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0을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 가운데 하나가‘사람마다적어도두영과두천사가함께있다’는 말입니다.그러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두영은악한영을말하는가?’, ‘두천사는우리가흔히말하는수호천사인가?’, ‘거듭난사람에게는악한영들이없어지는가?’,그리고 무엇보다‘왜하필둘씩인가?’
AC.50자체에서는 이 모든 질문을 상세히 풀어 주지 않습니다.그러나‘아르카나코엘레스티아’뒤쪽으로 가면 스베덴보리가 같은 문제를 다시 다루며 훨씬 구체적인 설명을 합니다.따라서 이번 심화에서는AC.50이 직접 말하는 것과 뒤의AC에서 보충되는 내용을 구별하여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AC.50은‘모든사람에게적어도두영과두천사가있다’고 말합니다.그리고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소통하며,천사들을 통해 천국과 소통한다고 합니다.이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악한영들이그와함께있다’고 하고,거듭난 상태에서는 천사들이 다스린다고 설명합니다.여기까지만 보아도AC.50의‘영들’은 천사들과 대비되어 영들의 세계와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들이며,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영들은 악한 영들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AC.5848-5849에서 훨씬 명시적으로 다시 등장합니다.스베덴보리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천사들과 영들이 있으며, ‘천사들은천국에서,영들은지옥에서’온다고 말하고,모든 사람에게 두 영과 두 천사가 있다고 다시 설명합니다.그리고 두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과 소통하게 하고,두 천사는 천국과 소통하게 한다고 합니다.따라서AC.50의‘두영’을 단순히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일반적인 영 둘이라고 이해하는 것보다는,뒤의 설명까지 함께 볼 때 지옥 쪽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영들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사람옆에지옥에서올라온악한영둘과천국의천사둘이몸으로서서늘따라다닌다’는 식으로 자연계의 공간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스베덴보리가 말하는‘함께있음’은 영적 결합과 소통의 문제입니다.그가 실제 영계의 공간과 가까움에 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별도의 큰 주제이므로,AC.50의‘함께있다’를 자연계의 몇 미터 거리처럼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거듭난사람에게는악한영들이완전히없어지고천사들만남는가?’AC.50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2]에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은 그 지배를 막는다고 하며, [3]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면 천사들이 다스린다고 합니다.즉AC.50이 직접 대비하는 것은‘천사와악한영의존재여부’라기보다 어느 쪽의 작용이 지배적인가 하는 상태의 차이입니다.그러나 이 문장만으로‘거듭난뒤에도정확히같은영들이같은방식으로계속머문다’거나‘악한영들은일정거리밖으로물러난다’는 세부까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왜둘인가?’라는 질문으로 가 보겠습니다.이것은AC.50에는 답이 없지만,뒤의AC에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설명합니다.AC.5977-5978에서는 인간에게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이 있으며,천국에는 이에 대응하는 두 종류의 천사들이 있고 지옥에도 이에 반대되는 두 종류의 영들이 있기 때문에 둘이라고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천사 가운데 한 종류는 사람의 의지에 속한 것들에 작용하고,다른 종류는 이해에 속한 것들에 작용합니다.의지에 작용하는 천사들은 사람의 사랑과 목적,따라서 선에 속한 것들과 관계되고,이해에 작용하는 천사들은 신앙과 원리,따라서 진리에 속한 것들과 관계됩니다.그는 앞의 천사들을 천적 천사,뒤의 천사들을 영적 천사라고 부릅니다.
