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0.심화

1.  영과  천사 누구이며,  둘씩 있는가?

 

AC.50을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 가운데 하나가 사람마다 적어도  영과  천사가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 영은 악한 영을 말하는가?’, ‘ 천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호천사인가?’, ‘거듭난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이 없어지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필 둘씩인가?

 

AC.50 자체에서는 이 모든 질문을 상세히 풀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뒤쪽으로 가면 스베덴보리가 같은 문제를 다시 다루며 훨씬 구체적인 설명을 합니다. 따라서 이번 심화에서는 AC.50이 직접 말하는 것과 뒤의 AC에서 보충되는 내용을 구별하여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AC.50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영과  천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소통하며, 천사들을 통해 천국과 소통한다고 합니다. 이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그와 함께 있다고 하고, 거듭난 상태에서는 천사들이 다스린다고 설명합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AC.50 영들은 천사들과 대비되어 영들의 세계와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들이며,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영들은 악한 영들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AC.5848-5849에서 훨씬 명시적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천사들과 영들이 있으며, ‘천사들은 천국에서, 영들은 지옥에서 온다고 말하고, 모든 사람에게 두 영과 두 천사가 있다고 다시 설명합니다. 그리고 두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과 소통하게 하고, 두 천사는 천국과 소통하게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AC.50  을 단순히 선악이 정해지지 않은 일반적인 영 둘이라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뒤의 설명까지 함께 볼 때 지옥 쪽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영들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사람 옆에 지옥에서 올라온 악한  둘과 천국의 천사 둘이 몸으로 서서  따라다닌다는 식으로 자연계의 공간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함께 있음은 영적 결합과 소통의 문제입니다. 그가 실제 영계의 공간과 가까움에 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별도의 큰 주제이므로, AC.50 함께 있다를 자연계의 몇 미터 거리처럼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이 완전히 없어지고 천사들만 남는가? AC.50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2]에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은 그 지배를 막는다고 하며, [3]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면 천사들이 다스린다고 합니다.  AC.50이 직접 대비하는 것은 천사와 악한 영의 존재 여부라기보다 어느 쪽의 작용이 지배적인가 하는 상태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으로 거듭난 뒤에도 정확히 같은 영들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머문다거나 악한 영들은 일정 거리 밖으로 물러난다는 세부까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둘인가?라는 질문으로 가 보겠습니다. 이것은 AC.50에는 답이 없지만, 뒤의 AC에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설명합니다. AC.5977-5978에서는 인간에게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이 있으며, 천국에는 이에 대응하는 두 종류의 천사들이 있고 지옥에도 이에 반대되는 두 종류의 영들이 있기 때문에 둘이라고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천사 가운데 한 종류는 사람의 의지에 속한 것들에 작용하고, 다른 종류는 이해에 속한 것들에 작용합니다. 의지에 작용하는 천사들은 사람의 사랑과 목적, 따라서 선에 속한 것들과 관계되고, 이해에 작용하는 천사들은 신앙과 원리, 따라서 진리에 속한 것들과 관계됩니다. 그는 앞의 천사들을 천적 천사, 뒤의 천사들을 영적 천사라고 부릅니다.

 

