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1
‘형상’(image)에 대해 말하자면, 형상은 닮음(likeness) 그 자체가 아니라 닮음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라고 말합니다. 영적 인간은 ‘형상’(image)이고, 천적 인간은 ‘모양’(likeness), 곧 닮음(similitude)입니다. 이 장에서는 영적 인간을, 다음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룹니다. ‘형상’(image)인 영적 인간을 주님은 ‘빛의 아들’(son of l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As regards the “image,” 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 it is therefore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The spiritual man is an “image,” and the celestial man a “likeness,” or similitude. In this chapter the spiritual man i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the celestial. The spiritual man, who is an “image,” is called by the Lord a “son of light,” as in John: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 36) He that walketh in the darkness knoweth not whither he goeth. While ye have the light, believe in the light, that ye may be sons of light (John 12:35–36).
또한 ‘친구’(friend)라고도 하십니다. He is called also a “friend”: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4, 15) Ye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John 15:14–15).
그러나 ‘모양’(likeness), 곧 닮음인 천적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son of God)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But the celestial man, who is a “likeness,” is called a “son of God,” in John: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주4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 13)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the power to becom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who were born not of bloods,4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John 1:12–13).
주4, 헬라어는 ἐξ αἱμάτων입니다. 아래 AC.374 [3]번 단락을 보세요. [편집자] The Greek is ex haimat¯on. See below, at n. 374[3]. [Reviser]
해설
AC.51은 창1:26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표현에서 ‘형상’과 ‘모양’을 구별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두 말을 거의 같은 뜻의 반복처럼 읽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문장에서부터 ‘형상은 모양 자체가 아니라 모양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곧바로 영적 인간은 ‘형상’, 천적 인간은 ‘모양’, 곧 닮음이라고 구별합니다.
처음 읽으면 ‘형상이 모양 자체는 아니지만 모양을 따른다’는 말이 상당히 난해합니다. 여기서 너무 빨리 ‘형상은 닮아 가는 과정이고 모양은 완성된 상태’라는 식으로 공식을 만들어 버리기보다, 우선 AC.51이 직접 제시하는 구별을 그대로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이고, 천적 인간은 주님의 ‘모양’입니다. 형상은 모양과 동일하지 않지만 모양을 따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주제 차이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 곧 창세기 1장에서는 영적 인간을 다루고, ‘다음 장’, 곧 창세기 2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창1과 창2를 읽는 데 매우 중요한 안내입니다. 창세기 2장을 단순히 창세기 1장의 자연계 창조 이야기를 다른 순서로 다시 기록한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AC의 속뜻에서는 서로 다른 인간 상태를 다루는 것으로 읽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 AC.48에서는 여섯째 상태의 사람이 ‘영적 인간’이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AC.51의 ‘영적 인간은 형상이다’라는 말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을 따라 설명해 온 거듭남이 영적 인간, 곧 ‘형상’에 이르는 데까지 온 것입니다. 반면 ‘모양’인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루겠다고 미리 알려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영적 인간은 미완성 단계이고 천적 인간은 완성 단계다’, 또는 ‘모든 영적 인간은 계속 거듭나면 반드시 천적 인간으로 승급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51은 그런 체계를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앞으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므로, 지금은 그가 제시하는 ‘형상’과 ‘모양’의 구별을 먼저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어서 AC.51은 매우 흥미롭게도 이 두 인간을 복음서의 서로 다른 호칭과 연결합니다. 