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91

그러나 사람이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이 되어 가는 동안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면, 이 말씀들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도저히 퍼셉션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며, 그러므로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AC.87 참조) 이 평온을 ‘비’(rain)와 ‘안개’(mist)가 뜻합니다. 그것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평온, 곧 평화에서 나오는 평온이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과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이라 하는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것들은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rationalia et scientifica]입니다. But what these things involve cannot possibly be perceived unless it is known what man’s state is while from being spiritual he is becoming celestial, for they are deeply hidden. While he is spiritual, the external man is not yet willing to yield obedience to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re is a combat;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n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 combat ceases, and tranquility ensues (see n. 87). This tranquility is signified by “rain” and “mist,” for it is like a vapor with which the external man is watered and bedewed from the internal; and it is this tranquility, the offspring of peace, which produces what are called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which, specifically, are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해설

AC.91은 앞에서 계속 말해 온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싸움이 그치며 평온이 뒤따릅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단순히 싸움이 없어졌다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질서 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 설명은 AC.87에서 말한 싸움의 종결을 인간 내부의 질서라는 측면에서 보충합니다. AC.87에서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가까이 옴으로써 싸움이 그친다고 했습니다. AC.91에서는 같은 변화를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저항하는 동안에는 싸움이 있지만,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면 싸움이 그치고 평온이 뒤따릅니다. 두 설명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천적 인간의 안식을 보여 줍니다.

 

이제 AC.90에서 ‘비’와 ‘안개’를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 한 이유도 밝혀집니다. 그 평온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움직임의 방향입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은 AC.89에서 말했듯이 속 사람에서 시작하며, 여기서도 평온이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으로 흘러나와 겉 사람을 적십니다. 따라서 ‘비’와 ‘안개’는 싸움이 끝난 뒤 단순히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으로 평화가 미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 평온은 또한 열매 없이 머물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을 산출한다고 하며,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이성에 속한 것들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라고 설명합니다. AC.90에서는 관목과 초목을 일반적으로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에게도 이성과 기억지식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이제 그것들이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 점은 AC.75에서 개요로 제시했던 내용을 회수합니다. 거기서는 천적 인간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안개로 적셔지는 지면의 관목과 초목으로 묘사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91에서 왜 안개가 그것들을 적시는지, 그리고 그 관목과 초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이성과 기억지식 자체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질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바로 서면서 겉 사람에 속한 이성과 기억지식도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온 가운데 새로운 상태에 놓입니다.

 

그러므로 AC.91은 천적 인간의 안식과 평온을 인간 내부의 질서와 연결하는 중요한 번호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아직 저항하기 때문에 싸움이 있지만, 천적 인간에게서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므로 싸움이 그칩니다. 그리고 그때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평온이 겉 사람을 적시며, 거기에서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이 산출됩니다. 이것이 창2:5-6의 ‘비’, ‘안개’, ‘들의 관목’, ‘들의 초목’ 안에 깊이 감추어진 내용입니다. (AC.91 해설)  

 

심화

1.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AC.91 심화 1,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AC.91 심화1.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AC.91은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있지만, 천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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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2, 창2:5-6, '평화는 싸움의 그침만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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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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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창2:5, 6)

 

AC.90

‘들의 관목’(shrub of the field)과 ‘들의 초목’(herb of the field)은 일반적으로 그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겉 사람은 그가 영적 인간으로 머물러 있을 때에는 ‘땅’(earth)이라 하지만, 천적 인간이 되면 ‘지면’(ground), 그리고 ‘들’(field)이라고도 합니다. 곧이어 ‘안개’(mist)라 하는 ‘비’(rain)는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입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해설

AC.90은 앞 번호에서 제기된 ‘땅’, ‘지면’, ‘들’의 차이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이 셋은 모두 겉 사람과 관계되지만 아무 때나 서로 바꾸어 쓰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이 아직 영적 인간으로 머물러 있을 때 그의 겉 사람을 ‘땅’이라 하고, 천적 인간이 되면 그 겉 사람을 ‘지면’, 또한 ‘들’이라 합니다. 따라서 창2에서 ‘지면’과 ‘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AC.89의 설명과 정확히 이어집니다.

