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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2.22 AC.204,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의 속뜻
  2. 2024.02.22 AC.203,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신앙 관련,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
  3. 2024.02.21 AC.202,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만지지도 말라'의 속뜻 1
  4. 2024.02.21 AC.201,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오늘날엔 알 수 없는, 태고인들의 지니어스 퀄리티로 인한 본문 설명의 어려움'
  5. 2024.02.21 AC.200,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창2:9의 '중앙'과 창3:3의 '중앙'
  6. 2024.02.21 AC.199,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의 속뜻
  7. 2024.02.21 AC.198,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의 속뜻 1
  8. 2024.02.21 AC.197,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뱀', '놋뱀'의 속뜻
  9. 2024.02.21 AC.196,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과학과 철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더 눈먼 상태가 되는 이유'
  10. 2024.02.20 AC.195,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뱀, 사람 안에 있는 감각 파트'

 AC.204,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AC.204-206) -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의 속뜻

 

4-5절,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204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Their eyes being opened by eating of the fruit of the tree)는 만일 그들이 신앙에 관한 것들을 무슨 감각과 지식에 관한 걸로, 즉 자신들이 가진 걸로 조사, 검사, 검토할 경우, 그들은 분명 그것들, 곧 그 신앙에 관한 것들을 잘못된 걸로, 틀린 걸로 볼 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as God, knowing good and evil)은 만일 그들이 자신들을 기준 삼아 그런 짓을 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양 스스로를 인도하려 할 것이라는, 즉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대신 오직 자기 힘으로만 살아가려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Their “eyes being opened by eating of the fruit of the tree” signifies that if they were to examine the things of faith from what is of sense and knowledge [ex sensuali et scientifico], that is, from themselves, they would plainly see those things as if erroneous. And that they would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denotes that if they did so from themselves, they would be as God, and could guide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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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3,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신앙 관련,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203

그러나 영적 천사들은 신앙에 관한 대화를 하며, 지성적, 이성적, 그리고 지적 언어들로 신앙에 속한 것들을 심지어 확증까지 하지만, 그러나 이들은 결코 신앙 관련 주제들에 관한 자신들의 결론을 그런 걸 기반으로 내지는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자는 악 가운데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또한 신앙에 속한 모든 진리에 관한 퍼셉션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습니다. 비록 천적 천사들의 것과 같은 그런 퍼셉션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영적 천사들의 퍼셉션은 일종의 양심인데요, 이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을 갖는, 겉보기엔 정말 천적 퍼셉션같지만 실제로는 그건 아니고, 오직 영적 퍼셉션일 뿐입니다. The spiritual angels, however, converse about faith, and even confirm the things of faith by those of the intellect, of the reason, and of the memory, but they never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matters of faith on such grounds: those who do this are in evil. They are also endowed by the Lord with a perception of all the truths of faith, although not with such a perception as is that of the celestial angels. The perception of the spiritual angels is a kind of conscience which is vivified by the Lord and which indeed appears like celestial perception, yet is not so, but is only spiritual p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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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2,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만지지도 말라'의 속뜻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202

