에서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성도들은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표현을 그 근원인 사랑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AC.418 심화 1)

 

 

 

AC.418 심화 2, ‘심장과 폐는 왜 사랑과 신앙의 결합을 표상하는가?’

AC.418 심화2. ‘심장과 폐는 왜 사랑과 신앙의 결합을 표상하는가?’ AC.418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인들이 천적인 것을 심장의 영역에, 영적인 것을 폐의 영역에 관련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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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8, 창4:21, ‘수금과 퉁소는 왜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는가?’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창4:21) AC.418앞 절은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들을 다루었지만, 이 절은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다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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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

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리며, 따라서 가장 큰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권세 있는 자가 권세를 통하여 추구하고 부자가 재물을 통하여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천국은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그 사람은 실제로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천국은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쓰임이 되기를 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하는 것입니다. I have conversed with spirits who supposed heaven and heavenly joy to consist in being the greatest. But they were told that in heaven he is greatest who is least, because he who would be the least has the greatest happiness, and consequently is the greatest, for what is it to be the greatest except to be the most happy? It is this that the powerful seek by power, and the rich by riches. They were told, further,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desiring to be the least in order to be the greatest, for in that case the person is really aspiring and wishing to be the greatest; but that heaven consists in this, that from the heart we wish better for others than for ourselves, and desire to be of service to others in order to promote their happiness, and this for no selfish end, but from love.

 

해설

AC.452는 AC.450-451에서 계속되어 온 ‘천국에서의 높고 낮음’이라는 주제를 그 내적 핵심까지 끌고 들어갑니다. AC.450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지배하는 것이 천국이라는 공상을 바로잡았고, AC.451에서는 세상의 권세가 영계에서도 계속된다는 생각을 바로잡았습니다. 이제 AC.452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면 천국에서 참으로 큰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대답은 역설적입니다.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큰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작아짐’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능력을 일부러 낮추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자신의 높음과 영광에 관심을 두기보다 다른 사람의 선과 행복을 먼저 바라는 사랑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가장 큼’의 기준 자체가 세상과 달라집니다.

 

특히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라는 문장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권력이나 재물 그 자체를 최종 목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들을 추구합니다. 권세 있는 사람은 더 큰 권세에서, 부자는 더 많은 재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천국에서는 행복의 근원이 소유와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미묘한 함정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작은 자가 되어 가장 큰 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겉모습만 낮아졌을 뿐 내적 목적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역시 천국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겸손조차 자기 높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천국적 상태는 무엇인가? 본문은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 자체가 자기에게서 이웃에게로 향하는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거나 자신의 위치가 낮아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선과 행복 자체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반드시 ‘쓰임’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실제로 그에게 쓰임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부터’라는 마지막 조건입니다. 칭찬받기 위해 돕거나, 인정받기 위해 섬기거나, 훗날 보답받기 위해 선을 행한다면 아직 자기 자신이 목적의 중심에 있습니다. 천국적 쓰임은 상대방의 선을 그 자체로 기뻐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AC.452는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가?’라는 질문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천국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가장 큰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이웃의 선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사랑으로 그 행복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막9:35)이 가리키는 천국의 질서와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AC.452 해설)

 

 

 

AC.453, 창5 앞, '천국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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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1, 창5 앞, '천국에서는 무엇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이 정해지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1육체로 사는 동안 권세(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영이 다른 삶에서도 여전히 명령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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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거친 개념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아무런 개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는,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갓 건너온 영들을 통하여 저는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도록 내버려 두면, 마치 아직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Hitherto the nature of heaven and of heavenly joy has been known to none. Those who have thought about them have formed an idea concerning them so general and so gross as scarcely to amount to any idea at all. What notion they have conceived on the subject I have been able to learn most accurately from spirits who had recently passed from the world into the other life; for when left to themselves, as if they were in this world, they think in the same way. I may give a few examples.

