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9

지혜와 지성이 사람 안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들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이 에스겔에서 이와 비슷한 표상들을 통하여 분명히 선언됩니다. That although wisdom and intelligence appear in man, they are, as has been said, of the Lord alone, is plainly declared in Ezekiel by means of similar representatives: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겔47:1, 8-9, 12) Behold, waters issued out from under the threshold of the house eastward; for the face of the house is the east; and he said, These waters issue out to the border toward the east, and go down into the plain, and come to the sea, which being led into the sea,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which creepe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 up all trees for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s,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 8–9, 12).

 

여기서 ‘동쪽’(east)과 물과 강들이 흘러나온 ‘성소’(sanctuary)는 주님을 의미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ere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east,” and by the “sanctuary,” whence the waters and rivers issued. In like manner in John:

 

1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 2) He showed me a pure river of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going forth out of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midst of the street thereof, and of the river on this side and that, was the tree of life, which bare twelve [manner of] fruits, and yielded her fruit every month; and the leaf of the tree was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Rev. 22:1–2).

 

해설

AC.109는 앞의 AC.107에서 사랑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지성을 준다고 한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혜와 지성이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합니다. 지혜와 지성은 사람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 자기 힘으로 소유하고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오직 주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에스겔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요한계시록의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생명수의 강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물이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동쪽’과 물이 흘러나오는 ‘성소’가 주님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앞의 AC.101에서도 에스겔의 말씀을 통하여 동쪽이 주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그 동쪽을 향한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강조점은 물이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물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자라게 하는 지혜와 지성의 근원이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물이 흘러가는 곳에서는 죽어 있던 것이 살아나고 생물이 살며, 강 좌우에는 먹을 과실나무가 자랍니다. 그 나무들은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으며 달마다 새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고 밝혀집니다. AC.108에서 물과 강들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했다면, AC.109에서는 그 성장시키는 생명의 근원까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람 안에 선과 진리의 열매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은 성소로 표상된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이어지는 계22:1-2은 이 의미를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 줍니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며,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계속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의 치료를 위하여 있습니다. 창2의 강과 생명나무, 에스겔의 성소에서 나오는 물과 과실나무, 계시록의 보좌에서 나오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서로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함께 인용하는 까닭은 사람에게 생명과 성장과 열매를 주는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동일한 질서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퍼셉션과도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지혜와 지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풍성하게 있지만, 그는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AC.104에서 천사들은 무엇이 주님으로부터 오고 무엇이 자기 자신들로부터 오는지를 퍼셉션으로 알아차린다고 했고, AC.105에서는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09에서는 지혜와 지성도 같은 질서 안에 놓입니다. 사람 안에 실제로 나타나고 활동하지만 그 생명의 근원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표현을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첫 문장부터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사람 안에 나타난다’고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 안에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강물이 동산과 나무 안에 생명을 일으키지만 그 물의 근원은 성소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이해와 삶 안에서 나타나는 참된 지혜와 지성도 사람에게 실제로 주어지지만 그 근원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이 구별은 인간의 능력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의 생명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게 합니다.

 

그러므로 AC.109는 창2:10의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원의 원리를 다시 확인합니다. 사랑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지성을 주지만, 그 사랑과 지혜와 지성의 최초 근원은 모두 주님에게 있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성소에서 물이 나오고,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물이 이르는 곳에서 생명이 살아나고 나무가 자라며 열매가 맺힙니다. 사람에게 있는 참된 지혜와 지성도 이와 같이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을 받아 존재하고 성장한다는 것이 AC.109의 중심입니다. (AC.109)

 

 

 

AC.110, 창2:11-12, ‘비손 -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 (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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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8, 창2:10, ‘동산과 강 - 사람을 자라게 하는 지혜의 물’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도 ‘강들’(rivers)에 비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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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관계되는 것들을 ‘강들’(rivers)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렇게 비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는데,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선지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때로는 그것들을 그렇게 비유했고 때로는 실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사야에서는, The most ancient people, when comparing man to a “garden,” also compared wisdom, and the things relating to wisdom, to “rivers”; nor did they merely compare them, but actually so called them, for such was their way of speaking. It was the same afterwards in the prophets, who sometimes compared them, and sometimes called them so. As in Isaiah: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0, 11) Thy light shall arise in darkness, and thy thick darkness shall be as the light of day,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n outlet of waters, whose waters lie not (Isa. 58:10–11).