태고교회는, 천적 인간이었지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기(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지식의 나무), 즉 신앙에 속한 것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들(memory-knowledges)을 가지고 배우는 걸 삼가야 할 뿐 아니라, 그 나무를 만지는 거, 즉 신앙에 관한 문제를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생각하는 게 허용조차 되지 않는 그런 캐릭터였습니다. 안 그러면, 그들은 천적 삶에서 영적 삶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그렇게 가라앉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천사들의 삶 또한 그런데요, 그들이 더욱 내적, 더욱 천적일수록, 그들은 신앙이라 이름하는 거라든지, 영적 성격을 띠는 무엇이든지 접해 보는 것 조차 일절 불허됩니다. 그리고 만일 이 신앙이라는 말을 남들을 통해서 듣게 되면, 신앙 대신 그들은 사랑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이 있는데요, 이게 어떻게 다른 건지는 오직 그들만 아는데, 그래서 신앙에 관한 무엇이든지 그들은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로부터 출발하지요. 더더구나 그들은 신앙에 대해 이성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 듣는 걸 굉장히 못 견뎌 하며, 무엇보다도 신앙 관련, 어떤 기억-지식을 가지고 그러는 걸 특히 힘들어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통해서, 그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이 있기 때문이며, 이 퍼셉션으로 그들은 어떤 것이 그런지 안 그런지를 즉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신앙에 관한 말을 듣게 되면, 그들은 그저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는데, 그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걸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하신 주님 말씀의 의미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a celestial man, was of such a character as not only to abstain from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that is, from learning what belongs to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but was not even allowed to touch that tree, that is, to think of anything that is a matter of faith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lest they should sink down from celestial life into spiritual life, and so on downward. Such also is the life of the celestial angels, the more interiorly celestial of whom do not even suffer faith to be named, nor anything whatever that partakes of what is spiritual; and if it is spoken of by others, instead of faith they have a perception of love, with a difference known only to themselves; thus whatever is of faith they derive from love and charity. Still less can they endure listening to any reasoning about faith, and least of all to anything of memory-knowledge respecting it; for, through love, they have a perception from the Lord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from this perception they know instantly whether a thing is so, or is not so. Therefore when anything is said about faith, they answer simply that it is so, or that it is not so, because they perceive it from the Lord. This is what is signified by the Lord’s words in Matthew: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5:37) Let your communication be Yea, yea; nay, nay; for whatsoever is more than these cometh of evil. (Matt. 5:37)

 

그래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지식의 나무 열매를 만지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들이 그걸 만지면, 그들은 악 가운데 있게, 즉 결과적으로 ‘죽게(die) 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적 천사들은 다양한 주제에 관해 다른 천사들처럼 서로 대화합니다. 다만 천적 언어로 하는데, 이 언어는 사랑으로 되어 있고 사랑에서 나오며, 영적 천사들의 언어보다 더욱 형언할 수 없는 언어입니다. This then is what was meant by their not being allowed to touch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for if they touched it, they would be in evil, that is, they would in consequence “die.” Nevertheless the celestial angels converse together on various subjects like the other angels, but in a celestial language, which is formed and derived from love, and is more ineffable than that of the spiritual angels.

 

기억-지식들(memory-knowledges) : 학습하기만 한 지식들, 아직 실천까지는 안 한, 이 지식들이 실천의 옷을 입으면 그때부터 속 사람의 일부가 됨

 

퍼셉션(perception) : 천사들에게 허용된 직관 능력, 어떤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인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인류는 지금까지 네 교회, 즉 태고교회(아담교회), 고대교회(노아교회), 표상교회(모세교회)가 있었고, 그리고 현 기독교회가 진행 중임. 각 교회 시대마다 그 시대의 최후의 심판과 종말, 곧 그 시대 교회의 종말이 있었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계속해서 주님께 연결되어 존속할 수 있도록 하셨음. 인류가 주님께 연결되어 있도록 주님이 허용하신 첫 번째가 바로 이 '퍼셉션'임. 그러나 이 퍼셉션은 태고교회의 종말, 곧 '홍수'로 말미암아 닫히고, 이후 일어난 고대교회(노아교회) 때부터 인류에게 새로운, 즉 기존 퍼셉션을 대신할 새로운 연결 방법이 주님으로부터 허용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양심'임

 

체어리티(charity) : 기부, 인애, 자원봉사,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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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1,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오늘날엔 알 수 없는, 태고인들의 지니어스 퀄리티로 인한 본문 설명의 어려움'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201

그러므로 홍수 이전에 있었던 태고인들의 이런 지니어스가 오늘날엔 발견되지도,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 본문이 의미하는 참된 의미, 곧 속뜻을 제대로 설명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다릅니다. 천국에서는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데요, 천적이라고 하는 천사들과 천사적 영들은 홍수 전에 거듭난 태고인들과 같은(same) 지니어스를 지닌 반면, 영적이라고 하는 천사들과 천사적 영들은 홍수 후 거듭난 사람들과 유사한(similar) 지니어스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비록 두 경우 모두 무한히 다양하지만 말입니다. Seeing therefore that such a genius as th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terior to the flood is not found and does not exist at the present day, it is no easy matter to explain intelligibly what the words of this passage in their genuine sense imply. They are, however, perfectly understood in heaven, for the angels and angelic spirits who are called celestial are of the same genius as the most ancient people who were regenerate before the flood; while the angels and angelic spirits who are termed spiritual are of a similar genius to the regenerate after the flood, although in both cases with indefinite var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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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00,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창2:9의 '중앙'과 창3:3의 '중앙'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200