 

해설

AC.449는 창5 앞에 놓인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라는 경험편 전체의 문을 여는 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사람들이 천국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들조차 실제로 ‘천국이 어떤 상태이며, 천국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거친 개념’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이라는 것은 천국을 그저 ‘좋은 곳’, ‘고통이 없는 곳’, ‘죽은 뒤 행복하게 사는 곳’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거친’이라는 것은 천국의 행복을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육체적·감각적 행복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실제 천국의 본질에는 거의 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기쁨은 장소나 환경에서 먼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적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후 AC.449-459와 창5 뒤의 경험편에서 계속 밝혀지듯이, 천국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때 경험되는 기쁨과 평화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천국을 단지 아름다운 장소나 끝없는 안락함으로 상상한다면 천국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사실을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갓 건너온 영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갓 세상을 떠난 사람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즉시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에서 형성한 생각과 사랑과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영계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국에 대해서도 생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바로 이것이 스베덴보리에게 하나의 관찰 자료가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자신의 속생각을 감추거나 신학적으로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지만, 영계에서는 점차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가 드러납니다. 따라서 새로 온 영들이 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사람들이 세상에서 실제로 어떤 천국관을 품고 살아왔는지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AC.449의 마지막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는 이후 글들을 읽는 중요한 안내입니다. 이제부터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관한 추상적인 정의부터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품고 있던 잘못된 천국관과 그들이 영계에서 겪은 경험을 하나씩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뒤따르는 사례들은 단순한 신기한 영계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의 기쁨은 과연 무엇인가’를 바로잡아 가는 일종의 단계적 교육입니다.

 

결국 AC.449는 독자에게 먼저 자신의 천국관을 점검하도록 합니다. ‘나는 천국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고통이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사랑과 생명이 내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상태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천국에 대한 참된 준비는 천국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살아가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AC.449 해설)

 

 

 

AC.450, 창5 앞,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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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8, 창4 뒤, ‘육체의 삶보다 더 밝고 분명하게 이어지는 사후의 삶’

영혼 또는 영에 관하여 그들이 육체의 삶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영들과의 체험에서 얻은 몇 가지 사례 AC.448나는 이 세상에서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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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국과 지옥 모두에 끝없는 다양성과 차이가 있으며,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도 다른 사람이나 영이나 천사와 결코 정확히 같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내가 단지 정확히 똑같거나 동일한 둘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했을 때에도 영들의 세계와 천사 천국의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존재가 수많은 구성 요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그 조화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 존재도 그러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인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여러 구성 요소의 조화로 이루어진 하나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각 공동체가 하나를 이루며, 모든 공동체가 함께 또한 하나, 곧 보편적 천국 전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어떤 천사는 영들, 곧 첫째 천국의 기쁨을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려도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고 열거하였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보다 덜 보편적인 종류들과 각 종류 안에 있는 세부적인 종류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에만도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면, 천사적 영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한이 없겠으며, 더욱이 천사들의 천국에 있는 행복의 종류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Almost all who pass from this world into the other life suppose that hell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that heaven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yet in both there are endless diversities and varieties, and neither the heaven nor the hell of one person is ever exactly like that of another; just as no man, spirit, or angel is ever exactly like another. When I merely thought of there being two exactly alike or equal, horror was excited in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of spirits and of the angelic heaven, and they said that everyone is formed by the harmony of many components, and that such as is the harmony, such is the one,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thing to subsist that is absolutely a one, but only a one that results from a harmony of component parts. Thus every society in the heavens forms a one, and so do all the societies together, that is, the universal heaven, and this from the Lord alone, through love. A certain angel enumerated the most universal only of the genera of the joys of spirits, that is, of the first heaven, to about four hundred and seventy-eight, from which we may infer how innumerable must be the less universal genera and the species in each genus. And as there are so many in that heaven, how illimitable must be the genera of happinesses in the heaven of angelic spirits, and still more so in the heaven of angels.

