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AC.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seventh day)이며, 따라서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하였다는 것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아르카나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영적 인간을 천적 인간과 같은 것으로 여겨 왔지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AC.81에서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seventh day) 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것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는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라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seventh day,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seventh dayorsabbath,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며,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안식일입니다.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인 일곱째 날로 표상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이 법궤가 나아갈 때와 때에도 표상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법궤가 나아간 것은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였고, 법궤가 것은 평화의 상태를 표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법궤가 떠날 모세가 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10:35, 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그곳에서는 법궤가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곳을 찾기 위하여(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갔다고 합니다. (10:33)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to search out a rest for them(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길을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곳을 찾았고 (10:33)

 

[3] 천적 인간의 안식은 이사야에서 안식일로 묘사됩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발을 금하여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58:13, 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천적 인간의 본성은 이와 같아서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주님의 뜻이 그의 (desire) 됩니다. 이리하여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데, 이것이 여기서는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는데, 외적인 평온과 기쁨은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desire.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해설

AC.85AC.84에서 제시한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는 아르카나를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를 먼저 말합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영적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AC.81을 가리킵니다. AC.81에서 영적 인간은 신앙의 원리로부터 선과 진리를 인정하고 양심의 결박 가운데 싸우는 사람이며,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인정하고 선과 진리를 퍼셉션하며 악과 거짓을 업신여기는 사람으로 구별되었습니다.

 

AC.85가 천적 인간을 일곱째 또는 안식일이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천적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밝히기 위해 막2:28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를 인용합니다. 그는 이 말씀이 주님께서 사람 그 자체이시며 안식일 그 자체이심을 함축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것은 그가 주님과 독립하여 스스로 안식의 상태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AC.85는 뒤에서 거듭난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인 이유를 그가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힙니다. 주님은 안식일 그 자체이시고 천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이 구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도 안식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이로써 안식일의 속뜻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날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 근원은 주님 자신에게 있으며, 주님의 나라의 상태가 영원한 평화와 안식으로 묘사됩니다.

 

이 원리는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여기서 다루는 태고교회는 그 뒤를 이은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으며, 이후의 모든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역시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 모든 거듭난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될 때 안식일입니다. 이것은 AC.82에서 교회에 관하여 말한 것은 그 교회의 각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던 원리와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안식에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입니다. 이것은 AC.84에서 천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면 모든 싸움이 그친다고 한 설명과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싸움과 안식의 질서가 유대교회에서 수고하는 날들과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상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표상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이어지는 법궤의 인용도 바로 이 싸움과 안식의 대조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법궤가 광야에서 나아간 것이 싸움과 시험을 표상하고, 법궤가 쉰 것이 평화의 상태를 표상했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민10:35-36에서 법궤가 떠날 때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라고 하고,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대적이나 이스라엘의 수많은 종족 각각의 상응을 따로 풀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밝힌 법궤의 나아감은 싸움과 시험, 쉼은 평화의 상태라는 인용 목적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10:33그들의 곳을 찾기 위하여라는 말씀도 같은 이유로 이어집니다. AC.85가 여기서 직접 강조하는 것은 법궤의 광야 여정과 쉼을 통하여 싸움과 안식의 질서가 표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궤가 앞서가는 것의 세부적인 상응이 무엇인지를 이 번호에서 새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3]에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사58:13-14를 통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용만 한 뒤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직접 풀이합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85의 매우 중요한 문장입니다. 천적 인간의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행동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 단지 외부에서 그에게 명령되는 뜻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AC.81에서 천적 인간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결박도 없는 것처럼 보이며 자유롭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결박은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한 설명을 한층 더 이해하게 합니다. 천적 인간에게 주님의 뜻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외부에서 강제로 시키는 명령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뜻이 되기 때문에 그는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간에게 더 이상 의지가 없다거나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원문 자체가 주님의 선하신 뜻이 그의 이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AC.85가 말하는 안식은 행동이나 의지가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천적 인간의 뜻이 주님의 선하신 뜻과 일치하는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결과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천적 인간은 내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이것이 땅의 높은 곳에 올림을 받는 으로 표현됩니다.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리며, 이것이 야곱의 기업으로 양육되는 으로 의미됩니다. 여기서는 스베덴보리 자신이 두 표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주므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따라서 사58:13-14AC.85에 인용된 핵심도 분명합니다. 안식일의 외적인 규정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자기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자신의 뜻이 된 상태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이 있습니다.

