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

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living soul) 짐승(beast)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동시에 함께 행동하기 시작하므로, 그는 형상(image)이라 하는 영적 인간이 됩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것들이 그의 음식(food) 됩니다. 또한 그의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로부터 싸움이 일어나며,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고, 그는 천적 인간이 됩니다.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living souland thebeast.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image.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가축을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지면의 맺는 모든 채소와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4-31)

 

해설

AC.11의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닌 것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AC.12의 여섯 번째 상태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섯 번째 상태를 단순히 사랑의 단계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동시에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이 표현을 그대로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먼저 신앙이 사랑을 만들어 내고, 사랑이 뒤따라 행동한다는 식의 고정된 공식으로까지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AC.12에서 분명한 것은 이제 신앙과 사랑이 서로 떨어져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동시에 함께행동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앞의 상태들과 비교하면 여섯 번째 상태의 특징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AC.9의 세 번째 상태에서는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나타났지만 아직 생기가 없었습니다. AC.10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고, AC.11에서는 신앙으로 말하며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고 생기 있는 것들을 산출했습니다. 이제 AC.12에서는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함께 행동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짐승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의 여섯째 날에 등장하는 생물들과 연결됩니다. 다만 AC.12는 개요이므로 여기서 짐승각각의 세부적인 상응을 미리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의미는 뒤에서 창1의 여섯째 날을 본격적으로 해설하면서 더 자세히 다루어집니다.

 

여기서 우선 중요한 것은 다섯째 상태에서 이미 생기를 지닌 것들이 등장했고, 여섯째 상태에서도 사람에게서 살아 있는 것들이 산출된다는 흐름입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식물에 이어 물고기와 새가 나타나고, 다시 땅의 생물과 사람이 등장하는 순서가 거듭남의 상태들과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AC.12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사람은 이제 영적 인간이 되며, 그를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26-27하나님의 형상과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형상의 모든 교리적 의미를 한꺼번에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AC.12가 지금 직접 제시하는 것은 사람이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동시에 함께 행동하기 시작함으로써 영적 인간이 되고, 그 영적 인간을 형상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형상이라고 하는지, ‘모양과는 어떻게 다른지는 뒤의 관련 본문에서 더 자세히 밝혀집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형상을 단순히 외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는 분명합니다. 1하나님의 형상은 여기서 거듭난 영적 인간의 상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형상이란 정확히 신앙과 사랑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다라고 하나의 정의로 고정하기보다, AC.12가 제시하는 관계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이 영적 인간에게 두 종류의 생명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영적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적 생명입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그의 음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음식이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람의 몸이 음식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스베덴보리는 영적 생명도 그것을 기쁘게 하고 유지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AC.12에서 그것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입니다.

 

다만 이것을 이제 진리 공부와 선행이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다고 너무 심리적으로 구체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문은 영적 생명이 그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깊습니다. 영적 인간에게 신앙의 지식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이 영적 생명을 기쁘게 하고 유지하는 음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자연적 생명도 존재합니다.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됩니다. 영적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몸과 감각에 속한 자연적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것 역시 계속 존재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두 생명으로부터 싸움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AC.12가 직접 말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영적 인간이 되고 형상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내적 갈등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과 체어리티에 속한 것들로,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기 때문에 그로부터 싸움이 일어납니다.

 

여기서도 모든 자연적 즐거움 자체를 악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12는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을 악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의 핵심은 영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이 각각 무엇으로 기뻐하고 유지되는지를 설명하고, ‘이로부터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

 