앞서 창2:9에서는 생명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이지 지식의 나무가 아니라고 하더니, 여기서는 ‘지식의 나무(the tree of knowledge)동산 중앙에(in the midst of the garden)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동산 ‘중앙(the midst)이 인모스트(the inmost, 가장 내적인, 가장 깊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인간, 즉 태고교회의 인모스트는 ‘생명 나무(the tree of lives), 곧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었던 반면, 이 사람, 천적 영적 인간이라 할 수 있는, 혹은 이 후손한테서는 신앙이 동산의 ‘중앙’, 즉 인모스트였기 때문입니다. 태곳적 살았던 사람들의 퀄리티를 아주 제대로 묘사하는 건 불가능한데요, 왜냐하면, 오늘날 그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전혀 없고, 그들의 지니어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정말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니어스에 대한 걸 좀 전달, 알려드릴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 곧 그들은 선을 통해 진리를 알거나, 사랑을 통해 신앙에 관한 걸 알았다는 정도로는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그 세대가 막을 내리고, 그 다음에 일어난 세대는 완전히 다른 지니어스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이전 세대처럼 선을 통해 진리를 알거나, 사랑을 통해 신앙에 관한 걸 아는 대신, 정반대로 진리를 가지고 선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거나 신앙 관련 지식을 가지고 사랑에 관한 걸 아는, 즉 선과 사랑을 지식으로, 학습으로 아는 그런 세대였기 때문이지요.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지식밖에는 가진 게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것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한, 홍수 후 생긴 변화였습니다. The reason why the “tree of knowledge” is here spoken of as being “in the midst of the garden,” although previously (Gen. 2:9), the tree of lives was said to be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not the tree of knowledge, is that the “midst” of the garden signifies the inmost; and the inmost of the celestial man, or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the “tree of lives,” which i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whereas with this man, who may be called a celestial spiritual man, or with this posterity, faith was the “midst” of the garden, or the inmost. It is impossible more fully to describe the quality of the men who lived in that most ancient time, because at the present day it is utterly unknown, their genius being altogether different from what is ever found with anyone now. For the purpose however of conveying some idea of their genius, it may be mentioned that from good they knew truth, or from love they knew what is of faith. But when that generation expired, another succeeded of a totally different genius, for instead of discerning the true from the good, or what is of faith from love, they acquired the knowledge of what is good by means of truth, or what is of love from the knowledges of faith, and with very many among them there was scarcely anything but knowledge [quod scirent]. Such was the change made after the flood to prevent the destruction of the world.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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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99,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의 속뜻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199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the fruit of the tree of which they might eat)가 태고교회로부터 그들에게 계시된 신앙의 선과 진리, 즉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의미한다는 건 다음과 같은 사실, 곧 앞서 천적 인간, 곧 태고교회를 다룰 때처럼 ‘동산 나무(the tree of the garden, 창2:16)라 하지 않고, 대신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동산 나무의 열매(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of which they might eat)라고 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fruit of the tree of which they might eat” signifie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revealed to them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t is said to be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of which they might eat,” and not the “tree of the garden,” as before when treating of the celestial man, or the most ancient church (Gen.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2:16)

 

※ 우리말 개역 개정에서는 위 창2:16 번역을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라 하여 원전에는 없는 ‘열매’를 첨가했습니다. 원전에는 ‘동산 각종 나무’인데요, 나무가 퍼셉션(perception)을 의미한다는, 이런 속뜻을 알 길이 없었던 번역자들은 ‘나무를 먹는다고?’ 하면서 이 부분을 원전 그대로 번역하기가 굉장히 어색했을 것입니다.