지옥 쪽에도 이에 반대되는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한 종류는 의지에 속한 것들에 작용하고,다른 종류는 이해에 속한 것들에 작용합니다.따라서‘두영과두천사’라는 숫자는 단순히 네 명이라는 기이한 숫자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본 기능에 대응하는 영적 소통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합니다.그렇다고 사람 안의 모든 생각 하나에는‘이해담당천사한명’,모든 애정 하나에는‘의지담당천사한명’이 기계적으로 붙어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스베덴보리가 밝히는 것은 인간의 두 기본 기능과 천국·지옥의 두 종류 사이의 상응 관계입니다.이것을 현대적인 조직도나 신경회로처럼 지나치게 세밀한 기계 구조로 바꾸면 오히려 그의 설명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또‘두천사와두영이있으므로내마음속에서좋은생각하나와나쁜생각하나가항상동시에들려온다’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도 안 됩니다.AC.50과 뒤의 관련 글들은 인간이 천국과 지옥 양쪽과 소통한다는 큰 구조를 설명하지만,개별적인 생각과 느낌 하나하나를 우리가 어느 영의 직접 발언으로 판별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오히려 그런 식의 영적 존재 판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 점은 인간의 책임 문제에서도 중요합니다. ‘악한생각은악한영에게서왔으니내것이아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악을 남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스베덴보리의 더 넓은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유입되는가만이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AC.50에서는 그 자유의 전체 메커니즘까지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최소한‘영들이영향을주므로인간에게책임이없다’는 결론은 피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 천사와 두 영은 각각 독립적으로 자기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존재일까요?이것 역시AC.50이 단호하게 막습니다.천사들은‘사역자들’일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입니다.천사들도 자기들에게 어떤 능력도 없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일한다고 고백한다고 합니다.지옥 쪽의 영들이 작용하는 경우에도 인간의 존재와 생명 전체가 궁극적으로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AC.50의‘두영과두천사’를 읽는 중심은 신비한 호위 존재 넷에 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인간이 스스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생명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이라는 영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 역시 그 영적 질서 안에서 작용하며,그 모든 것 위에서 주님 한 분이 섭리 가운데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고 거듭남을 이루신다는 것이 더 중요한 핵심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AC.50은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있다고 말하며,뒤의AC.5848-5849는 두 영을 지옥과의 소통,두 천사를 천국과의 소통과 연결합니다.그리고AC.5977-5978은 그들이 왜 둘씩인지에 대해 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에 각각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그러므로‘두영과두천사’는 임의적인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이해,그리고 천국과 지옥과의 영적 소통이라는 더 큰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찬68,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입니다.
오늘은창1 여섯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24절로 26절, AC 글 번호로는 46번에서 50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4-26)
이 본문을
사람을 향한 창조, 형상으로 나아가는 여섯째 날
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주일예배라는 특별한 사정으로 다 다루지 못한 부분들도 돌아가셔서 꼭 몇 번씩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신앙 반석, 그 주춧돌이 깊이, 그리고 아주 견고하게 놓아져 가는 느낌을 받게 되실 겁니다. 오늘 설교 원고 중에 수많은 보석 같은 비밀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거듭남’이며, 놀라운 사실은 이 수십 장 원고가 정말 다양한 각도로 이 거듭남을 비추고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이 AC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의 시간은 그 순간순간이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순도 100%의 설교이며, 우리의 눈, 특히 심령을 맑고 밝게 하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AC.50
태고교회는‘주의형상’(imageoftheLord)이라는말로표현할수있는것보다훨씬더많은것을이해하고있었습니다.사람은자신이천사들과영들에의해주님의다스림을받고있다는사실을전혀알지못하고있는데,그러나실제로는사람마다적어도두영과두천사가함께있다는사실입니다.영들을통해사람은영계와소통하고,천사들을통해서는천국과소통하는것이지요.영계를통한소통과,천국을통한소통,그리고그천국을통해주님과연결되지않는다면,사람은전혀살수없는구조입니다.사람의생명은이결합에전적으로달려있어서,만일영들과천사들이물러난다면그는즉시사라지고말것입니다.그러니까존재자체를유지할수가없게된다는말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 “imageoftheLord” more than can be expressed.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2] 사람은거듭나기전과후에있어다스림을받는방식이전혀다릅니다.거듭나지않은상태에서는악한영들이사람과함께있으며,그들이사람을강하게지배합니다.이때에도여전히천사들은함께있으나거의아무것도하지못하고,다만사람이가장극단적인악으로떨어지지만않도록막아주며,실제로그의욕정을통해어떤선으로굽히고,감각의오류를통해진리로굽힐뿐입니다.