그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AC.12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후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이 이미 영적 인간이 되어 형상이라 불리지만, 스베덴보리는 거기서 설명을 끝내지 않습니다. 영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고, 사랑이 지배권을 얻은 후에는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다만 여기서 천적 인간의 상태를 너무 앞서 상세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적 인간은 아무런 갈등 없이 본능적으로 선을 행한다’, ‘신앙은 이제 완전히 사랑에 흡수된다와 같은 구체적인 설명은 이 한 문장만으로 모두 확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AC.12가 지금 직접 말하는 것은 사랑이 지배권을 얻은 후 그가 천적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지배권이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AC.12는 사랑이 단순히 신앙과 나란히 존재한다고만 하지 않습니다. 싸움이 계속되어 마침내 사랑이 지배권을 얻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섯 번째 상태의 영적 인간과 그 후의 천적 인간 사이에는 스베덴보리가 분명히 구별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 상태를 곧바로 거듭남의 완전한 종착점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섯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영적 인간이 되고 형상이라 불리지만, 아직 싸움이 있으며 사랑이 지배권을 얻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AC.12 자체가 그 뒤에 천적 인간의 상태를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창1의 여섯째 날 다음에 일곱째 날이 있다는 사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를 지금 여기서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AC.12에서는 여섯 번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 상태 뒤에도 사랑이 지배권을 얻기까지 싸움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AC.12를 통해 우리는 거듭남을 단순히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미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는 단계가 있었고, 신앙과 체어리티가 불붙는 단계가 있었으며, 생기 있는 것들이 나타나는 단계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함께 행동하는 영적 인간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영적 인간에게도 영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이 함께 있으며 그로부터 싸움이 일어납니다. 거듭남의 깊이는 단순한 외적 행동의 변화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습니다.

 

따라서 AC.12의 여섯 번째 상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며,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함께 행동함으로써 형상이라 하는 영적 인간이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문장은 아닙니다. 영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으로부터 싸움이 일어나고, 그 싸움은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후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됩니다. AC.12는 여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 너머에 있는 상태까지 이렇게 짧게 열어 보여 줍니다.  

 

심화

1. 신앙과 사랑이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 구체적인 삶의 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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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 창1 개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상태까지만'

AC.13 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두 번째 상태까지만, 또 다른 이들은 세 번째,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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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 창1 개요, '다섯 번째 상태'

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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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 하늘의 새들(birds of the heavens)이라 불립니다. The fifth state is when the man discourses from faith,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ruth and good: the things then produced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fish of the sea,and thebirds of the heavens.

 

 

해설

AC.10의 네 번째 상태에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으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AC.11의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 신앙으로부터 실제로 말하는 상태가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표현은 신앙으로 말한다입니다. 앞의 세 번째 상태에서도 사람은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선들은 아직 생기가 없었고, 네 번째 상태에 이르러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 신앙으로부터 말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AC.11이 말하는 변화는 단순히 사람이 종교적인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건한 말 자체는 이미 앞 단계에서도 있었습니다. 차이는 그 말이 이제 신앙으로부터나온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AC.11이 다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하는 특징입니다.

 

이어지는 그로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는 표현은 조금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확증한다는 말을 곧바로 삶의 경험을 통하여 진리와 선이 참됨을 검증한다고 풀 필요는 없습니다. AC.11 자체는 그렇게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선 원문 그대로,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면서 진리와 선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확증한다는 말 때문에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문장의 대상이 분명히 진리와 안에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말하면서 진리와 선 안에서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AC.11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이어집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세 번째 상태와 매우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AC.9에서는 사람이 경건하게 말하고 체어리티의 행위들과 같은 선을 행하면서도, 그것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선들이 아직 생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닌 것들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생기를 지닌다는 표현은 다섯 번째 상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다만 이것을 근거로 이제 주님의 생명이 그의 모든 말과 행동 속에 직접 흘러들어 실제적인 영적 생명력이 흐른다는 식으로 세부적인 작동 과정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AC.11이 직접 말하는 것은 네 번째 상태를 지나 신앙으로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사람에게서 이제 생기를 지닌 것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생기 있는 것들을 바다의 물고기하늘의 새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창1의 다섯째 날에 물에서 생물들이 나오고 새들이 하늘을 나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AC.11은 아직 물고기는 정확히 무엇이고 새는 정확히 무엇인가를 세부적으로 해설하는 단락이 아닙니다. 지금은 여섯 상태를 개괄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물고기를 특정한 종류의 기억 지식으로, 새를 특정한 종류의 고차원적 사고로 곧바로 세분하기보다, 다섯 번째 상태에서 산출되는 생기 있는 것들이 창1의 물고기와 새로 표현된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뒤에서 다섯째 날의 본문을 해설할 때 더 자세히 밝혀집니다. 개요인 AC.11에서 뒤의 설명을 모두 앞당겨 넣으면 오히려 지금 스베덴보리가 보여 주려는 여섯 상태의 단순하고 선명한 흐름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AC.9생기 없는 것들AC.11생기 있는 것들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바로 AC.10의 네 번째 상태입니다. 거기에서 사람은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았으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습니다. 그 다음 상태인 AC.11에서 사람은 신앙으로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니게 됩니다.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상태에서는 이미 선한 말과 행위가 있었지만 아직 생기가 없었습니다. 네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으로부터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생기 있는 것들이 산출됩니다.