 

위 창2:16 본문의 ‘동산 나무(The tree of the garden)는 선하고 참된 것에 관한 퍼셉션입니다. 선과 진리는 퍼셉션을 통해 나오는, 즉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열매(fruit)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말씀에서 자주 ‘열매’로 상징, 표상되는 것입니다. The “tree of the garden,” as it is there called, is the perception of what is good and true; which good and truth, because they are from that source, are here called “fruit,” and are also frequently signified by “fruit” in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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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98,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AC.198-203) -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의 속뜻

 

2-3절,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198

동산 나무의 열매(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는 태고교회로부터 그들에게 드러난 선과 진리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그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나무의 열매(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of which they were not to eat)는 신앙의 선과 진리인데, 이는 그들이 자신들한테 배워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만지지도 말라(not to touch it)신앙의 선과 진리에 관한 생각을 자신들한테나 감각과 기억-지식을 가지고 하는 걸 금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lest ye die)는 그랬다가는 신앙, 즉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지혜와 총명이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is the good and truth revealed to them from the most ancient church;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of which they were not to eat” is the good and truth of faith, which they were not to learn from themselves; “not to touch it” is a prohibition against thinking of the good and truth of faith from themselves, or from what is of sense and memory-knowledge [sensuali et scientifico]; “lest ye die” is because thus faith, or all wisdom and intelligence, would pe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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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97,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 '놋뱀'의 속뜻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197

태고인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 이런 태고인들 가운데서 ‘(the serpent) 하면 신중함과,  부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신중함을 훈련했던 감각 파트를 의미했습니다. ‘’에 관한 이러한 의미는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 말씀을 보면 분명한데요, Among the most ancient people, who were celestial men, by the “serpent” was signified circumspection, and also the sensuous part through which they exercised circumspection so as to be secure from injury. This signification of a “serpent” is evident from the Lord’s words to his disciples: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10:16) Behold, I send you forth as sheep into the midst of wolves; be ye therefore prudent as serpents, and simple as doves. (Matt. 10:16)

 

또 광야에서 장대에 매단 ‘놋뱀(the brazen serpent)을 통해서도입니다. 놋뱀은 주님의 감각 파트를 상징하는데요, 주님만이 홀로 천적 인간이시며, 홀로 모두를 돌보시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시지요. 그래서 이 놋뱀을 쳐다본 모두가 산 것입니다. And also from the “brazen serpent” that was set up in the wilderness, by which was signified the sensuous part in the Lord, who alone is the celestial man, and alone takes care of and provides for all; wherefore all who looked upon it were preserved.

 

※ 놋뱀 에피소드는 아래 민수기 본문에 나옵니다.

 

4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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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96,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과학과 철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더 눈먼 상태가 되는 이유'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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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계시보다는 감각과 관련된 것들을 더 확신하며 살던 사람들을 가리켜 ‘(serpents)이라고 했습니다. 1750년대 중반인 오늘날 유럽은 사정이 더욱 안 좋은데요, 지금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없는 건 무엇이든 안 믿을 뿐 아니라, 고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과학) 지식이라는 걸 가지고 더욱 자신들을 그런 불신 가운데 있게 하며, 그 결과 자신들로 하여금 더욱더 깊은 눈먼 상태 가운데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결론을 감각과 기억-지식,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내리는 사람들, 즉 말씀에서 자주 ‘귀머거리 뱀(deaf serpents)이요, ‘날아다니는 뱀(the flying serpents)으로 언급되는 사람들인데요, 저런 것들이 훨씬 더 치명적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눈멀게 하는지, 그 결과 나중에는 어떻게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듣게 하는지 하는 실상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영에 대해 사람들이 믿는 한 가지 예를 들고자 합니다. In ancient times those were called “serpents” who had more confidence in sensuous things than in revealed ones. But it is still worse at the present day, for now there are persons who not only disbelieve everything they cannot see and feel, but who also confirm themselves in such incredulity by knowledges [scientifica] unknown to the ancients, and thus occasion in themselves a far greater degree of blindness. In order that it may be known how those blind themselves, so as afterwards to see and hear nothing, who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heavenly matters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and who are not only “deaf serpents,” but also the “flying serpents” frequently spoken of in the Word, which are much more pernicious, we will take as an example what they believe about the spirit.