 

해설

AC.457은 천국의 기쁨에 관한 논의를 ‘다양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넓혀 갑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천국을 모든 사람이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한 행복을 누리는 하나의 장소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는 천국은 획일적인 세계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랑과 선의 질이 다르고,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쓰임과 기쁨도 다르기 때문에 천국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지옥 역시 마찬가지로 각 사람의 지배적인 악과 거짓의 성질에 따라 상태가 서로 다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천국이나 지옥도 다른 사람의 것과 결코 정확히 같지 않다’는 말은 각 사람이 자기만의 독립된 천국이나 지옥을 소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의 천국’과 ‘한 사람의 지옥’은 그 사람이 천국이나 지옥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고유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떤 두 사람도 사랑과 사고와 삶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이나 불행의 질도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조화’에 관한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어떻게 천국의 하나 됨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존재가 똑같아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가 조화를 이루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화음이 서로 다른 음들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몸이 서로 다른 지체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다름’이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하나 됨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때문에 ‘정확히 똑같은 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영들과 천사들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천국의 질서에서 살아 있는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랑, 똑같은 지혜, 똑같은 쓰임, 똑같은 기쁨을 가진다면 그것은 천국의 완전함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을 이루는 살아 있는 질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각 존재의 고유성을 없애어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고유한 존재들이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개인을 넘어 천국 공동체 전체에 적용됩니다. 각각의 천국 공동체가 그 안의 수많은 천사들의 조화를 통하여 ‘하나’를 이루고, 다시 서로 다른 모든 공동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보편적 천국’이라는 하나를 이룹니다. 그런데 그 하나 됨의 근원은 공동체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것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을 하나 되게 하는 중심은 동일한 개성이나 동일한 역할이 아니라 한 분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사랑입니다.

 

첫째 천국의 기쁨만 해도 가장 큰 범주로 나누어 약 사백칠십팔 가지나 된다는 천사의 설명은 이 다양성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도 세부적인 기쁨들을 센 숫자가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종류들’만 헤아린 것입니다. 각각의 큰 범주 아래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와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천국의 행복은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내적 천국으로 갈수록 그 다양성은 더욱 헤아릴 수 없게 됩니다.

 

결국 AC.457이 보여 주는 천국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 안에서 참으로 자기답게 되면서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앞의 AC.454-456에서 천국의 행복이 사랑과 체어리티와 쓰임에 있음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그 사랑과 쓰임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천국 전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차이를 없애어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선과 쓰임과 기쁨을 사랑 안에서 하나의 천국으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완전함은 획일성에 있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한한 다양성과 조화에 있습니다. (AC.457 해설)

 

 

 

AC.458, 창5 앞, ‘주님의 천국 외에 다른 천국은 있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8악한 영들은 때때로 주님의 천국 외에 또 다른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그것을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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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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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는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다른 어떤 활동도 없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 자체가 곧 활동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찬양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이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기를 원하시며, 그들은 그것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행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조차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데서 기쁨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노릇하는 것과 같은 삶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러한 삶이 모든 삶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삶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결합되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The best instructed of them all said that heavenly joy consists solely in praising and glorifying the Lord, being a life destitute of any doing of the goods of charity, and that this is an active life. But they were told that praising and celebrating the Lord is not such an active life as is meant, but is an effect of that life; for the Lord has no need of praises, but wills that they should do the goods of charity, and that it is according to these that they will receive happiness from the Lord. But still these best instructed persons could form no idea of joy, but of servitude, in doing these goods of charity. But the angels testified that such a life is the freest of all, and that it is conjoined with happiness unutterable.