 

이는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다룬 말씀입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을 말하면서, Treating of those who receive faith and love. Again, speaking of the regenerate: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주2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민24:6) As the valleys are they planted, as gardens by the river’s side; as lignaloes2 which Jehovah hath planted, as cedar trees beside the waters (Num. 24:6).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 8) Blessed is the man who trusteth in Jehovah; he shall be as a tree planted by the waters, and that sendeth forth her roots by the river (Jer. 17:7–8).

 

에스겔에서는 거듭난 사람들을 동산과 나무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부릅니다. In Ezekiel the regenerate are not compared to a garden and a tree, but are so called: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7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겔31:4, 7-9) The waters made her to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and sent out its channels to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e was made beautiful in her greatness, in the length of her branches, for her root was by many waters. The cedars in the garden of God did not hide her; the fir trees were not like her boughs, and the plane trees were not like her branches, nor was any tree in the garden of God equal to her in her beauty; I have made her beautiful by the multitude of her branches, and all the trees of Eden that were in the garden of God envied her (Ezek. 31:4, 7–9).

 

이 구절들로부터 분명한 것은, 태고인들이 사람이나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그를 적실 ‘물들’(waters)과 ‘강들’(rivers)을 덧붙였으며, 이 물들과 강들로 그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뜻했다는 것입니다. 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man, or the things in man, to a “garden,” they added the “waters” and “rivers” by which he might be watered, and by these waters and rivers meant such things as would cause his growth.

 

주2. 라틴 tentoria, ‘텐트’(tents), 얼핏 santalos에 대한 미스프린트 같음 [편집자 주] The Latin is tentoria, “tents,” seemingly a misprint for santalos. [Reviser]

 

해설

AC.108은 앞의 AC.107에서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한다고 한 해석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에 비유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고, 지혜와 지혜에 관계되는 것들도 ‘강들’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적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말하는 방식 자체였으며,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 방식이 이후 선지자들의 말씀에도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번호에서는 물과 강, 동산과 나무가 함께 등장하는 여러 성경 구절을 제시합니다.

 

먼저 사58:10-11의 ‘물 댄 동산’과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물의 근원’은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왜 이 구절을 인용했는지는 창2:10과 나란히 놓으면 분명해집니다. 동산이 아름답게 유지되는 것은 그 안에 물이 있기 때문이며, 사람의 영적 생명도 그를 살아 있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 끊임없이 공급될 때 유지됩니다. 따라서 ‘물 댄 동산’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풍요로운 자연의 모습을 빌린 비유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 생명 있게 되는 사람의 상태를 보여 주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이어지는 민24:6과 렘17:7-8도 같은 점을 보여 줍니다. ‘강가의 동산’, ‘물가의 백향목’, 그리고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가로 뻗은 것’이라는 표현에는 모두 나무나 동산의 생명이 물과 분리될 수 없다는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들을 ‘거듭난 사람’과 연결합니다. 거듭남은 사람이 자기 안에서 스스로 영적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것을 받아 자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물과 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에스겔의 긴 인용은 이 원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거듭난 사람을 동산이나 나무에 단순히 ‘비유하는’ 정도를 넘어 실제로 나무와 동산의 언어로 말합니다. 물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깊은 물이 높이며, 강과 수로가 나무들에게 흘러가고, 그 결과 가지가 많아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긴 본문을 인용한 까닭은 바로 이 구조 때문입니다. 나무의 성장과 아름다움의 근원이 나무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적시는 물에 있듯이, 사람 안의 영적 성장도 그 사람 자신만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AC.108은 AC.107의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에덴은 사랑이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며, 그 강이 동산을 적시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입니다. 이제 AC.108에서는 그 물과 강이 동산과 나무를 실제로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혜는 단지 사람이 무엇을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의 내적인 생명을 적시고 자라게 하며 열매 맺게 하는 것과 관계됩니다. 지혜가 사랑에서 분리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사랑에서 흘러나와 지성을 살아 있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는 다시 주님이 계십니다. 앞의 AC.105에서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고, AC.107에서는 에덴의 사랑에서 지혜의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AC.108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물 댄 동산’, ‘강가의 동산’,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인간이 자기 지혜로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물을 만들어 내는 동산이 아니라 물을 받아 자라는 동산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에서 지혜가 흘러나오고, 그 지혜가 사람의 지성을 적시며, 그로 말미암아 그의 내적인 삶이 자라고 아름다워집니다.