 

[2] 감각적인 사람, 즉 오직 감각의 증거만을 믿는 사람은 영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가 영을 볼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내가 그걸 느낄 수 없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거라야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It is nothing because I do not feel it: that which I see and touch I know exists.)라면서 말이지요. 기억-지식의 사람, 곧 과학 지식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말하기를, ‘영이라는 게, 말하자면 눈앞에서 허공 중에 사라지는 수증기나 열기, 혹은 그 밖의 무슨 과학적 실체가 아니면, 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동물에게도 일종의 몸, 감각 및 이성과 유사한 뭔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동물은 죽지만, 인간의 영은 산다고들 하네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영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The sensuous man, or he who only believes on the evidence of his senses, denies the existence of the spirit because he cannot see it, saying, “It is nothing because I do not feel it: that which I see and touch I know exists.” The man of memory-knowledge [scientificus], or he who forms his conclusions from memory-knowledges says, What is the spirit, except perhaps vapor or heat, or some other entity of his science, that presently vanishes into thin air? Have not the animals also a body, senses, and something analogous to reason, and yet it is asserted that these will die, while the spirit of man will live. Thus they deny the existence of the spirit.

 

[3] 철학자들의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인류보다 훨씬 예리한 이들 철학자들도 영에 대해 말할 때는 결과적으로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말하는데요, 이들은 서로 논쟁하기를, 물질이나 유기물, 혹은 그 밖의 것들에 관한 그 어떤 하나의 표현으로도 이 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투며, 또 이들은 영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 너무 추상화한 나머지 내놓는 무슨 장황한 설명이라는 게, 결국은 그냥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중에서 좀 나은 사람은 영은 생각(thought)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생각에 대한 그들의 소위 이성적이라는 주장을 보면, 생각에서 모든 실재(substantiality), 알맹이를 다 분리하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은 결국 몸이 끝나면 영도 사라져야 하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결국 감각에 속한, 기억-지식에 속한, 그리고 철학에 속한 걸 가지고 이성적 사고를 한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영의 존재를 부인하며, 영과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하는 모든 말을 전혀 믿지 않지요.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요, 그들은 영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를, 자기들은 그게 존재한다는 걸 안다고 해요. 주님 말씀하시기를, 자기들은 사후에도 살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소멸시키는 대신, 주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생생하게 하지요. Philosophers also, who would be more acute than the rest of mankind, speak of the spirit in terms which they themselves do not understand, for they dispute about them, contending that not a single expression is applicable to the spirit which derives anything from what is material, organic, or extended; thus they so abstract it from their ideas that it vanishes from them, and becomes nothing. The more sane however assert that the spirit is thought; but in their reasonings about thought, in consequence of separating from it all substantiality, they at last conclude that it must vanish away when the body expires. Thus all who reason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deny the existence of the spirit, and therefore believe nothing of what is said about the spirit and spiritual things. Not so the simple in heart: if these are questioned about the existence of spirit, they say they know it exists, because the Lord has said that they will live after death; thus instead of extinguishing their rational, they vivify it by the Word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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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95,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뱀, 사람 안에 있는 감각 파트'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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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인들은 사람의 모든 걸 짐승과 새에 단지 비유하는 대신 실제로 그렇게 명명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스피킹 관습은 홍수 후 고대교회에까지도 이어졌고, 이후 선지자들 가운데에도 보전, 전해졌지요. 사람 안의 감각적인 걸 그들은 ‘(serpents)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뱀이 땅에 가까이 붙어 지내는 것처럼, 감각적인 것들 역시 사람 몸하고 그렇게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의 신비를 감각적 증거를 가지고 접근하려는 일련의 이성적 활동, 즉 이성질을 ‘뱀의 독(the poison of a serpent)이라고 했으며,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을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많은 걸 감각, 즉 보이는 걸 (이 보이는 거는 땅에 속한 거, 육적인 거, 일상적인 거, 자연적인 거를 말합니다.)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라고 하는 것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did not compare all things in man to beasts and birds, but so denominated them; and this their customary manner of speaking remained even in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was preserved among the prophets. The sensuous things in man they called “serpents,” because as serpents live close to the earth, so sensuous things are those next the body. Hence also reasonings concerning the mysteries of faith, founded on the evidence of the senses, were called by them the “poison of a serpent,” and the reasoners themselves “serpents”; and because such persons reason much from sensuous, that is, from visible things (such as are things terrestrial, corporeal, mundane, and natural), it is said that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이성(理性)을 오히려 이렇게 못되게, 즉 교만하여 자신을 높이고자 자랑질하는 데 쓰는 걸 가리켜 특별히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갑질, 자랑질, 도둑질같은 뉘앙스로 말이지요.

