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6, 7)
AC.25
‘하늘을 폈으며 땅을 펼쳤고’(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라는 표현은, 사람의 거듭남을 다룰 때 선지자들이 아주 흔히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사야에 보면, 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 is a common form of speaking with the prophets, when treat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A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am Jehovah that maketh all things,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lone, that spreadeth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또한 주님의 강림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again, where the advent of the Lord is openly spoken of: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42:3)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unto truth (Isa. 42:3);
이는 오류들을 깨뜨리거나 욕정들을 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굽히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that is, he does not break fallacies, nor quench cupidities, but bends them to what is true and good; and therefore it follows: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Jehovah God createth the heavens, and stretcheth them out; he spreadeth out the earth, and the productions thereof; he giveth breath unto the people upon it, and spirit to them that walk therein (Isa. 42:5).
이와 같은 뜻을 지닌 다른 구절들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Not to mention other passages to the same purport.
해설
AC.25는 앞선 AC.24에서 제시한 거듭남의 중요한 원리를 선지서의 말씀으로 확인합니다. AC.24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는 동안 주님께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구별하시며, 사람이 아직 자기에게 속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 심지어 감각의 오류와 욕정까지도 사용하여 그를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이끄시고 굽히신다’고 했습니다. 이제 AC.25는 선지자들이 사용하는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표현 역시 바로 인간의 거듭남을 다루는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사44:24가 인용됩니다.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문자적으로 읽으면 천지 창조를 말하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선지자들이 사람의 거듭남을 말할 때에도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고 합니다. 바로 앞 AC.24에서 속 사람을 ‘하늘’, 겉 사람을 ‘땅’과 연결했으므로, 여기서도 우리는 한 사람 안에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난다면 주님께서 그 안의 잘못된 것들을 모두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AC.25는 놀랍게도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주님의 강림을 말하는 사42:3을 인용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그리고 이 말씀을 ‘오류들을 깨뜨리거나 욕정들을 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굽히신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여기서 ‘오류’와 ‘욕정’이라는 말 때문에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오류와 욕정 자체가 좋은 것이므로 그대로 보존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주님께서 아직 거듭나지 않은 인간의 현재 상태를 단번에 파괴하여 다른 존재로 바꾸시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는 데 있습니다. AC.24가 이미 설명했듯이, 거듭나는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행하는 선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자기가 말하는 진리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깁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의 현재 상태를 통하여 그를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는 쪽으로 이끄십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잘못된 것을 통하여 올바른 것으로 인도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면서도 ‘내가 좋은 일을 했다’는 만족감을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AC.25가 직접 제시한 사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불완전한 동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선을 행하도록 이끄시면서 점차 선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상태 자체를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그 상태에 영원히 머물게 하지 않고 참되고 선한 것을 향하여 ‘굽히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굽히신다’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인간의 자유와 현재 상태를 무시하고 강제로 선한 사람을 만들어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들을 통하여 점차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AC.24에서 ‘천국의 아르카나’라고까지 한 내용입니다. 거듭남은 사람이 이미 완전해진 뒤에 주님께서 시작하시는 일이 아니라, 아직 오류와 욕정과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 남아 있는 바로 그 사람을 붙드시고 선과 진리를 향하여 이끄시는 과정입니다.
이런 문맥에서 사42:5가 이어지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라고 다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AC.25가 사42:3과 사42:5를 이어 인용하는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주님의 방식과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치는’ 거듭남의 일이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께서는 현재의 인간을 단순히 부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이끄시고 굽히시면서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 가십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일이 궁극적으로 주님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사44:24에서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치신다고 하고, 사42:5에서도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을 펼치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듭나는 사람은 실제로 진리를 배우고, 악과 싸우며,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선과 진리의 근원과 사람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AC.24-25의 흐름은 오히려 사람이 처음에는 자기에게서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한다고 여기다가 점차 그것들이 주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 가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AC.25에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창조의 비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거듭남의 질서 안으로 이끌어 가시는 일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인간의 현재 모습을 무시한 강제적 파괴가 아니라,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붙드시고 참되고 선한 것을 향하여 이끄시고 굽히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사42장의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AC.25에 인용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오류와 욕정을 선이라고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때문에 우리를 버리거나 단번에 부수어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한 상태에서부터 우리를 이끄셔서, 마침내 사람에게 속한 것보다 주님께 속한 선과 진리가 삶을 이끌도록 하십니다. AC.25가 보여 주는 거듭남은 바로 이러한 주님의 인도입니다.
심화
1.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42:3)
AC.25, 심화 1,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42:3)
AC.25.심화 1.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42:3) AC.25의 이 부분은 스베덴보리의 인간관과 거듭남 이해가 매우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 꺼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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