 

따라서 AC.108의 여러 성경 인용은 서로 흩어진 증거 구절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생명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동산과 나무’는 생명을 받아 자라는 사람과 사람 안의 것들을 나타내고, ‘물과 강’은 그것들을 살아 있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질서를 이해하면 창2:10의 강은 에덴동산의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동산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의 흐름이 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의 더 깊은 근원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와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AC.108 해설)

 

 

 

AC.107, 창2:10,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함’ (AC.107-109)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창2:10) AC.107‘에덴에서 흘러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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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창2:10)

 

AC.107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river out of Eden)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합니다. ‘에덴’(Eden)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동산을 적신다’(to water the garden)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이며,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된다’(thence parted into four heads)는 것은 다음에 나오는 네 강을 통하여 지성을 묘사한 것입니다. A “river out of Eden” signifies wisdom from love, for “Eden” is love; “to water the garden” is to bestow intelligence; 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 is a description of intelligence by means of the four rivers, as follows.

 

해설

AC.107은 창2:10의 전체 속뜻을 먼저 압축하여 제시합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하고, 그 강이 ‘동산을 적신다’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을 뜻하며, 그 강이 ‘네 근원’으로 갈라지는 것은 이어지는 네 강을 통하여 그 지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절은 단순히 에덴동산을 흐르는 한 강과 네 강의 지리적 모습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성이 생명을 얻는 천적 인간의 내적인 질서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에덴’과 ‘강’의 관계입니다. 앞에서 에덴은 사랑을 뜻한다고 했습니다(AC.98, 100). 그런데 이제 그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오며, 그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합니다. 지혜가 사랑과 따로 존재하거나 사랑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천적 인간에게 사랑이 주된 것이며 신앙과 지성이 그 사랑에서 나온다고 설명한 생명의 질서와 같습니다.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중심이라면, 지혜는 그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와 사람의 지성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강이 ‘동산을 적신다’는 표현도 같은 질서를 보여 줍니다. 앞에서 ‘동산’은 지성을 뜻했습니다. 그러므로 동산이 스스로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의해 적셔지듯이, 인간의 지성 역시 자기 자신에게서 생명과 지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받아 생명을 얻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를 ‘지성을 준다’고 표현한 것은 지성이 단순히 인간이 스스로 축적한 지식이나 사고 능력의 산물이 아니라, 그 깊은 근원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 안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보면 창2:10은 앞의 AC.98-105에서 계속 설명해 온 내용을 매우 아름다운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에덴은 사랑이고,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오며, 그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그 지혜가 동산을 적셔 지성을 줍니다. 사랑과 지혜와 지성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의 흐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으므로(AC.105), 이 흐름의 궁극적인 근원 역시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에서 지혜가 흘러나오며, 그 지혜가 사람의 지성을 살아 있게 합니다.

 

이 점은 주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이끄시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합니다. AC.107의 그림에서 주님은 인간의 지성을 바깥에서 억지로 움직이시는 분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중심에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에서 지혜가 흘러나오게 하시며, 그 지혜로 지성을 적시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참된 지성이란 단지 많은 것을 알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에서 흘러나온 지혜로 생명을 얻은 지성이라는 것이 이 구절의 질서 안에서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강이 ‘네 근원’으로 갈라진다는 것은 그 지성이 이제 여러 측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묘사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AC.107은 아직 네 강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이어지는 글에서 그것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는 네 강의 의미를 앞질러 해석하기보다 ‘사랑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지성을 주며, 그 지성이 이어지는 네 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전체 흐름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2:10의 중심에는 인간이 자기 힘으로 지혜와 지성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의 생명이 지혜가 되어 흘러가며 인간의 지성을 적시는 모습이 있습니다. (AC.107 해설)

 

 

 

AC.108, 창2:10, ‘동산을 적시는 물과 강은 사람을 자라게 하는 지혜를 뜻함’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관계되는 것들을 ‘강들’(rivers)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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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6, 창2:9, ‘퍼셉션과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의 본성은 뒤에서 더 밝혀진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AC.106그러나 ‘동산의 나무’(tree of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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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쪽은 천국에서 자신의 진짜 짝을 만나 결혼했지만, 뒤늦게 지상 배우자가 사후 중간 영계에 막 도착할 경우는?