 

AC.85 전체의 흐름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며, 주님의 가장 내적인 교회도 안식일이고,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 주님의 형상으로서 안식일입니다. 그 안식에 앞서 여섯 날의 싸움 또는 수고가 있으며, 이것이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 그리고 법궤의 나아감과 쉼으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적 인간의 안식이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는 사58:13-14를 통하여 설명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주님의 뜻이 그의 뜻이 됩니다. 바로 이 상태에서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 외적인 평온과 기쁨을 누립니다. (AC.85 해설)

 

심화

1. 아르카나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 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 심화1. ‘이 아르카나는 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는가?’ AC.85의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고 그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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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일의 저녁 -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상태’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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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모든 싸움이 그친 안식의 상태다’ (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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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5, ‘면류관 벗어서’, 찬69, ‘온 천하 만물 우러러입니다.

 

오늘은 2 첫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절로 3, AC 글 번호로는 82번에서 84번입니다만, 2 여는 글들 및 개요 글들 포함, 67번부터 다루겠습니다. 여기 여는 글들은 아래 71번 글을 참고하세요.

 

본문 함께 읽습니다.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1-3)

 

이 본문을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의 상태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67, 창2, '말씀의 내적 의미(속뜻)를 알게 하시고, 알리게 하심'

AC.67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에게는 말씀의 내적 의미(the internal meaning of the Word, 속뜻)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내적 의미 안에는 이전에는 누구에게도 알려진 적이 없었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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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8, 창2,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 반응'

AC.68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은 이것이 모두 상상이라고 할 것이며,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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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9, 창2, '사람은 본래 영들,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AC.69 사람은 본래 주님에 의해 이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곧,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들과, 그리고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실제로 태곳적에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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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0, 창2, ‘소생’, 곧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으로 들어갈 때

AC.70 여러 해 동안 제가 듣고 보았던 것을 밝히는 것이 저에게 허락되었으므로, 여기에서는 먼저 사람이 ‘소생될 때’(when he is being resuscitated), 곧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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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1, 창2, 'AC 전개 방식'

AC.7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말씀 본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 사이에 그대로 끼워 넣게 되면, 그것들은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그것들을 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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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2, 창2, '이런 방식을 이 장 끝에서부터 적용'

AC.72 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져 영원한 삶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말해도 좋다는 허락을 저는 받았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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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3, 창2:1-17 개요,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1절)

창2:1-17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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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4, 창2:1-17 개요, '일곱째 날과 안식, 천적 인간'(2-3절)

AC.7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이며, 그날에 주님께서 쉬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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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5, 창2:1-17 개요, '초목과 채소, 천적 인간의 내적 구조'(5-6절)

AC.75 그의 지식과 그의 이성(knowledge and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은 안개에 의해 적셔지는 땅에서 난 초목과 채소(the shrub and the herb)로 묘사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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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6, 창2:1-17 개요, ‘생명의 숨, 천적 인간의 생명'(7절)

AC.76 그의 생명은 그에게 ‘생명의 숨’(the breath of lives)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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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7, 창2:1-17 개요, '동방의 에덴동산, 천적 인간의 지성'(8-9절)

AC.77 그다음으로 그의 지성은 ‘동방의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안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들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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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창2:1-17 개요, '네 강, 천적 인간의 속 사람과 겉 사람'(10-14절)

AC.78 지혜(Wisdom)는 동산 가운데 있는 강을 의미합니다. 그로부터 네 강이 나뉘어 나오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good and truth)입니다. 둘째는 모든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knowledge [co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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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경작하며 지킴, 천적 인간의 상태'(15절)

AC.79 천적 인간은 이러한 동산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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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0,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오직 퍼셉션으로만'(16-17절)

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하고 참된지를 아는 지식 얻는 것은 허락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얻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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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천적 인간,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종 상태'

AC.81 이 장은 ‘천적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앞의 장은 ‘죽은 상태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 영적 인간이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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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2,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AC.82-8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창2:1) AC.82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이제 영적 상태에 이르러(render) ‘여섯째 날’(the sixth day)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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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 ‘천지와 만물’(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지니라’(finished)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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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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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최근 개신교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 오랜만에 참 익숙하지만, 그러나 무척 낯설었던 시간을 가졌는데요, 참 익숙했던 건, 제가 개신교에서 50대 후반까지 머물렀었기 때문이고, 또 무척 낯설었던 건 예배와 설교 전반에 아르카나, 즉 ‘속의 언어’가 아닌, 세상 언어, 곧 ‘겉의 언어’가 많이 섞인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아르카나를 처음 접하던 초창기처럼 무슨 반감이 들거나 그러진 않았는데요, 스베덴보리가 죽는 날까지 자신의 배경인 루터교회를 출석했던 거나 주님이 안식일마다 유대교 회당을 찾으셨던 것처럼, 저 역시 전심으로 그 예배에 참여, 함께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즐거워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두 세계의 언어가 섞인 예배였지만, 속으로 실시간 통역을 하면서 ‘, 이걸 이렇게, 저걸 저렇게 표현한 거구나!’ 하면서 드렸습니다. 우리 안에 와있는 천사들 역시 우리의 일상 일거수일투족 중 그렇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아르카나 순도 8, 90%의 예배는 지상에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100%는 천국에서나 가능하겠지요. 어쩌면 주님이 훗날을 위해 미리 우리 교회를 통해 이것저것 테스트를 진행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과 ‘’은 같이 갑니다. ‘’은 ‘’이라는 그릇에 담기며, ‘’이라는 옷을 입고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동안 자연적 인간과 영적, 천적 인간 역시 같이 갑니다. 우리의 영적, 천적 인간은 겉으로 보기엔 ‘자연적 인간’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쉽진 않으시겠지만, 항상 이 ‘균형’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4-12(D1)

