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의미하고, ‘구스 땅’(land of Cush)은 마음 또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은 의지에 관계하고, 이 둘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계하는데,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이해에 속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해설

AC.116은 네 강 가운데 둘째 강인 기혼을 설명하면서, 앞의 첫째 강 비손과 뚜렷한 대응 관계를 보여 줍니다. 기혼은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의미하고, 구스 땅은 마음 또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이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히고, 첫째 강에 관한 것은 의지에, 둘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계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비손과 기혼은 단순히 네 강 가운데 앞의 두 강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의지와 이해에 관계하여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의 AC.111에서 나온 설명을 더욱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많은 사람이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의지와 이해는 서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16에서는 그 구별이 창2의 두 강에 적용됩니다.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 마음을 이루는 의지와 이해는 서로 구별되며, 첫째 강에 관한 내용은 의지에, 둘째 강에 관한 내용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첫째 강 비손이 의지에 관계한다는 것은 앞의 설명을 돌아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손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을 의미했고, 하윌라 땅에는 선을 의미하는 금과 진리를 의미하는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있었습니다. 이어 AC.115에서는 금이 호마노를 두르는 것이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이 첫째 강에 관한 전체 설명이 의지에 관계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따라서 앞에서 사랑과 선이 계속 중심에 놓였던 이유도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반면 둘째 강 기혼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그 이유도 본문 자체에서 곧바로 설명됩니다.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이해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앎’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앞의 AC.111에서는 겉 사람들이 기억지식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부르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기혼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라기보다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아는 것이며,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이해에 속한 것으로 놓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의지와 이해를 서로 분리된 두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명시합니다. 하나의 마음 안에서 의지에 속한 것과 이해에 속한 것이 구별되며, 비손과 기혼은 그 서로 다른 측면을 묘사합니다. 따라서 첫째 강과 둘째 강의 차이는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고 다른 하나가 덜 중요하다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 한 천적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서로 구별되는 질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AC.116은 앞에서 남겨 두었던 질문 하나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AC.110에서는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구별했지만 그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첫째 강 전체가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은 이해에 관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베덴보리가 왜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의지와 이해를 세밀하게 구별하면서도 하나의 마음 안에서 설명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 관계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확정하기보다는 뒤의 두 강에 관한 설명까지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16에서 둘째 강 기혼은 천적 인간에게 있는 이해의 측면을 보여 줍니다. 그 이해에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에 대한 앎이 있습니다. 첫째 강이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이 이해에 관계하지만, 둘은 서로 떨어진 별개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을 이룹니다. AC.111에서 제시된 ‘서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면서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원리가 이제 에덴의 강들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AC.116)

 

 

 

AC.117, 창2:13, ‘구스와 스바 -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하는 말씀의 지명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더욱이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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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하윌라 땅과 비손 -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태고인들이 ‘땅들’(lands)에 관하여 말할 때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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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인들이 ‘땅들’(lands)에 관하여 말할 때 그들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나안 땅과 시온산이 천국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장소들이 언급될 때 어떤 땅이나 산을 생각하기보다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 ‘하윌라 땅’(land of Havilah)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윌라는 창25:18에도 다시 언급되는데, 거기서 이스마엘의 아들들에 관하여 그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가는 길에 애굽 앞 술까지 거주했다’(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고 합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손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고 할 때 ‘두른다’(compass)는 말로 그들은 유입을 지각합니다. 또한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를 금테로 둘렀을 때에도 (출28:11), 그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야 함을 지각합니다. 이와 같은 예가 그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해설

AC.115는 AC.110에서 ‘하윌라 땅’이 마음을 의미한다고 한 설명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태고인들이 ‘땅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는 단순히 지리적인 장소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나안 땅과 시온산을 예로 듭니다. 그것들이 천국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들을 때 자연적인 땅이나 산 자체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천국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윌라 땅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108에서 태고인들이 사람을 동산에,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을 강들에 비유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 내용과 이어집니다. 태고인들에게 자연계의 사물과 장소는 영적인 실재와 단절된 이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윌라’라는 지명을 접할 때에도 자연계의 특정 지역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내적인 것을 지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다시 창25:18의 하윌라를 인용하여 같은 지명이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적인 관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창25:18의 하윌라와 술, 애굽과 앗수르에 관한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지각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AC.115에서는 그 지명 하나하나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하윌라에서 술까지의 지리적 배열 전체에 의미를 하나씩 배정하기보다, 이러한 지명들이 천국적인 관념에서는 지성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들에 관한 말씀으로 지각된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어 설명의 초점은 비손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른다’는 표현으로 옮겨 갑니다. 천국적인 관념 안에서는 이 ‘두름’을 단순히 강이 어떤 지역의 둘레를 흐르는 모습으로만 지각하지 않고 ‘유입’으로 지각한다고 합니다. 앞의 AC.107에서 에덴에서 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그 강이 동산을 적시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강이 땅을 두른다는 표현에서도 무엇인가가 다른 것 안으로 흘러들어 생명을 주는 질서가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유입을 아론의 에봇 어깨에 있는 호마노를 둘러싼 금테와 연결합니다. 앞의 AC.113에서는 금이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고 했고, AC.114에서는 보석들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금이 호마노를 두르고 있다는 것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과 진리가 나란히 놓여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유입된다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천적 인간의 질서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신앙의 진리는 사랑과 떨어져 스스로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으로부터 유입을 받아 살아 있습니다. 앞의 AC.112에서 지혜와 선은 사랑에서, 지성과 진리는 신앙에서 나오지만 결국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선의 유입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선이 진리를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AC.115는 또한 말씀의 속뜻을 읽는 방식에 관해서도 중요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윌라’, ‘두른다’, ‘호마노’, ‘금테’와 같은 표현을 각각 고립시켜 하나의 뜻만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한 문맥 안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를 봅니다. 특히 여기서는 ‘두른다’는 표현이 비손과 하윌라의 관계에서도, 금과 호마노의 관계에서도 유입이라는 질서를 드러냅니다. 자연적인 장면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 그리고 지성 사이의 내적인 관계가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윌라 온 땅을 두르는 비손은 단순한 고대의 지리 묘사를 넘어, 천적 인간 안에서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 지성과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내적 질서를 보여 줍니다. (AC.115)

 

 

 

AC.116, 창2:13, ‘둘째 강 기혼 -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이해에 속한다’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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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4, 창2:11-12, ‘보석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표상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들’(stones)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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