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이며, 따라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하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아르카나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영적 인간을 천적 인간과 같은 것으로 여겨 왔지만, 그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AC.81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seventh day) 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것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 그 자체이시며 안식일 그 자체이심을 함축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그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며,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입니다.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인 일곱째 날로 표상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이 법궤가 나아갈 때와 쉴 때에도 표상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법궤가 나아간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였고, 법궤가 쉰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법궤가 떠날 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또 그곳에서는 법궤가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쉴 곳을 찾기 위하여’(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갔다고 합니다. (민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천적 인간의 본성은 이와 같아서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뜻’(desire)이 됩니다. 이리하여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이 여기서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것’(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는데, 이 외적인 평온과 기쁨은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것’(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AC.85는 AC.84에서 제시한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라는 아르카나를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를 먼저 말합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AC.81을 가리킵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신앙의 원리로부터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양심의 결박 가운데 싸우는 사람이며,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인정하고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며 악과 거짓을 업신여기는 사람으로 구별되었습니다.
AC.85가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이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천적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밝히기 위해 막2:28의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를 인용합니다. 그는 이 말씀이 주님께서 사람 그 자체이시며 안식일 그 자체이심을 함축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것은 그가 주님과 독립하여 스스로 안식의 상태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AC.85는 뒤에서 거듭난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인 이유를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힙니다. 주님은 안식일 그 자체이시고 천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이 구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이로써 안식일의 속뜻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날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 근원은 주님 자신에게 있으며, 주님의 나라의 상태가 영원한 평화와 안식으로 묘사됩니다.
이 원리는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다루는 태고교회는 그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으며,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 모든 거듭난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입니다. 이것은 AC.82에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안식에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입니다. 이것은 AC.84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면 모든 싸움이 그친다고 한 설명과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싸움과 안식의 질서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상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이어지는 법궤의 인용도 바로 이 싸움과 안식의 대조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법궤가 광야에서 나아간 것이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고, 법궤가 쉰 것이 ‘평화의 상태’를 표상했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민10:35-36에서 법궤가 떠날 때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라고 하고,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대적이나 이스라엘의 수많은 종족 각각의 상응을 따로 풀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밝힌 ‘법궤의 나아감은 싸움과 시험, 쉼은 평화의 상태’라는 인용 목적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10:33의 ‘그들의 쉴 곳을 찾기 위하여’라는 말씀도 같은 이유로 이어집니다. AC.85가 여기서 직접 강조하는 것은 법궤의 광야 여정과 쉼을 통하여 싸움과 안식의 질서가 표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삼 일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궤가 앞서가는 것의 세부적인 상응이 무엇인지를 이 번호에서 새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3]에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사58:13-14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용만 한 뒤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직접 풀이합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85의 매우 중요한 문장입니다. 천적 인간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행동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 단지 외부에서 그에게 명령되는 뜻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AC.81에서 천적 인간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결박도 없는 것처럼 보이며 자유롭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결박은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한 설명을 한층 더 이해하게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 주님의 뜻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외부에서 강제로 시키는 명령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뜻이 되기 때문에 그는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간에게 더 이상 의지가 없다거나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원문 자체가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뜻’이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AC.85가 말하는 안식은 행동이나 의지가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천적 인간의 뜻이 주님의 선하신 뜻과 일치하는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결과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천적 인간은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이것이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며, 이것이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것’으로 의미됩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두 표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주므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따라서 사58:13-14가 AC.85에 인용된 핵심도 분명합니다. 안식일의 외적인 규정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자기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자신의 뜻이 된 상태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이 있습니다.
AC.85 전체의 흐름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며,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안식일이고,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그 안식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으며, 이것이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 그리고 법궤의 나아감과 쉼으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는 사58:13-14를 통하여 설명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됩니다. 바로 이 상태에서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립니다. (AC.85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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