 

이 점은 천적 인간이 된다고 해서 겉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여전히 겉 사람이 있지만 그 상태가 달라집니다. AC.89에서는 영적 인간의 개혁이 겉 사람에서 시작하는 반면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서 산출되는 것들을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이라 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들은 자연계의 식물에 관한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다만 AC.90은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을 아직 서로 구별하여 각각 무엇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표현을 함께 묶어 ‘일반적으로 그의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이라고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관목에는 이것, 초목에는 저것이라는 식으로 별개의 의미를 미리 배정하는 것은 본문보다 앞서가는 해석이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후에 그 차이를 직접 밝히는지를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앞의 ‘안식’에 관한 설명과 창2:5-6을 연결합니다. 곧이어 ‘안개’라 하는 ‘비’는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입니다. AC.84-88에서 천적 인간이 될 때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안식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는데, 이제 그 상태가 ‘비’와 ‘안개’라는 말씀의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마음이 조용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앞서 계속 설명해 온 싸움의 종결과 연결된 천적 인간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AC.90은 창2의 새로운 어휘들이 우연히 바뀐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은 ‘땅’이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과 ‘들’이며, 그 겉 사람이 산출하는 모든 것은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은 ‘비’, 곧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안개’로 나타납니다. AC.89에서 시작된 천적 인간의 형성이 이제 창2의 세부 표현 하나하나를 통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AC.90 해설)  

 

심화

1. 왜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은 ‘땅’이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과 ‘들’인가?

 

AC.90 심화 1, 왜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은 ‘땅’이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과 ‘들’인

AC.90 심화1. 왜 영적 인간의 겉 사람은 ‘땅’이고,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은 ‘지면’과 ‘들’인가? AC.90에서 스베덴보리는 같은 겉 사람을 두고도 사람이 영적 인간으로 머물러 있을 때에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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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1, 창2:5-6,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길 때 싸움이 그친다’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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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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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창2:4)

 

AC.89

‘하늘과 땅의 내력’(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은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그의 형성을 다룬다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모든 세부 사항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지면을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형성하셨고, 그 후에 모든 짐승과 하늘의 새를 만드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의 형성은 앞 장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다룬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처음으로 주님을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God)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이제는 ‘지면’(ground)과 ‘들’(field)을 말하지만, 앞에서는 오직 ‘땅’(earth)만을 말하였습니다. 이 절에서는 또한 ‘하늘’(heaven)을 먼저 ‘땅’(earth) 앞에 말하고, 그 뒤에는 ‘땅’(earth)을 ‘하늘’(heaven) 앞에 말합니다. 그 이유는 ‘땅’(earth)은 겉 사람을, ‘하늘’(heaven)은 속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의 경우에는 개혁이 ‘땅’(earth), 곧 겉 사람에서 시작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천적 인간의 경우에는 속 사람, 곧 ‘하늘’(heaven)에서 시작합니다.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 “Jehovah God,” 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 “God”; and, further, that now “ground” and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 “earth” is mentioned. In this verse also “heaven” is first mentioned before “earth,” and afterwards “earth” before “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 “heaven” 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 “earth,” 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 “heaven.”

 

해설

AC.89는 창2:4부터 왜 다시 사람과 땅과 동식물의 형성을 말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창1에서 이미 이러한 것들의 창조를 다루었는데도 창2에서는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지면을 경작할 사람도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형성하시고 다시 짐승과 새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반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영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었고, 이제는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의 내력’도 천적 인간의 형성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또 하나의 별개의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 ‘여섯째 날’이 된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고, 이제 창2:4 이하에서는 그 천적 인간의 형성을 더욱 자세히 다룹니다. 따라서 창1과 창2의 차이는 동일한 창조 이야기를 단순히 두 번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속뜻에서 서로 다른 상태의 인간을 다룬다는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전환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 하나님의 호칭에 주목합니다. 영적 인간을 다루던 앞부분에서는 주님을 ‘하나님’이라 하였지만, 이제 천적 인간을 다루면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합니다. AC.89은 이 호칭의 변화가 우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지만, 여기서는 아직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미리 고정하여 설명하기보다, 우선 이 호칭의 변화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주제가 전환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지라는 데 머무르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땅’뿐 아니라 이제 ‘지면’과 ‘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스베덴보리가 직접 지적하는 본문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들을 모두 같은 말처럼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AC.89은 여기서 ‘지면’과 ‘들’ 각각의 속뜻을 아직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 의미를 앞질러 정하지 않고 뒤의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절의 어순도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하늘과 땅’이라 하여 하늘이 먼저 나오고, 뒤에는 ‘땅과 하늘’이라 하여 순서가 바뀝니다. 스베덴보리는 ‘땅’이 겉 사람을, ‘하늘’이 속 사람을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이 순서의 변화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형성 질서의 차이를 보여 준다고 합니다. 영적 인간의 개혁은 ‘땅’, 곧 겉 사람에서 시작하지만, 천적 인간의 형성은 ‘하늘’, 곧 속 사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AC.89는 창1에서 창2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미 다룬 사람과 피조물의 형성이 다시 등장하는 것,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이 달라지는 것, ‘땅’뿐 아니라 ‘지면’과 ‘들’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하늘과 땅’의 순서가 달라지는 것 모두가 이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영적 인간의 개혁은 겉 사람에서 시작하고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한다는 마지막 설명은, 두 상태의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AC.89 해설)