 

해설

AC.456은 지금까지 나온 잘못된 천국관 가운데 가장 종교적이고 경건하게 보이는 생각을 다룹니다. 앞에서는 천국을 편안히 쉬는 곳이나 찬란한 빛 가운데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다면, 여기서는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천국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문제 삼는 것은 찬양 자체가 아니라, 주님을 찬양하는 것과 이웃에게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것을 서로 분리하여 전자만을 천국의 활동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본문이 이들을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은 천국이 단순한 휴식이나 감각적인 즐거움의 장소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삶을 주님을 향한 찬양과 영화롭게 함에만 한정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선을 행하는 실제 삶은 그 중심에서 제외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배와 삶,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서로 떼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라는 말이 AC.456의 중요한 핵심이 됩니다. 이것은 찬양의 가치를 낮추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찬양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밝히는 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선이 사람 안에 들어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체어리티의 삶으로 나타날 때, 그 삶에서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천국적 삶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적 삶에서 피어나는 고백이며 기쁨입니다.

 

특히 ‘주님은 찬양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다’라는 말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상당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찬양이나 예배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이나 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인간과 천사의 찬양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찬양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찬양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마음을 주님께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찬양이 참된 찬양이 되려면 예배의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체어리티의 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단지 주님을 높이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선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456은 오늘날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게 합니다. 찬양을 오래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귀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신앙생활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뜨겁게 주님을 찬양하였더라도 그 예배가 이후의 삶에서 용서와 정직과 섬김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하는 ‘활동적인 삶’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을 들으면서도 거기에서 기쁨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노릇’을 떠올렸습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오해를 보여 줍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자유이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고 섬기는 것은 의무와 속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에게는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이웃의 선을 자신의 기쁨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에게 쓰임이 되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느낍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이 ‘모든 삶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삶’이며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결합되어 있다고 증언합니다.

 

결국 AC.456은 ‘찬양이냐 체어리티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둘의 참된 질서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선을 받고, 그 사랑으로 이웃에게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며, 그 삶에서 다시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예배와 천국의 삶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고, 이웃 사랑의 삶은 다시 주님을 향한 찬양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으로 자신의 영광을 채우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가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천국의 삶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AC.456 해설)

 

 

 

AC.457, 창5 앞, '천국의 행복은 왜 사람마다 똑같지 않은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7 이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지옥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천국도 누구에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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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5, 창5 앞, '찬란한 빛 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천국의 기쁨이 될 수 없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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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

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빛이 황금빛으로 보일 때와 같은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천국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역시 천국의 기쁨이 안락하게 쉬는 삶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빛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있으면서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크게 기뻐하였고,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 빛이 점차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는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One who in this world had been most lear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being in a glorious light, like that which exists when the solar rays appear of a golden hue, so that he too supposed it to consist in a life of ease. In order that he might know himself to be in error, such a light was granted him, and he, being in the midst of the light, was as delighted as if he were in heaven, as indeed he said. But he could not remain long in it, for it gradually wearied him and became no joy at all.

 

해설

AC.455는 앞의 AC.454와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454에서는 천국의 행복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쉬면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한층 더 아름답고 영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찬란한 황금빛 가운데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훨씬 천국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 역시 천국의 기쁨을 외적인 환경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오류라고 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사람이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AC.450에서도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잘못된 천국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천국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천국의 본질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천국에 관한 지식과 천국의 생명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한 ‘황금빛의 찬란한 빛’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빛을 천국의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영계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에 상응하고, 천국의 빛은 세상의 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것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에서 반복하여 묘사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천국의 빛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바라보고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무는 것만으로 천국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경험이 허락됩니다. 그는 실제로 황금빛처럼 찬란한 빛 가운데 놓였고 처음에는 크게 기뻐하여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도 앞의 경험들과 같은 방식이 나타납니다. 그의 잘못된 생각을 말로만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생각의 한계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황홀했던 빛이 점차 그를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적인 자극은 아무리 아름답고 강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영원한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광경이 계속 새로워지는 것으로 영원한 기쁨을 유지하려 한다면, 결국 사람은 더 새롭고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바로 앞의 AC.454와 연결하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빛은 천국의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 하나이지만,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은 빛 자체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가 천사들의 삶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쓰임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빛도 그 생명과 분리하여 생각하면 천국의 기쁨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AC.455는 결국 우리의 천국관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고통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빛과 풍경을 영원히 바라보며 쉬는 곳으로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행복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보는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서로에게 쓰임이 되는 ‘살아 있는 행복’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빛이라도 그것만으로는 결국 익숙해지는 게 다지만,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끊임없이 새로운 쓰임으로 흘러가는 생명은 천국의 기쁨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AC.455 해설)