지옥 쪽에도 이에 반대되는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 종류는 의지에 속한 것들에 작용하고, 다른 종류는 이해에 속한 것들에 작용합니다. 따라서  영과  천사라는 숫자는 단순히 네 명이라는 기이한 숫자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본 기능에 대응하는 영적 소통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 안의 모든 생각 하나에는 이해 담당 천사  ’, 모든 애정 하나에는 의지 담당 천사  이 기계적으로 붙어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밝히는 것은 인간의 두 기본 기능과 천국·지옥의 두 종류 사이의 상응 관계입니다. 이것을 현대적인 조직도나 신경회로처럼 지나치게 세밀한 기계 구조로 바꾸면 오히려 그의 설명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천사와  영이 있으므로  마음속에서 좋은 생각 하나와 나쁜 생각 하나가 항상 동시에 들려온다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도 안 됩니다. AC.50과 뒤의 관련 글들은 인간이 천국과 지옥 양쪽과 소통한다는 큰 구조를 설명하지만, 개별적인 생각과 느낌 하나하나를 우리가 어느 영의 직접 발언으로 판별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영적 존재 판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 점은 인간의 책임 문제에서도 중요합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영에게서 왔으니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악을 남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의 더 넓은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유입되는가만이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AC.50에서는 그 자유의 전체 메커니즘까지 설명하지 않으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영들이 영향을 주므로 인간에게 책임이 없다는 결론은 피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 천사와 두 영은 각각 독립적으로 자기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존재일까요? 이것 역시 AC.50이 단호하게 막습니다. 천사들은 사역자들일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입니다. 천사들도 자기들에게 어떤 능력도 없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일한다고 고백한다고 합니다. 지옥 쪽의 영들이 작용하는 경우에도 인간의 존재와 생명 전체가 궁극적으로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AC.50  영과  천사를 읽는 중심은 신비한 호위 존재 넷에 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생명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이라는 영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 역시 그 영적 질서 안에서 작용하며, 그 모든 것 위에서 주님 한 분이 섭리 가운데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고 거듭남을 이루신다는 것이 더 중요한 핵심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C.50은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있다고 말하며, 뒤의 AC.5848-5849는 두 영을 지옥과의 소통, 두 천사를 천국과의 소통과 연결합니다. 그리고 AC.5977-5978은 그들이 왜 둘씩인지에 대해 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에 각각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영과  천사는 임의적인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이해, 그리고 천국과 지옥과의 영적 소통이라는 더 큰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AC.50, 창1:26, ‘우리의 형상대로’ : 천사와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 주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0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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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68,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입니다.

 

오늘은 1 여섯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24절로 26, AC 글 번호로는 46번에서 50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4-26)

 

이 본문을

 

사람을 향한 창조, 형상으로 나아가는 여섯째 날

 

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46, 창1:24-25, ‘짐승'(beasts), 사람의 애정(affections)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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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 창1:24-25, ‘거듭남의 순서'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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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 창1:24-25,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여섯 번째 상태'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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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9, 창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AC.49-52)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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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0, 창1:26, ‘우리'의 의미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0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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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주일예배라는 특별한 사정으로 다 다루지 못한 부분들도 돌아가셔서 꼭 몇 번씩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신앙 반석, 그 주춧돌이 깊이, 그리고 아주 견고하게 놓아져 가는 느낌을 받게 되실 겁니다. 오늘 설교 원고 중에 수많은 보석 같은 비밀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거듭남’이며, 놀라운 사실은 이 수십 장 원고가 정말 다양한 각도로 이 거듭남을 비추고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이 AC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의 시간은 그 순간순간이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순도 100%의 설교이며, 우리의 눈, 특히 심령을 맑고 밝게 하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3-29(D1)

 

2644, 6, 창1.6, 2026-03-29(D1)-주일예배(창1,24-26, AC.46-50),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 (2)’.pdf
1.02MB

 

 

 

 

주일예배(2026/04/05, 창1:26-31, AC.51-66, 부활절),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 (3), 주님의 부활로 본 창1'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4, ‘왕 되신 주’, 찬230,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찬161, ‘할렐루야 우리 예수’입니다. 오늘은 창1 일곱 번째, 창1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은 26절로 31절,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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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3/22, 창1:14-25, AC.30-45),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2, ‘만유의 주 앞에’와, 찬67,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입니다. 오늘은 창1 다섯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4절로 25절, AC 글 번호로는 30번에서 45번입니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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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6)

 