먼저 ‘형상’인 영적 인간은 주님께서 ‘빛의 아들’이라고 부르신다고 하면서 요12:35-36을 인용합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이 인용의 직접적인 목적은 요한복음의 ‘빛’과 ‘어둠’에 관한 모든 상응을 자세히 해설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영적 인간이 ‘빛의 아들’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앞의 창조 과정과 연결하면 이 표현이 낯설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의 거듭남에서 빛과 광명체는 이미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AC.51은 여기서 ‘빛의 아들’이라는 말을 근거로 영적 인간의 모든 심리적 특성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빛의 아들은 아직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분별해야 하는 단계다’, ‘빛이 주어질 때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사라진다’는 등의 구체적인 영적 법칙을 이 인용에서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형상인 영적 인간을 주님께서 빛의 아들이라 부르신다’는 연결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인간을 또한 ‘친구’라고 한다면서 요15:14-15을 인용합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 말씀 역시 AC.51에서는 영적 인간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는 근거로 사용됩니다. 물론 본문 자체에서 주님은 친구와 종을 구별하시고, 친구에게 아버지께 들은 것을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AC.51은 여기서 ‘종 = 외적 순종, 친구 = 내적 일치’라는 완성된 상응 체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친구이기 때문에 아직 아들은 아니며,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만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않은 상태’라고 단계화하는 것도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AC.51은 영적 인간을 ‘빛의 아들’과 ‘친구’라는 두 표현으로 가리키고, 이어 천적 인간을 다른 표현과 연결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 호칭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이 짧은 글에서 계급이나 단계처럼 구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 ‘모양’, 곧 닮음인 천적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서 요1:12-13을 인용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AC.51에서 이 구절을 가져오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천적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현재 해설처럼 ‘자녀란 아버지의 뜻이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존재이고, 사랑의 근원이 완전히 바뀐 상태’라고 자세한 거듭남 메커니즘을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요1:13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표현이 천적 인간과 연결된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은 중요합니다. 그 상태의 내적 성질은 다음 창세기 2장과 이후 AC에서 훨씬 더 자세히 펼쳐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베덴보리는 영적 인간을 ‘형상’, 천적 인간을 ‘모양’이라고 구별하는 것일까요? AC.51의 첫 문장은 분명히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 차이를 여기서 충분히 해설하지는 않습니다. ‘형상은 모양 자체가 아니라 모양에 따른 것’이라는 짧은 표현만 줍니다. 그러므로 처음 읽는 독자가 ‘둘이 도대체 얼마나 다른 것인가?’, ‘형상은 덜 닮고 모양은 더 많이 닮았다는 뜻인가?’, ‘영적 인간이 나중에 천적 인간이 된다는 뜻인가?’라고 궁금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이 문제는 AC.51 자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면서 이후의 영적·천적 구별을 계속 읽는 데도 필요하므로 별도의 심화에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형상’이라고 해서 가치 없는 불완전한 복제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 앞 AC.48에서 스베덴보리는 여섯째 상태에 이른 영적 인간을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신앙으로부터뿐 아니라 사랑으로부터도 행동하기 시작하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따라서 ‘형상’은 아직 영적 생명이 시작되지 않은 낮은 상태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모양’을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해지는 상태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앞의 AC.49-50에서 모든 선과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 주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주님의 형상이나 모양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되거나 주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해진다는 뜻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주님에게서 생명과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이 점에서 AC.51은 앞의 세 글과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AC.48에서는 영적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고, AC.49에서는 최고의 뜻에서 참 사람은 주님이시며 인간 안의 참된 사람됨도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에 있다고 했습니다. AC.50에서는 사람의 생명과 거듭남의 실제 주체 역시 주님 한 분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AC.51은 그 주님의 ‘형상’과 ‘모양’ 사이에도 구별이 있음을 밝히면서, 창세기 1장의 영적 인간에서 창세기 2장의 천적 인간으로 시선을 옮길 준비를 합니다.
따라서 AC.51의 중심을 ‘형상에서 모양으로 올라가는 거듭남의 단계’라고 너무 빨리 정리하기보다는, 먼저 스베덴보리가 의도적으로 구별한 두 인간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 인간은 ‘형상’이며 ‘빛의 아들’, ‘친구’라고 불립니다. 천적 인간은 ‘모양’, 곧 닮음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립니다. 창세기 1장은 전자를, 창세기 2장은 후자를 다룹니다. 그리고 형상은 모양 자체는 아니지만 모양을 따릅니다. 이 짧은 구별이 앞으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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