 

2646, 1, 창2.1, 2026-04-12(D1)-주일예배(창2,1-3, AC.67-84),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pdf
1.13MB

 

 

 

주일예배(2026/04/05, 창1:26-31, AC.51-66, 부활절),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 (3), 주님의 부활로 본 창1'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4, ‘왕 되신 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161, ‘할렐루야 우리 예수’입니다. 오늘은 창1 일곱 번째, 창1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은 26절로 31절,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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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여섯 동안 일하셨으므로 그것을 그분의 (his work)이라 하며, 그때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rest from all his work) 합니다. 때문에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 자체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seventh day,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rest from all his work.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rest.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AC.84는 창2:2-3일곱째 안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직접 밝힙니다. 스베덴보리는 첫 문장에서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일곱째 날은 단순히 여섯 날의 창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시간상의 하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는 거듭남을 통하여 천적 인간이 된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83과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었을 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 됨 가운데 신앙이 아니라 사랑, 곧 영적인 것이 아니라 천적인 것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4에서는 그 천적 인간을 일곱째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섯째 날에서 일곱째 날로 넘어가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진행이 아니라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이어지는 거듭남의 질서와 관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일을 그분의 , 곧 주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1에서 묘사된 여섯 날 동안 사람 안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AC.84는 그 전체를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하신 일로 돌립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것과 함께, 그 앞의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일이 그분의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은 거듭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AC.84가 여기서 직접 밝히는 것은 여섯 날의 일이 누구의 일이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싸움에서의 역할이 어떻게 주님의 역사와 함께 성립하는지는 이후의 더 충분한 설명을 따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이 번호에서 분명한 것은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형성되어 천적 인간에 이르는 과정 전체의 근원적인 역사가 주님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또 하나의 이유는 모든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AC.81에서 이미 설명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와 직접 연결됩니다. 영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만 언제나 승리한다고 했고, 천적 인간은 싸움 가운데 있지 않으며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을 업신여긴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4에서는 그 차이를 일곱째 날의 안식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모든 싸움이 그친다는 것은 천적 인간에게 악과 거짓이 다시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AC.81은 천적 인간도 악과 거짓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 인간처럼 그것들과 싸움 가운데 있지 않고 그것들을 업신여깁니다. 그러므로 AC.84싸움의 그침은 일반적인 삶의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다는 뜻도 아니고, 악과 거짓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거듭남의 문맥에서의 싸움입니다.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안식을 인간처럼 일을 많이 하신 뒤 피곤하여 쉬시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원문 자체가 주님의 안식을 모든 싸움의 그침과 직접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날 동안 주님께서 일하셨고, 천적 인간의 상태에 이르러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그 모든 일에서 쉬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으며, 안식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하였습니다. AC.84에서 안식일의 의미는 먼저 천적 인간과 싸움의 그침에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단순히 외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날로만 이해하면 이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밝히는 속뜻을 충분히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일곱째 날이 나타내는 천적 인간의 상태와 주님의 안식이 안식일의 속뜻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습니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세 표현이 각각 정확히 무엇을 구별하여 의미하는지는 AC.84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번호만으로 세 동사에 각각 별도의 상응을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지금까지 설명한 여섯 날의 일과 일곱째 날의 안식을 인간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과정과 연결한다는 점입니다.

 

이 문장은 창1과 창2의 창조 이야기를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앞 장에서는 죽어 있던 사람으로부터 영적 인간이 형성되는 여섯 날의 과정이 설명되었고, 이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어 사랑이 주된 것이 되면서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말은 지금까지 설명해 온 인간의 거듭남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입니다.

 

AC.84는 이렇게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 사이의 전환을 매우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천적 인간은 일곱째 이며, 그 앞의 여섯 날 동안 이루어진 것은 주님의 입니다. 천적 인간의 상태에서는 모든 싸움이 그치므로 주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고 쉬신다고 하며, 이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AC.84 해설)

 

 

 

AC.85, 창2:2-3, ‘주님 자신이 안식일이시며, 주님의 뜻이 천적 인간의 뜻이 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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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될 때, 사랑이 주된 것이 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하늘과 땅과 그 모든 만상’(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 ‘다 이루어졌다’(finished)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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