 

[2] 그리고 시편에도 보면, 이성 놀이를 통해 사람을 유혹하는 자들에 대해 이르기를, And so in David, speaking of those who seduce man by reasonings: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시140:3)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Ps. 140:3)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주1)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시58:3-5) They go astray from the womb, speaking a lie. Their poison is like the poison of a serpent, like the deaf poisonous asp that stoppeth her ear, that she may not hear the voice of the mutterers, of a wise one that charmeth charms [sociantis sodalitia]1. (Ps. 58:3–5)

 

현자(賢者)가 하는 말이나 목소리에 귀조차 기울이려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이성 놀이, 이성질을 가리켜 여기서는 ‘뱀의 독’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고대인들 사이에서 ‘뱀이 귀를 막는다(The serpent stoppeth the ear)는 말은 하나의 속담이 되었습니다. 아모스입니다. Reasonings that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 men will not even hear what a wise one says, or the voice of the wise, are here called the “poison of a serpent.” Hence it became a proverb among the ancients, that “The serpent stoppeth the ear.” In Amos: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암5:19-20) As if a man came into a house, and leaned his hand on the wall, and a serpent bit him. Shall not the day of Jehovah be darkness and not light? even thick darkness, and no brightness in it? (Amos 5:19–20)

 

손을 벽에 대는 것(The hand on the wall)은 자신한테서 나오는 힘과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안 보임'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The “hand on the wall” means self-derived power, and trust in sensuous things, whence comes the blindness which is here described.

 

[3] 예레미아입니다. In Jeremiah: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렘46:22-24) The voice of Egypt shall go like a serpent, for they shall go in strength, and shall come to her with axes as hewers of wood. They shall cut down her forest, saith Jehovah, because it will not be searched; for they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locust, and are innumerable. The daughter of Egypt is put to shame; she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north. (Jer. 46:22–24)

 

애굽(Egypt)은 신성한 것들, 곧 주님께 속한 일들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 곧 세상에서 학습한 지식들을 가지고 이성질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 이성질을 일컬어 ‘뱀의 소리(the voice of a serpent)라고, 그리고 그로 인해 앞을 못 보게 된 것을 ‘북쪽 백성(the people of the north)이라고 합니다. 욥기입니다. Egypt” denotes reasoning about Divine things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Such reasonings are called the “voice of a serpent”; and the blindness thereby occasioned, the “people of the north.” In Job:

 

16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17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욥20:16-17) He shall suck the poison of asps; the viper’s tongue shall slay him. he shall not see the brooks, the flowing rivers of honey and butter. (Job 20:16–17)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Rivers of honey and butter)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인데, 이는 단지 이성적이기만 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성질을 일컬어 ‘독사의 독(the poison of the asp), ‘뱀의 혀(the viper’s tongue)라고 합니다. 뱀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14절, 15절에서 보세요. Rivers of honey and butter” are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cannot be seen by mere reasoners; reasonings are called the “poison of the asp” and the “viper’s tongue.” See more respecting the serpent below, at verses 14 and 15.

 

※ 주1, '계시록 풀이' 462번 글 e항에는, sociantis sodalitia ('능숙한 술객의 요술') 대신 incantatoris incantationum ('마법을 거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In Apocalypse Revealed (n. 462e), instead of sociantis sodalitia (one that charmeth charms) there is incantatoris incantationum (enchanter of enchantments). [Rev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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