이때사람은함께있는영들을통해영계와는소통하지만,악한영들이지배하고천사들이그지배를겨우막고있는상태이므로,천국과의소통은매우미약합니다. 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3] 그러나사람이거듭나면상황이완전히달라집니다.이제는천사들이주도적으로다스리며,사람에게모든선과진리를불어넣고,악과거짓에대해서는두려움과혐오를일으키게합니다.물론천사들이이끌기는하지만,그것은봉사의방식일뿐이며,실제로사람을다스리는분은오직주님한분뿐입니다.주님께서는천사들과영들의사역을통해사람을다스리십니다.이러한이유로여기에서는먼저복수형으로‘우리의형상대로사람을만들자’(Letusmakemaninourimage)라고하고,곧이어단수형으로‘하나님이자기형상대로그를창조하셨다’(Godcreatedhiminhisownimage)라고합니다.이것은주님께서천사들의사역을통해일하시지만,다스림과창조의주체는오직주님한분뿐이라는사실을드러냅니다.주님께서도이점을이사야에서분명히밝히십니다. 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usmakemaninour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createdhiminhisownimage.”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천사들자신도자신들에게는어떤능력도없으며,오직주님한테서나오는그분의힘으로만자기들은일한다고고백합니다. 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해설
AC.50은 바로 앞의 AC.49에서 시작된 ‘하나님의형상’이라는 주제를 뜻밖의 방향으로 깊게 들어갑니다. AC.49에서는 최고의 뜻에서 참 사람은 주님이시며, 인간 안에서도 주님에게서 온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만이 참으로 ‘사람의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AC.50은 태고교회 사람들이 ‘주의형상’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 하면서, 그 가운데 인간의 생명과 영계·천국의 연결,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합니다.
첫 문장부터 현대 독자에게는 매우 낯선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은 자신이 주님에 의해 천사들과 영들을 통하여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며,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고 합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소통하고, 천사들을 통해 천국과 소통하며, 그리하여 천국을 통해 주님과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결합이 없으면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으며, 영들과 천사들이 물러나면 즉시 소멸할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천사들과영들이사람에게생명을준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C.50의 문장 자체가 연결의 최종점을 ‘주님’에게 둡니다. 사람은 영들의 세계 및 천국과 연결되어 있고 ‘그리하여천국을통해주님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천사나 영이 생명의 독립적인 근원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주님과의 결합에 의존한다는 것이 중심입니다. 앞의 AC.39-43에서도 이미 모든 참된 생명과 선과 진리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점이 반복해서 설명되었습니다.
‘사람마다적어도두영과두천사가함께있다’는 말 역시 처음 접하면 여러 질문을 낳습니다. ‘그렇다면내옆에네명의보이지않는존재가늘따라다닌다는뜻인가?’, ‘두영은모두악한영인가?’, ‘왜하필둘씩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AC.50자체는 그 모든 세부를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후 AC.5848-5849에서도 사람에게 두 영과 두 천사가 있어 각각 지옥과 천국과의 소통을 이루게 한다고 다시 말하며, AC.5977-5978에서는 왜 둘씩인지를 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 및 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의 두 종류와 연결하여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문제는 별도의 심화에서 다루겠습니다.
AC.50의 직접적인 관심은 숫자 자체보다 사람의 상태에 따라 이 영적 다스림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은거듭나기전과거듭난뒤전혀다르게다스림을받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2]와 [3]이 서로 대조됩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사람과 함께 있으며 그들이 강하게 지배한다고 합니다. 천사들도 여전히 함께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가장 낮은 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돌이키고, 그를 어떤 선과 진리 쪽으로 굽히는 정도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사람은 함께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는 소통하지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은 그 지배를 막고 있기 때문에 천국과의 소통은 그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문장이 있습니다. 천사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그의욕정을통해어떤선으로’, ‘감각의오류를통해진리로’ 굽힌다고 합니다. 이것을 ‘욕정과감각의오류가사실은좋은것’이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50이 말하는 것은 사람이 아직 거듭나지 않은 현재 상태에 있을 때 천사들이 그 사람에게 없는 높은 상태를 억지로 전제하여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처해 있는 상태 안에서 극단적인 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며 어떤 선과 진리 쪽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문장만으로 ‘욕정을선한에너지로바꾸면된다’는 일반적인 거듭남 방법론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또 ‘악한영들이지배한다’는 말을 사람에게 아무런 자유나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내악한생각과행동은사실악한영들이한것이니나는책임이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AC.50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천국·지옥 사이의 평형, 그리고 유입된 것을 사람이 어떻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가는 스베덴보리가 다른 곳에서 훨씬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AC.50은 지금 그 전체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라 거듭나기 전과 후에 주님의 다스림이 사람에게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3]에서는 상황이 바뀝니다. 