AC.50

태고교회는 주의 형상(image of the Lord)이라는 말로 표현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천사들과 영들에 의해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마다 적어도 영과 천사가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계와 소통하고, 천사들을 통해서는 천국과 소통하는 것이지요. 영계를 통한 소통과, 천국을 통한 소통, 그리고 천국을 통해 주님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전혀 없는 구조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결합에 전적으로 달려 있어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물러난다면 그는 즉시 사라지고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image of the Lordmore than can be expressed. 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 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 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2] 사람은 거듭나기 전과 후에 있어 다스림을 받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사람과 함께 있으며, 그들이 사람을 강하게 지배합니다. 이때에도 여전히 천사들은 함께 있으나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만 사람이 가장 극단적인 악으로 떨어지지만 않도록 막아 주며, 실제로 그의 욕정을 통해 어떤 선으로 굽히고, 감각의 오류를 통해 진리로 굽힐 뿐입니다. 이때 사람은 함께 있는 영들을 통해 영계와는 소통하지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이 지배를 겨우 막고 있는 상태이므로, 천국과의 소통은 매우 미약합니다. 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 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3] 그러나 사람이 거듭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는 천사들이 주도적으로 다스리며, 사람에게 모든 선과 진리를 불어넣고,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혐오를 일으키게 합니다. 물론 천사들이 이끌기는 하지만, 그것은 봉사의 방식일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분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천사들과 영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기에서는 먼저 복수형으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라고 하고, 곧이어 단수형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일하시지만, 다스림과 창조의 주체는 오직 주님 분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도 점을 이사야에서 분명히 밝히십니다. 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 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없이 땅을 펼쳤고 (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천사들 자신도 자신들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으며, 오직 주님한테서 나오는 그분의 힘으로만 자기들은 일한다고 고백합니다. 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해설

AC.50은 바로 앞의 AC.49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주제를 뜻밖의 방향으로 깊게 들어갑니다. AC.49에서는 최고의 뜻에서 참 사람은 주님이시며, 인간 안에서도 주님에게서 온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만이 참으로 사람의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AC.50은 태고교회 사람들이 주의 형상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 하면서, 그 가운데 인간의 생명과 영계·천국의 연결,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합니다.

 

첫 문장부터 현대 독자에게는 매우 낯선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은 자신이 주님에 의해 천사들과 영들을 통하여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며,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고 합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소통하고, 천사들을 통해 천국과 소통하며, 그리하여 천국을 통해 주님과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결합이 없으면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으며, 영들과 천사들이 물러나면 즉시 소멸할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천사들과 영들이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C.50의 문장 자체가 연결의 최종점을 주님에게 둡니다. 사람은 영들의 세계 및 천국과 연결되어 있고 그리하여 천국을 통해 주님과연결됩니다. 따라서 천사나 영이 생명의 독립적인 근원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주님과의 결합에 의존한다는 것이 중심입니다. 앞의 AC.39-43에서도 이미 모든 참된 생명과 선과 진리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점이 반복해서 설명되었습니다.

 

사람마다 적어도 영과 천사가 함께 있다는 말 역시 처음 접하면 여러 질문을 낳습니다. ‘그렇다면 옆에 명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따라다닌다는 뜻인가?’, ‘ 영은 모두 악한 영인가?’, ‘ 하필 둘씩인가?하는 질문입니다. AC.50 자체는 그 모든 세부를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후 AC.5848-5849에서도 사람에게 두 영과 두 천사가 있어 각각 지옥과 천국과의 소통을 이루게 한다고 다시 말하며, AC.5977-5978에서는 왜 둘씩인지를 인간의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 및 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의 두 종류와 연결하여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문제는 별도의 심화에서 다루겠습니다.

 