 

따라서 다섯 번째 상태를 단순히 신앙이 지식에서 삶으로 바뀌는 단계라고 요약하는 것도 조금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AC.11은 앞의 상태에서 신앙이 단순한 지식에 불과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 번째 상태에서 이미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다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상태의 특징은 그 다음에 나타나는 신앙으로 말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함’, 그리고 생기 있는 것들의 산출입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사람의 자유와 책임이 얼마나 커지는지, 혹은 이때부터 사람이 자신의 신앙과 행동의 불일치를 얼마나 더 분명하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도 AC.11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이 스베덴보리의 다른 가르침과 연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짧은 개요 안에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섯 번째 상태를 아직 신앙이 중심이고 사랑은 뒤에 있으며, 다음 단계에서 사랑이 주도권을 잡는다는 식으로 너무 구체적인 심리적 발전 과정으로 재구성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다음 AC.12가 여섯 번째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그 글 자체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AC.11에서는 오히려 한 가지 매우 분명한 사실을 붙들면 됩니다.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사람이 산출하는 것들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있으면서도 생기 없는 것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생기를 지닌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창조 이야기의 순서와 연결합니다. 셋째 날에는 땅에서 식물이 나왔고,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라는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 나타납니다. 거듭남의 개요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세 번째 상태의 선들은 아직 생기가 없는 것으로 불렸고, 다섯 번째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으로 불립니다.

 

이 점은 창1의 창조 순서가 왜 스베덴보리에게 거듭남의 연속적인 상태들을 표현하는지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자연계의 생물학적 창조와 영적 거듭남의 모든 세부를 일대일로 설명하려 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제시하는 대응 관계를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AC.11의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니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생기 있는 것들이 창1바다의 물고기하늘의 새들로 표현됩니다.

 

AC.11은 그 이상을 아직 요구하지 않습니다. 물고기와 새의 세부적인 의미도, 신앙과 사랑의 이후 관계도 뒤에서 각각 밝혀질 것입니다. 지금은 네 번째 상태에서 속 사람 안에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에 이어, 다섯 번째 상태에서 신앙으로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확증되며 생기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흐름을 붙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심화

1.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 무슨 뜻인가?

 

AC.11, 심화 1,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는 무슨 뜻인가?

AC.11.심화1.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는 무슨 뜻인가? AC.11을 처음 읽으면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라는 표현에서 조금 멈추게 됩니다. 우리말의 ‘확증하다’는 보통 어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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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창1 개요, '여섯 번째 상태'

AC.12 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산 영’(living soul)과 ‘짐승’(beast)이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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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 창1 개요, '네 번째 상태'

AC.10 네 번째 상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는 때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경건하게 말하고 선한 것들을 행했으나, 그것은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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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

 

번째 상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는 때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경건하게 말하고 선한 것들을 행했지만, 그것은 그가 겪고 있던 시험과 곤경의 결과였으며,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사람 안에서 불붙게 되었으며, 이것들을 광명체(luminaries)라고 합니다. The fourth state is when the man becomes affected with love, and illuminated by faith. He indeed previously discoursed piously, and brought forth goods, but he did so in consequence of the temptation and straitness under which he labored, and not from faith and charity; wherefore faith and charity are now enkindled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alled twoluminaries.