사람이 거듭나면 천사들이 다스리고, 사람에게 모든 선과 진리를 불어넣으며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혐오를 일으키게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천사가선과진리를만들어주는존재’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천사들이 인도하기는 하지만 오직 ‘사역자들’로서 그렇게 할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이 한 문장이 AC.50전체를 읽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앞에서는 영과 천사들의 작용을 매우 강하게 말하지만, 그들을 독립된 주체로 세우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사역자이고, 주님께서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하나님과사람사이에수많은중간존재가있어서하나님은간접적으로만사람에게접근하신다’는 구조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강조점은 오히려 그 모든 사역 가운데 실제로 다스리고 배열하시는 분은 주님 한 분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창1:26의 매우 유명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형상대로내가사람을만들자’가 아니라 ‘우리의형상을따라우리의모양대로우리가사람을만들자’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실까요? AC.50은 이에 대해 아주 분명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주님께서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먼저 복수형으로 ‘우리의형상대로사람을만들자’고 한 것이며, 그러나 실제로 다스리고 배열하시는 분은 주님 한 분뿐이기 때문에 바로 다음 절에서는 단수형으로 ‘하나님이자기형상대로사람을창조하셨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AC.50에서 스베덴보리가 창1:26의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그는 여기서 ‘우리’를 여러 신들의 회의로 보지 않고, 주님과 그분을 섬기는 천사들의 사역이라는 관계 속에서 읽습니다. 그러나 창조와 거듭남의 실제 주체는 천사들이 아니라 주님 한 분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사44:24을 인용합니다. ‘나는만물을지은여호와라홀로하늘을폈으며나와함께한자없이땅을펼쳤고.’ 이 구절을 가져오는 직접 목적은 매우 분명합니다. ‘우리’라는 복수형이 천사들도 창조의 공동 주체라는 뜻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홀로 만물을 지으셨으며, 스베덴보리도 이어서 ‘주님만이다스리고배열하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44:24의 하늘과 땅 각각의 세부 속뜻을 여기서 추가로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인용은 무엇보다 ‘주님홀로’라는 논증을 뒷받침합니다.
마지막 문장도 같은 균형을 확인합니다. 천사들 자신도 자기들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으며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힘으로만 일한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AC.50은 천사들의 역할을 매우 크게 말하면서도 동시에 천사들에게 어떤 독립된 능력도 돌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천사와 영들을 통해 영계와 천국에 연결되어 있지만, 생명의 근원도, 다스림의 근원도, 창조와 거듭남의 주체도 주님 한 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의형상’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현재 해설처럼 ‘하나님의형상=주님의통치가막힘없이흐르는상태’라고 하나의 공식으로 정의하기보다 AC.50이 말하는 만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가 ‘주의형상’이라는 말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 한 뒤, 그들이 알고 있던 인간의 영적 연결과 주님의 다스림을 하나의 예로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에게서는 천사들이 사역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창1:26의 ‘우리의형상대로’와 연결합니다.
따라서 AC.50은 ‘하나님의형상’이 단순히 사람의 외모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동시에 이것을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성품 몇 가지로도 축소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참된 영적 생명 전체가 주님에게 의존하고, 주님께서 천국과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며 거듭나게 하신다는 더 큰 질서 안에서 ‘형상’을 바라봅니다. 다만 형상과 모양의 더 정확한 구별은 다음 AC.51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므로, 그 설명까지 여기서 미리 당겨 올 필요는 없습니다.
AC.50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천사와 영들에 관한 설명이 가장 눈에 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정말 강조하는 것은 ‘네명의보이지않는존재가사람곁에있다’는 신기한 정보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기에게서 독립적으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그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주님과의 결합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들과 영들의 모든 사역 배후에서 실제로 다스리고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형 ‘우리’ 뒤에 곧바로 단수형 ‘하나님이자기형상대로창조하셨다’가 이어집니다. 많은 사역자가 있어도 창조와 거듭남의 주체는 한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