 

 

 

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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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4, 창5 앞,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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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히 쉬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에 종속시키기를 원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이것을 원한다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은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게으른 삶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활동적인 삶 외에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들의 삶은 쓰임(use)과 체어리티의 선(goods of charity)에 있습니다. 천사들은 세상에서 오는 영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 사람들에게 쓰임이 되는 일, 사람들 주위에 있는 악한 영들이 정해진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불어넣는 일, 죽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키는 일, 그리고 그 영혼들의 상태가 허락한다면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보다 더 큰 행복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Some think that heaven consists in a life of ease, in which they are served by others; but they are told that there is no possible happiness in being at rest as a means of happiness, for so everyone would wish to have the happiness of others made tributary to his own happiness; and when everyone wished this, no one would have happiness. Such a life would not be an active life, but an idle one, in which they would grow torpid, and yet they might know that there is no happiness except in an active life. Angelic life consists in use, and in the goods of charity; for the angels know no greater happiness than in teaching and instructing the spirits that arrive from the world; in being of service to men, controlling the evil spirits about them lest they pass the proper bounds, and inspiring the men with good; and in raising up the dead to the life of eternity, and then, if the souls are such as to render it possible, introducing them into heaven.

 

이 모든 일로부터 천사들은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지각합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주님의 형상이 되며, 이와 같이 이웃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천국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in use), 쓰임으로부터(from use), 그리고 쓰임에 따라(according to use) 있으며, 곧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에 따라 있습니다. 천국의 기쁨이 편안하게 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들으면,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삶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를 지각하도록 허락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러한 삶이 지극히 슬픈 것이며 모든 기쁨을 파괴하는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싫어하고 역겨워하게 될 것임을 지각합니다. From all this they perceive more happiness than can possibly be described. Thus are they images of the Lord; thus do they love the neighbor more than themselves; and for this reason heaven is heaven. So that angelic happiness is in use, from use, and according to use, that is, it is according to the goods of love and of charity. When those who have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living at ease, idly breathing in eternal joy, have heard these things, they are given to perceive, in order to shame them, what such a life really is, and they perceive that it is a most sad one, that it is destructive of all joy, and that after a short time they would loathe and nauseate it.

 

해설

AC.454는 천국의 기쁨에 관한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천국의 행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원히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쓰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수고와 피로를 경험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처럼 상상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천국의 안식과 전혀 다른 것으로 봅니다. 천국의 안식은 활동의 중지가 아니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수고와 갈등이 사라진 가운데 사랑으로 기쁘게 활동하는 상태입니다.

 

본문 첫 부분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섬김만 받는 삶이 행복일 수 없는지를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 나를 섬김으로써 내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게 됩니다. 결국 누구도 참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천국의 질서는 정반대입니다. 각자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고 그 행복에 쓰임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서로의 행복이 서로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삶은 ‘쓰임과 체어리티의 선’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쓰임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거나 계속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에서 이웃의 선을 바라며 실제로 그 선에 도움이 되는 모든 활동을 뜻합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활동과 사랑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쓰임으로 나타나고, 쓰임은 사랑이 실제 생명이 되어 나타나는 형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쓰임을 매우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새로 영계에 온 영들을 가르치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며, 악한 영들이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불어넣으며, 죽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키고, 준비된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천사들은 이러한 일을 의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에서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큰 행복’을 느낍니다. 다른 존재의 생명과 행복에 쓰임이 되는 것 자체가 그들의 기쁨인 것입니다.

