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1.심화
1. 감각과 단순한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된다는 것은?
위 AC.31 본문, ‘여기서는 감각과 단순한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었음을 말합니다.’(and here, that by things of sense and of mere knowledge, love and faith had been extinguished.), 즉, 인간이 감각과 지식만을 의지할 때, 사랑과 신앙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해설도 있지만... 좀 더 와닿는 사례로 설명해 주세요.
AC.31에서 스베덴보리는 겔32:7-8을 인용하면서 바로와 애굽이 여기서는 ‘감각적인 것과 단지 지식적인 것의 원리’를 뜻하며, 그것들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는 상태가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읽으면 ‘감각도 나쁘고 지식도 나쁘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AC.27-28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기억 속에 먼저 모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AC.31의 문제는 감각이나 지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사람이 감각적인 것과 자연적인 지식을 가장 높은 판단 기준으로 삼아, 그것을 넘어서는 영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실재한다고 여기고, 자신의 자연적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참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질서가 뒤집힙니다. 본래 감각과 지식은 더 높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수단이 될 수 있는데, 이제 오히려 그것들이 영적인 것을 판단하는 최종 재판관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가 볼 수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으니 영혼이나 천국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고 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질문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말 천국이 있는가?’, ‘영혼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탐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앙을 파괴하는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감각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모든 영적 실재를 그 기준으로 재단하는 데 있습니다. 이때 감각은 진리를 탐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영적인 것을 배척하는 기준이 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역사와 언어를 연구하고, 자연과학을 배우고,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는 사랑과 신앙을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지식들은 바르게 사용될 때 진리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참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러면 지식이 진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성을 확증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신학 지식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과 교리를 매우 많이 알고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그는 성경 구절도 잘 찾고 교리도 정교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지식을 통하여 주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기보다, 자기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다른 사람을 낮추는 데 사용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문제는 ‘지식이 많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지식이 자기 지성의 우월함을 확증하는 수단이 되면서 사랑과 신앙보다 위에 놓였다는 데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돈, 건강, 성공, 평판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잘되는 것이 곧 주님의 복이고, 실패하는 것은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증거’라고 판단하기 시작한다면 자연적 결과를 영적 상태의 최종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기도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러므로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결론짓는 것도 같은 문제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결과가 보이지 않는 섭리를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된 것입니다.
AC.31이 인용하는 겔32의 이미지는 이러한 상태를 ‘하늘의 광명체들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해와 달과 별은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을 나타내는데, 감각적인 것과 단지 지식적인 것이 지배하게 되면 이 광명체들의 빛이 가려집니다. 이는 감각과 지식이 본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낮은 것이 높은 것을 섬겨야 하는 질서가 뒤집혔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27-28과 AC.31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지식들이 모여 거듭남을 위한 땅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들이 목적 자체가 되거나 사람이 그것만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지식은 거듭남을 위한 귀중한 수단이지만 그 자체가 사랑과 신앙의 생명은 아닙니다. 그 생명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감각과 단순한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된다’는 말을 ‘많이 공부하면 신앙이 약해진다’는 경고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연적인 것을 영적인 것보다 위에 놓지 말라’는 질서의 문제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감각과 지식이 자기 자리에 있을 때 그것들은 거듭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사랑과 신앙의 광명체는 사람 안에서 점점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도 아니고 ‘나는 감각과 이성을 사용하는가?’도 아닙니다. ‘내가 가진 감각과 지식은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입니다. 그것들이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지, 아니면 자기 지성과 자연적인 판단을 최종 기준으로 세우는 데 사용되는지가 중요합니다. 바로 이 차이가 AC.31에서 밝게 빛나는 광명체와 어두워지는 광명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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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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