 

 

해설

AC.9의 세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이미 회개하여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게 말하고 체어리티의 행위들과 같은 선들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아직 생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그 선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AC.10의 네 번째 상태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은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게됩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세 번째 상태에서도 이미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네 번째 상태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선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으로 보면 이전에도 상당히 신앙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AC.10은 그 이전의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우러나온 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구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그가 겪고 있던 시험과 곤경의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앞의 AC.8에서 시험, 불행, 슬픔을 통해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잠잠해지고 마치 죽은 것처럼 된다고 했던 설명과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지나면서 AC.9에서는 실제로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나타났지만, 아직 그것들의 생명이 신앙과 체어리티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AC.10의 변화는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하던 사람이 좋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변화가 아닙니다. 좋은 말과 행동은 이미 앞 단계에 있었습니다. 이제 달라지는 것은 그것들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시험과 곤경의 결과로 경건하게 말하고 선을 행했다면, 이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합니다.

 

불붙는다는 표현은 원문의 enkindled를 옮긴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단지 사람에게 알려지거나 기억되는 정도가 아니라 속 사람 안에서 불붙는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AC.10에서 네 번째 상태를 이전 상태와 구별하는 핵심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첫 문장의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는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사랑과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지식이나 외적인 행위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감동됨, 신앙에는 밝아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이것을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다만 AC.10 한 단락에서 사랑에 감동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적 체험을 의미하는지까지 세밀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별한 종교적 감격이나 강렬한 감정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본문을 넘어섭니다. AC.10이 직접 말하는 범위에서는 이전과 달리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살아 있게 되는 변화에 주목하면 충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신앙과 체어리티를 두 광명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14 이하에서 넷째 날에 등장하는 두 큰 광명체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AC.10은 아직 두 광명체 각각의 상응을 자세히 설명하는 단락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직접 말하는 것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가 두 광명체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짧은 개요에서 두 광명체 각각의 의미를 너무 앞서 세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뒤에서 창1의 넷째 날을 본격적으로 해설할 때 스베덴보리는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 낮과 밤, 해와 달 등의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AC.10에서는 여섯 상태 전체를 개괄하는 흐름 안에서 네 번째 상태의 핵심만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이전에도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있었지만 이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 상태는 외적 행동의 변화보다 그 행동의 내적 근원이 달라지는 상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적 근원이 달라진다는 표현도 조심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AC.10이 사람이 이때 비로소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온다는 교리를 완전히 깨닫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내용을 이 한 단락에 미리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이전의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던 데 비하여, 이제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AC.9생기 없는 AC.10의 차이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세 번째 상태의 사람은 실제로 선을 행했지만 아직 그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겼습니다. 네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거듭남의 진전은 단순히 선행의 양이 많아지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같은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라도 그것을 낳는 내적 상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AC.10은 시험과 곤경 자체를 거듭남의 생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앞 단계에서 그것들은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잠잠해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고, 세 번째 상태의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상태를 특징짓는 것은 더 이상 시험과 곤경이 아니라 속 사람 안에서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거듭남을 고난 때문에 착해지는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AC.10이 보여 주는 네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 자체가 속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전의 외적인 압박과 곤경에서 나온 반응과 구별되는 새로운 상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두 광명체라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넷째 날 광명체들이 등장하듯, 거듭남의 네 번째 상태에서도 신앙과 체어리티가 광명체로 나타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이것을 더 세밀하게 나누기보다, 사람의 속 사람 안에 신앙과 체어리티가 불붙는 것이 창1의 두 광명체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AC.7에서 첫 번째 움직임은 주님의 자비였습니다. AC.8에서는 주님의 것과 사람 자신의 것이 구별되고 리메인스가 드러났으며, AC.9에서는 사람이 회개하여 경건하게 말하고 선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AC.10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습니다. 이렇게 여섯 상태의 개요는 한 단계씩 앞의 상태와 구별되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네 번째 상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전에도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는 있었지만, 이제 사람은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으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한다.이것이 AC.10이 말하는 거듭남의 네 번째 상태이며, 바로 이 신앙과 체어리티가 두 광명체라고 불립니다.

 

 

 

 

AC.11, 창1 개요, '다섯 번째 상태'

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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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 창1 개요, '세 번째 상태'

AC.9 세 번째 상태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로서, 이때 사람은 속 사람(internal man)으로부터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말과, 체어리티(charity)의 행위들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생기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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