AC.50의 직접적인 관심은 숫자 자체보다 사람의 상태에 따라 이 영적 다스림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거듭나기 전과 거듭난 전혀 다르게 다스림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2][3]이 서로 대조됩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사람과 함께 있으며 그들이 강하게 지배한다고 합니다. 천사들도 여전히 함께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가장 낮은 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돌이키고, 그를 어떤 선과 진리 쪽으로 굽히는 정도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사람은 함께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는 소통하지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은 그 지배를 막고 있기 때문에 천국과의 소통은 그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문장이 있습니다. 천사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그의 욕정을 통해 어떤 선으로’, ‘감각의 오류를 통해 진리로굽힌다고 합니다. 이것을 욕정과 감각의 오류가 사실은 좋은 이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50이 말하는 것은 사람이 아직 거듭나지 않은 현재 상태에 있을 때 천사들이 그 사람에게 없는 높은 상태를 억지로 전제하여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처해 있는 상태 안에서 극단적인 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며 어떤 선과 진리 쪽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문장만으로 욕정을 선한 에너지로 바꾸면 된다는 일반적인 거듭남 방법론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영들이 지배한다는 말을 사람에게 아무런 자유나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 악한 생각과 행동은 사실 악한 영들이 것이니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AC.50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천국·지옥 사이의 평형, 그리고 유입된 것을 사람이 어떻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가는 스베덴보리가 다른 곳에서 훨씬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AC.50은 지금 그 전체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라 거듭나기 전과 후에 주님의 다스림이 사람에게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3]에서는 상황이 바뀝니다. 사람이 거듭나면 천사들이 다스리고, 사람에게 모든 선과 진리를 불어넣으며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혐오를 일으키게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천사가 선과 진리를 만들어 주는 존재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천사들이 인도하기는 하지만 오직 사역자들로서 그렇게 할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이 한 문장이 AC.50 전체를 읽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앞에서는 영과 천사들의 작용을 매우 강하게 말하지만, 그들을 독립된 주체로 세우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사역자이고, 주님께서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수많은 중간 존재가 있어서 하나님은 간접적으로만 사람에게 접근하신다는 구조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강조점은 오히려 그 모든 사역 가운데 실제로 다스리고 배열하시는 분은 주님 한 분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창1:26의 매우 유명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형상대로 내가 사람을 만들자가 아니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실까요? AC.50은 이에 대해 아주 분명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주님께서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먼저 복수형으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한 것이며, 그러나 실제로 다스리고 배열하시는 분은 주님 한 분뿐이기 때문에 바로 다음 절에서는 단수형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AC.50에서 스베덴보리가 창1:26우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정확하게 보여 줍니다. 그는 여기서 우리를 여러 신들의 회의로 보지 않고, 주님과 그분을 섬기는 천사들의 사역이라는 관계 속에서 읽습니다. 그러나 창조와 거듭남의 실제 주체는 천사들이 아니라 주님 한 분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사44:24을 인용합니다.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없이 땅을 펼쳤고.이 구절을 가져오는 직접 목적은 매우 분명합니다. ‘우리라는 복수형이 천사들도 창조의 공동 주체라는 뜻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홀로 만물을 지으셨으며, 스베덴보리도 이어서 주님만이 다스리고 배열하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44:24의 하늘과 땅 각각의 세부 속뜻을 여기서 추가로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인용은 무엇보다 주님 홀로라는 논증을 뒷받침합니다.

 

마지막 문장도 같은 균형을 확인합니다. 천사들 자신도 자기들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으며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힘으로만 일한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AC.50은 천사들의 역할을 매우 크게 말하면서도 동시에 천사들에게 어떤 독립된 능력도 돌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천사와 영들을 통해 영계와 천국에 연결되어 있지만, 생명의 근원도, 다스림의 근원도, 창조와 거듭남의 주체도 주님 한 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현재 해설처럼 하나님의 형상 = 주님의 통치가 막힘없이 흐르는 상태라고 하나의 공식으로 정의하기보다 AC.50이 말하는 만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가 주의 형상이라는 말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이해했다고 한 뒤, 그들이 알고 있던 인간의 영적 연결과 주님의 다스림을 하나의 예로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에게서는 천사들이 사역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창1:26우리의 형상대로와 연결합니다.

 

따라서 AC.50하나님의 형상이 단순히 사람의 외모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동시에 이것을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성품 몇 가지로도 축소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참된 영적 생명 전체가 주님에게 의존하고, 주님께서 천국과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며 거듭나게 하신다는 더 큰 질서 안에서 형상을 바라봅니다. 다만 형상과 모양의 더 정확한 구별은 다음 AC.51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므로, 그 설명까지 여기서 미리 당겨 올 필요는 없습니다.

 

AC.50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천사와 영들에 관한 설명이 가장 눈에 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정말 강조하는 것은 명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사람 곁에 있다는 신기한 정보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기에게서 독립적으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그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주님과의 결합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들과 영들의 모든 사역 배후에서 실제로 다스리고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형 우리뒤에 곧바로 단수형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가 이어집니다. 많은 사역자가 있어도 창조와 거듭남의 주체는 한 분이십니다.

 

심화

1. 영과 천사 누구이며, 둘씩 있는가?

 

AC.50, 심화 1, ‘두 영과 두 천사’는 누구이며, 왜 둘씩 있는가?

AC.50.심화1. ‘두 영과 두 천사’는 누구이며, 왜 둘씩 있는가? AC.50을 처음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 가운데 하나가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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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1, 창1:26, ‘형상에서 모양으로 : 빛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나아가는 거듭남의 길’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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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9, 창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AC.49-52)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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