 

특히 ‘이와 같이 그들은 주님의 형상이 된다’는 표현은 쓰임의 가장 깊은 근원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모든 존재에게 생명과 선을 주시며 그들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자기 자신보다 이웃의 선을 바라며 쓰임의 삶을 살 때, 그들은 주님의 사랑이 흘러갈 수 있는 형상이 됩니다. ‘이와 같이 이웃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천국이 천국이다’라는 말은 천국의 본질을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는 문장은 AC.454의 핵심 문장입니다. ‘쓰임 안에’ 있다는 것은 천사의 행복이 실제 쓰임의 활동 가운데 있다는 뜻이고, ‘쓰임으로부터’ 있다는 것은 그 행복이 사랑이 실제로 흘러나가 이웃에게 선이 되는 데서 생긴다는 뜻이며, ‘쓰임에 따라’ 있다는 것은 그 쓰임 안에 담긴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의 질에 따라 행복의 질도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행복은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나중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는 쓰임 자체 안에 이미 존재합니다.

 

결국 AC.454는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원한 휴식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은 처음에는 편안해 보일 수 있지만 곧 생명과 기쁨을 잃고 무기력해집니다. 반대로 천국에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끊임없이 쓰임으로 흘러가며, 그 흐름 자체가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영원히 쉬는 곳’이라기보다 ‘사랑으로 기쁘게 쓰임이 되는 곳’이며, 천국의 안식은 활동이 없는 안식이 아니라 자기 사랑의 수고가 사라진 가운데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 움직이는 안식인 것입니다. (AC.454 해설)

 

 

 

AC.455, 창5 앞, '찬란한 빛 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천국의 기쁨이 될 수 없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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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3, 창5 앞, '천국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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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TINUATION CONCERNING HEAVENAND HEAVENLY JOY

 

 

545. 저로 하여금 천국과 천국 기쁨의 본질과 퀄러티에 대해 알게 하시려고 주님은 오랫동안 종종 제가 천국 기쁨의 즐거움을 지각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런 실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말로, 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But in order that I might know the nature and quality of heaven and of heavenly joy, for long and often I have been permitted by the Lord to perceive the delights of heavenly joys, so that as I know them from actual experience I can indeed know them, but can by no means describe them.

 

하지만 제가 다음과 같이라도 말씀드리면 혹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짝 가늠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천국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수반하는 일종의 어펙션입니다. 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즐거움과 기쁨이 전면적으로 동시에 경험되는 하나의 기쁨인데요, 이 전면적인 기쁨, 즉, 전면적인 어펙션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펙션들이 조화를 이루며 존재합니다. 이때 이것은 하나하나 뚜렷이 지각되는 게 아니고, 모호하게 지각됩니다. 퍼셉션이 매우 전면적이기 때문입니다. However, in order to give some idea of it I may say that heavenly joy is an affection of innumerable delights and joys that form one general simultaneous joy, in which general joy, that is, in which general affection, there are harmonies of innumerable affections that do not come distinctly to perception, but obscurely, because the perception is very general.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허락하심을 받아 그 안, 천국의 기쁨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내재하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말로는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질서로 내재해 있었는데, 바로 천국의 질서로부터 흐르는 질서였습니다. Yet I was permitted to perceive that there are things innumerable within it, in such order as can never be described, these innumerable things being such as flow from the order of heaven.

 

이런 질서는 그 어펙션 모든 가장 미세한 것에까지 존재하며, 함께 합쳐 그 전체가 하나로 보이고, 그것의 주제, 곧 그 어펙션을 느끼고 있는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 아주 전체적인 것으로 지각됩니다. Such order exists in every least thing of the affection, all of which together are presented and perceived as a very general one according to the capacity of him who is the subject of it.

 

한 마디로, 모든 전반적인 기쁨 혹은 어펙션에는 가장 온전한 형태로 조성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살아있지 않거나 우리 안 가장 내적인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천국의 기쁨은 가장 내적인 것들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In a word, in every general joy or affection there are illimitable things ordinated in a most perfect form, and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alive or that does not affect even the inmost things of our being, for heavenly joys proceed from inmost things.