 

심화

1.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

 

AC.89 심화 1,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

AC.89 심화1.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부터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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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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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8, 창2:2-3,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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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2, 3)

 

AC.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하나님의 일’(work of God)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분의 일을 마치셨다’(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고 하며, 또 두 번이나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고 합니다. 선지서들에서도 사람을 거듭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하신 일’(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이라 합니다. 이사야에서 거듭난 사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로부터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 ‘형성하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은 서로 아주 구별되게 사용됩니다. 위의 말씀에서도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형성하시며, 그것을 만드시는 것’(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이라고 하며, 같은 선지서의 다른 곳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창세기의 앞 장과 이 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지금 다루는 말씀의 ‘하나님이 만드심으로 창조하신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라는 표현도 그러합니다. 속뜻에서는 이러한 용법이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합니다. 주님을 ‘창조자’(creator), ‘형성자’(former), 또는 ‘만드시는 분’(maker)이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해설

AC.88은 앞의 설명을 하나의 중요한 원리로 모읍니다.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하나님의 일’이라 하는 까닭은 주님 홀로 그를 위하여 싸우셨고, 그를 창조하시고 형성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AC.87에서 ‘싸움을 수행한 것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라고 했다면, AC.88은 그 원리를 거듭남 전체로 넓혀 ‘새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고 명시합니다.

 

이 때문에 창2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표현도 사람의 거듭남과 직접 연결됩니다.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이며, 그 일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마치고 쉬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를 사람의 거듭남으로 읽는 것은 단순히 창조의 각 대상을 인간의 여러 특성에 대응시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전체 과정의 행위자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이 그 해석의 중심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사야의 긴 말씀을 인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땅을 만들고 사람을 창조하며 하늘을 펴시는 여호와의 일이 함께 나오고,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거듭난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하늘’, ‘땅’, ‘사람’의 창조는 앞에서 살펴본 속 사람과 겉 사람의 형성 및 사람의 새 창조라는 문맥과 연결됩니다. 이 인용은 새 창조가 인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AC.88 후반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세 표현이 아주 구별되게 사용되며, 속뜻에서는 언제나 서로 구별되는 관념을 전달한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은 AC.84 마지막의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고,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단순한 문체적 반복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줍니다. 이사야에서도 ‘하늘을 창조하고, 땅을 형성하고, 그것을 만든다’고 하며, 사43:7에서도 한 사람을 두고 ‘창조하고, 형성하고, 만들었다’는 세 표현을 함께 사용합니다.

 

다만 AC.88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경계선도 남깁니다. 세 표현이 서로 다른 관념을 전달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말하지만, ‘창조하다’는 정확히 무엇을, ‘형성하다’는 무엇을, ‘만들다’는 무엇을 각각 뜻하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 단어에 임의의 고정된 상응을 부여하기보다, 이후 스베덴보리가 그 차이를 직접 밝혀 주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금 확실하게 붙들 수 있는 것은 세 표현이 우연한 동의어의 반복이 아니라 속뜻에서 실제로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이라는 말을 인간의 자유와 응답을 없애는 말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앞에서 사람은 실제로 싸움 가운데 있고 선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새롭게 창조하고 악을 이기게 하며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형성하시는 능력의 근원이 주님 홀로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난 뒤에도 그 완성을 자신의 공로나 자기 힘의 결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AC.88은 창조 이야기와 거듭남을 더욱 긴밀하게 결합합니다. 새 창조는 곧 거듭남이며, 그 거듭남은 주님 홀로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설명하는 말씀의 ‘창조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라는 표현 하나하나에도 서로 구별되는 속뜻의 관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번호는 사람의 거듭남을 ‘하나님의 일’이라 함으로써 창조의 여섯 날과 일곱째 날 전체를 누가 이루셨는지를 다시 분명히 합니다. (AC.88 해설)

 

 

 

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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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7, 창2:2-3, '사람을 위하여 주님 홀로 싸우셨으므로 주님께서 쉬셨다고 한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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