 

 

이 질문은 결코 엉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결혼론과 영계 질서의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네, 그런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다만 그 만남은 비극도 아니고, 충격도 아니고,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재회가 이루어진 뒤, 각자의 길을 가는 형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장면을 분명히 보았고, 그에 대해 매우 섬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장면을 여러 번 관찰했습니다.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국에 먼저 간 사람은 이미 ‘자기 본질에 맞는 짝’을 찾았다

 

천국에서의 혼인은 지상의 법률적 혼인이 아니라 영적 본질(affectional essence)이 맞는 두 존재의 결합입니다. 따라서 지상에서 함께 살았던 부부라도 영적 본질이 전혀 맞지 않았다면, 천국에서 부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서 정화된 뒤, 자신과 영적으로 가장 잘 맞는 ‘진짜 짝’을 만나 천국적 결혼을 이루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께서 예비하신 진짜 짝’이라고 표현합니다.

 

 

이후, 지상 배우자가 죽어 중간 영계에 도착한다

 

이때 중간 영계에 들어온 지상 배우자는 먼저 천국에 올라간 배우자가 ‘다른 천국적 짝’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대부분 처음에는 죽음의 평안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상태, 천사의 안내, 중간 영계의 분위기 등 이런 것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먼저 천국 간 배우자가 중간 영계 배우자를 보러 오는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천국에 간 사람은 ‘굳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는 더 이상 영적 친화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표현을 빌리면, ‘영적 친화성이 없는 존재는 서로에게 끌림이 생기지 않는다.’ 즉, 주님이 그 마음 안에서 집착을 제거하셨기 때문에 억지로 가서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일시적 만남’은 허용된다

 

중간 영계에 새로 도착한 지상 배우자가 강하게 보기 원하거나 서로에게 아직 ‘남은 질문’이 있다면, 천사들이 그 만남을 잠시 허용하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면을 아주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 만남은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 둘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강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아, 당신이 오셨군요.’ 정도의 자연스러운 인식이 있습니다. 대립도, 갈등도, 원망도 없습니다. 은근한 감사, 또는 담담한 정서가 흐릅니다.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말합니다. ‘당신도 당신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맞는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헤어집니다.

 

 

그 이별은 슬픔이 아니라 평화에 가깝다

 

스베덴보리는 강조합니다. ‘영계에서의 이별은 지상의 감정적 상실이 아니다. 상태가 맞지 않는 둘은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즉, 천국에 있던 배우자도 슬퍼하지 않고, 중간 영계에 도착한 배우자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간 영계에서는 이미 지상적 집착(attachment)이나 소유 의식이 천사들에 의해 부드럽게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만남은 억지도, 슬픔도, 미련도, 적대도 없이 단지 ‘아주 조용한 고별’ 같은 이런 정서로 이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평화로운 결별 장면’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간 영계에 도착한 그 배우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영적 상태를 향해 중간 영계에서 정화 과정을 거치며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정화가 충분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짜 짝, 즉 자신의 본성에 가장 잘 맞는 이성(異性)을 만나게 됩니다. 그 결합은 지상 결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밝고 평화롭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혼의 진짜 결혼’이라 불렀습니다.

 

 

이런 재회와 결별은 ‘비극’이 아니라 ‘질서’이다

 

스베덴보리는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영적 질서이며, 불일치한 둘이 억지로 함께 있는 일이 없다.’ 그리고 또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지상에서의 결혼은 과정이고, 천국에서의 결혼은 본질이다.’ 즉, 지상에서는 의무, 상황, 문화, 정, 책임이 부부를 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영혼의 본질이 같아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처럼 ‘만나더라도 평범하게 헤어지는 경우’가 맞습니다

 

네, 목사님 말씀이 정확합니다. 이미 천국에서 다른 짝을 만난 쪽은 한때의 지상 배우자를 따뜻한 기억으로만 바라보며, 중간 영계에 막 도착한 배우자와는 조용히 재회하고, 조용히 인사하고, 조용히 각자의 길을 가는 그런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면의 감정적 분위기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별에는 고통이 아니고, 서로의 길을 인정하는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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