 

저는 또 지각하기를, 그 기쁨과 상쾌함은 마치 심장에서 나와 모든 가장 미세한 섬유조직들을 통해, 그리고 그렇게 조직 다발 속으로, 즐거움의 가장 내적 감각을 가지고 자신들을 아주 부드럽게 퍼트리는 것 같았으며, 이것은 마치 기쁨과 상쾌함만 남은 섬유조직 같았고, 이런 가운데서 나온 퍼셉션과 감각의 영향권 역시 전체적으로 그 행복하게 살아있는 것이 같았습니다. I perceived also that the joy and deliciousness came as if from the heart, and very softly diffused themselves through all the inmost fibers, and so into the congregated fibers, with such an inmost sense of delight that the fiber is as it were nothing but joy and deliciousness, and the whole derivative perceptive and sensitive sphere the same, being alive with happiness.

 

이들 기쁨들을 육체적 쾌락이 주는 기쁨과 비교하자면, 전자는 맑고 부드러운 산들바람 같다면, 후자는 역겹고 퀘퀘한 먼지와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In comparison with these joys the joy of bodily pleasures is like gross and pungent dust as compared with a pure and gentle breeze.

 

 

546. 천국에 무척 있고는 싶은데 사실 천국에 있을 수는 없는 그런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를 저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한번은 제가 하늘 어느 소사이어티에 있을 때, 한 천사가 머리에는 밝게 빛나는 파란 꽃들로 엮은 화관을 쓰고, 가슴에는 다른 색 꽃들로 꾸민 화환을 두른 유아로 제게 나타났습니다. In order that I might know how the case is with those who desire to be in heaven and are not such that they can be there, once when I was in some heavenly society, an angel appeared to me as an infant with a chaplet of bright blue flowers about its head, and girded about the breast with wreaths of other colors.

 

이걸 보고, 저는 그곳이 체어리티가 있는 어느 소사이어티임을 알았습니다. By this I was given to know that I was in some society where there was charity.

 

그때 어떤 착한 영들이 제가 있던 같은 소사이어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들은 들어오는 순간,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더 총명해져서 마치 천사적 영들처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Some well-disposed spirits were then admitted into the same society, who the moment they entered became much more intelligent, and spoke like angelic spirits.

 

그 후, 어떤 영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스스로 순진무구하기를 원하던 영들이었고, 그중 저에게 표현된 한 영의 상태는 젖을 입 밖으로 토하는 유아의 모습이었습니다. Afterwards some were admitted who desired to be innocent from themselves, whose state was represented to me by an infant that vomited milk out of its mouth.

 

이것이 그들의 상태였습니다. Such is their state.

 

그때 또 어떤 영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지성적이다, 총명하다 여기던 영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상태가 그들의 얼굴로 표현되었는데, 날카로워 보였으나 매우 고왔습니다. 그들은 날카로운 부분이 돌출된,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사람의 살처럼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칼로 깎은 듯, 생명이 없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Then some were admitted who supposed that they were intelligent from themselves, and their state was represented by their faces, which appeared sharp, but fair enough; and they seemed to wear a peaked hat from which a sharp point projected, but their faces did not appear to be of human flesh, but as if carved out and devoid of life.

 

이런 것은 스스로를 우리는 영적이다, 즉, 스스로를 우리는 신앙을 가졌다 믿는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Such is the state of those who believe that they are spiritual from themselves, that is, able from themselves to have faith.

 

거기 머무를 수 없는 다른 영들이 들어왔는데, 실망들을 하며, 괴로워들을 하더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Other spirits were admitted who could not remain there, but were dismayed, became distressed, and fled away.

2021-07-30(D6)-매일예배(AC.545-546, 창5 C), '창5 클로징,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2)'.hwp
0.07MB

https://youtu.be/3h7B2fLio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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